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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125

문정희 시인의 ‘몸과 삶’, ‘사랑’의 성찰 문정희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민음사, 2008) 뒤늦게 문정희의 시집 를 읽고 있다. 그의 시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정서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가 ‘외롭다’라고 하는 것과 그가 말하는 ‘사랑’은 다른 여성 시인이 그러는 것과는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게 연륜의 힘일까. 그의 시 ‘유방’을 읽는다. 화자는 유방암 사진을 찍는다. ‘윗옷’을 벗고 ‘맨살’로 ‘기계’ 앞에 선다. ‘에테르’처럼 스며드는 ‘공포’ 속에 ‘패잔병처럼 두 팔 들고’. 그리고 그 여자는 자신의 몸을, ‘축 늘어진 슬픈 유방’을 성찰하기 시작한다.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겊 속에’ ‘싸매놓은’ 그 ‘수치스러운 과일’처럼 ‘깊이 숨겨왔던 유방’을. 노화를 경험하며 몸을 성찰하다 그것은 ‘.. 2019. 12. 5.
게으름뱅이 독자의 ‘책 읽기’ 지리멸렬해진 요즘 나의 ‘책 읽기’ 언제부턴지 모르겠다. 책 읽기가 ‘지리멸렬’해진 게. 들쑥날쑥하긴 하지만 정기적으로 사야 할 책을 정리해 두었다가 일괄 구입 주문을 내는 것은 예와 다름이 없다. 책은 시간은 다투어 택배로 도착한다. 그러나 기다렸던 책을 펴는 순간의 긴장이나 설렘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읽을 날을 위하여 새로 산 책은 따로 서가에다 꽂지 않고 쌓아둔다. 그러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어느 날부터 그것들은 시나브로 한 권 두 권 서가에 꽂히고 만다. 어쩌다 한번 들쳐지기나 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배달되어 온 모습 그대로 손때 하나 묻지 않은 채 얌전히 서가로 처박히고 마는 책들! 지리멸렬해진 ‘책 읽기’ 세상에 가장 비싼 책은 ‘읽지 않은 책’이라 했던가. 지난 몇 해 동안 그런 과정.. 2019. 11. 18.
신화, ‘집단 정체성’의 기억들 [서평] 신동흔, (2005, 한겨레신문사) 우리에게 낯익은 신, ‘옥황상제’나 ‘용왕’의 계보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옥황상제’는 하늘을, ‘용왕’은 바다와 하천 등, 모든 물의 나라를 통치하는 신격(神格)임을 알고 있지만, 그런 계보의 근원이 우리의 민간 신화(무속 신화)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대체로 사람들은 그 낯익은 이름을 통해 도교나 불교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국문학자 신동흔이 쓴 ‘살아 있는 우리 신화’(한겨레신문사)는 그 같은 신들의 계보를 밝히면서, 방 안에 모신 ‘삼신’이나, 부엌의 신 ‘조왕 할아버지’, ‘조왕 할머니’ 같은 ‘가정(家庭) 신’도 그 계통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고 일러 준다. 물론 그들의 계보는 올림포스의 제신(諸神)들처럼 일목요연한 체.. 2019. 11. 13.
아이라쿵께요, 키가 커삐가 치마가 짧아진 거라예 [서평] 윤명희 외 2006년 5월 일단의 시민들이 헌법재판소에 “현행 표준어 일변도의 어문정책을 폐지하고, 지역의 학생들에게 사투리를 교육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이 바로 네티즌들이 결성한 지역어 연구 모임인 ‘탯말두레’다. 이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제출한 심판청구서에서는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한 현행 어문규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비표준어 사용자를 ‘교양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현 어문정책은 국민의 기본권과 평등권, 교육권, 행복추구권을 명백히 침해했다고 보는 이들의 논거는 대충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사투리는 더는 놀림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자산이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포함된 지금은 굳이 지역어(사투리)를 차별해야 할 이유가 없다.. 2019. 11. 11.
독립운동가들의 최후, 글로만 봐도 눈물이 난다 [서평] 김태빈의 항일답사 프로젝트 108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고, 이듬해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안 의사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보내준 하얀 수의를 ‘살아서’ 입고 형장에 나타났을 때 ‘줄 이은 집행관도 그의 거룩한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 안 의사의 거부로 변호에 실패한 일본인 변호사 미즈노 기치타로(水野吉太郞)는 말년에 그를 회고하는 글 를 썼다. 그 글은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로 시작된다. 연암 박지원의 의 여정을 따라가는 (레드우드, 2016)에 이어 김태빈이 펴낸 ‘항일답사 프로젝트’의 제목은 다. 이 명명은 아마 의연하게 죽어간 안 의사에 대한 국적을 넘는 ‘외경과 공감’의 표현일 터이다.(.. 2019. 11. 10.
슬프구나 유랑의 삶, 변강쇠와 옹녀 다시 읽기 변강쇠와 옹녀는 조선 후기에 연행되던 판소리 12마당 중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 횡부가橫負歌)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고전은 멀고 영화는 가깝다.’ 두 남녀는 1980년대를 풍미한 에로영화로 먼저 데뷔하는 바람에 판소리가 아니라 영화의 주인공으로 ‘인구에 회자’한다. 에로영화에 절륜한 정력, 혹은 음란무비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에게서 무슨 우리 고전 서사문학의 냄새 따위를 맡을 겨를은 없다. 나도향의 사실주의 단편 ‘뽕’이 영화화된 이후, 그게 문예영화가 아니라 에로영화의 원조인 것처럼 이해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가루지기타령은 지금 전하지 않는 판소리 일곱 마당 가운데 유일하게 신재효에 의해 판소리 사설로 정착된 작품이다. 신재효는 성적 표현이 지나치게 비속하였던 기왕의 이.. 2019. 11. 2.
