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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125

책 읽기, 그 도로(徒勞)의 여정 책 읽기의 압박, 그리고 결기를 버리고 나니 … 책 읽기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된 지 몇 해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내가 내 안에 더는 어떤 열정도,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조직 활동에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때, 내 삶을 마치 말라 바스러진 나뭇잎 같은 것으로 느끼기도 했다. 그건 슬픔도 회한도 아니었다. 그것은 굳이 말하자면 오랜 절망적 성찰 끝에 스스로 깨친 자기응시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 무렵에 쓴 어떤 편지에서 나는 그렇게 썼다. ……시나브로 나는 자신을 타자로 바라보는 게 어렵지 않을 만큼만 노회해졌습니다. 자신의 행위나 사고를 아무 통증 없이(!) 여러 갈래로 찢고 자를 수 있으며, 그 시작과 끝을 희미한 미소로, 어떠한 마음의 동요도 없이 바라볼 수도.. 2019. 2. 17.
[근조] 일본군 ‘위안부’ 용기와 희망으로 지켜온 스무 해 고 김복동((金福童,1926~2019) 만 열네 살에 전쟁터로 끌려갔다가 22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67세 때인 1992년 3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알리고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으며, 2000년에는 일본군 성 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원고로 출석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했다.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2017년에는 여성인권상으로 받은 5천만 원을 무력분쟁 지역의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써달라며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해 ‘김복동 평화상’이 제정됐다. 국경없는기자회와 프랑스 AFP .. 2019. 1. 29.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고요한 밤의 빛의 된 여인 [서평] 헬렌 켈러 전기 대중에게 있어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는 박제된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3중고의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그녀는 기억되고 회자된다. 역사책과 전기 속에서 그녀의 정형화된 생애는 그녀의 실존을 압도해 버린다. 그러한 점은 그녀의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되는 애니 설리반(Anne Sullivan, 1866~1936) 역시 예외가 아니다. [관련 글 :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돌아가다] 도로시 허먼, 헬렌 켈러의 실존을 복원하다 도로시 허먼(Dorothy Herrmann)이 쓴 그녀의 전기는 그녀의 실존을 복원한다. 그 여자는 ‘인간에게는 정상과 장애의 차이가 아니라, 상상력과 용기의.. 2019. 1. 28.
60년 넘게 일본 정부와 싸운 92세 ‘BC급 전범’ 이학래 [서평] 이학래 선생 회고록 1948년에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7명에게 교수형, 나머지 18명에게는 종신형과 유기금고형이 선고됐다. 이로써 ‘평화에 대한 죄’의 용의자인 A급 전범에 대한 단죄가 끝났지만 ‘전쟁 범죄인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규정한 포츠담선언에 따른 이 재판은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았다(관련 글 : 1948년 오늘-도쿄재판, 일본 전범 7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다). 태평양전쟁의 최대 책임자였던 일왕 히로히토(裕仁)를 비롯해 적지 않은 전쟁범죄자들이 처벌을 비켜 갔기 때문이었다. 맥아더의 참모였던 연합군 최고사령부 찰스 윌로비(Charles A. Willoughby) 장군이 ‘역사상 최악의 위선’이라고 한 언급은 그런 상황을 에둘러 짚은 것.. 2018. 12. 21.
'진정한 우주인, 여덟 살'은 어떻게 '지구인'이 되어 가나 [서평] 최은경 지음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과연 있기는 할까. 아무도 갓난아이 시절을, 또는 취학 이전 시기를 몇 개의 단편적 장면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초등학교도 다르지 않다. 초등학생들이 자아와 세계에 대한 기억