잃어버린 시절, 그 삶과 세월 되돌아보기 [서평] 최규석 만화 전적으로 실수로 산 책 어릴 적엔 누구나 만화에 흠뻑 빠져서 지낸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만화를 읽는 사람은 흔치 않다. 어른이 되면서 만화가 지어놓은 허구의 세계를 졸업한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도서 대여점에서 만화를 빌려다 보는 친구를 보면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당연히 만화책을 사는 일도 없다. 그건 오래된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굳이 읽어야 하는 만화라면 도서관에서 빌려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우연히 만화책을 한 권 샀다. 전적으로 실수다. 의 서평을 건성으로 읽었던가. 온라인 서점으로 주문한 몇 권의 책 속에 최규석 만화 (이하 )이 끼어 있었다. 나는 이 책이 만화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내용은 괜찮으리라고.. 2019. 10. 27.
열혈 여성 독자들, 조선 후기사회를 흔들다 [서평] 이민희 지음 ‘소설’은 무엇인가, 아니 좀 더 쉽게 얘기해 보자. 대체 ‘이야기’란 무엇인가. 처음으로 소설이 유통되던 조선조 후기사회에서 그것은 어떤 느낌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갔을까. 그들에게 소설은 어쩌면 극적으로 구성된, 그리고 남몰래 들여다보는 ‘타인의 삶’ 같은 건 아니었을까. 완고한 성리학의 세계관과 규범 아래서 억압적 일상에 묻혀 있던 18세기의 조선 사람들, 특히 사대부가의 부녀자들에게 소설은 마치 ‘상상으로만 저지르는 염문’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회를 달구었던 소설 열풍을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처음으로 소설을 만나 그 낯선 세계에 코를 박았던 초등학교 적의 어느 날, 그 조바심의 시간을 기억하며 이민희(아주대 교양학부 .. 2019. 10. 26.
역사의 그늘을 더듬은 인문학자의 박람강기(博覽强記) [서평] 강명관의 일찌감치 나는 강명관을 읽고 싶었다. 물론 그의 저작들이 신문 지상에 소개될 때부터다. 그가 매주 한 차례씩 에 연재하던 ‘고금변증설’을 읽으면서 그 생각은 굳어졌다. 그러나 인연이 닿지 않아서인지, 차일피일하다 을 산 게 지난달 말께다. 최근 3년간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책 열흘 전쯤부터 학교에 가져다 놓고 틈틈이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몇 장이 남았을 때 나는 동료에게 그렇게 말했다. 최근 한 삼 년 동안 가장 즐겁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읽은 최고의 책이라고.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두고두고 읽었다. 아까워 한꺼번에 먹어 치울 수 없었던 박하사탕처럼. 강명관은 한문학자다. 그는 한문학 연구를 위해 선인들의 문헌을 읽어야 하는 과정에서 ‘문학과 관련 없는 이런.. 2019. 10. 25.
아흔 살 사내, 거부해 왔던 사랑에 빠지다 [서평] 마르케스 마르케스의 작품 세계에서 ‘고독’은 ‘사랑의 부재’로 읽힌다. 의 호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과 그의 형 호세 아르카디오, 그리고 아마란타에 이르는 주인공들은 모두가 사랑의 부재, 즉 고독을 운명처럼 타고난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그의 소설 속 인물의 특징은 대부분 작품에서 변주(變奏)되는 듯하다. 아흔 살 생일을 앞둔 한 사나이가 있다. 그는 ‘서글픈 언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익명의 존재인데, 돈을 주지 않고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으며, 그 여인들 때문에 결혼할 시간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는 마르케스의 뭇 주인공들처럼 ‘결핍된 사랑’의 소유자다. ‘섹스란 사랑을 얻지 못할 때 가지는 위안에 불과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으나, 정작 사랑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 2019. 10. 23.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쇠고기의 ‘위대한 모순’ [서평] 제레미 리프킨 , 시공사 간행된 지 6년이나 지난 구간(舊刊) 1권을 이른바 ‘쇠고기 정국’이 불러냈다. 미국의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1993년에 쓴 (시공사, 2002)이 그것이다. 내 서가에 있는 리프킨의 이 책은 2002년 1월에 발행된 초판 1쇄다. 인류의 육식 문화를 광범위한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으로 천착했던 이 책은 그동안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읽혀 왔다. 광우병 정국이 이 구간을 불러냈다고 했지만 정작 리프킨은 이 책에서 광우병을 직접 다루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육식을 위해 소비되는 곡물에 주목했고, 그것이 수많은 사람을 기아와 영양실조로 몰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육식의 종말’이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라면 책.. 2019. 10. 22.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하지 않았다 [서평] 최경봉 , 해외 한글전파, 인도주의인가 제국주의인가… 언제부턴가 ‘찌아찌아’는 한글의 우수성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 찌아찌아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 부톤섬에 사는 토착 부족의 이름이다. 이들이 쓰는 언어가 ‘찌아찌아어’인데 바우바우시(市)가 이 말을 표기할 문자로 한글을 도입한 게 2009년이다. 관련 글:① 한글, 인도네시아 부톤섬으로 가다 / ② 부톤섬으로 간 한글 나라와 민족을 떠난 한글은 인도네시아의 한 도시에서 그럭저럭 정착하는 듯 보였지만 그게 반드시 만만한 과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와 관련해 가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에서 운영해온 한국어 교육기관 ‘세종학당’이 지난 8월 31일 철수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찌아찌아’ 관련 교과서의 오류들 이는 대.. 2019.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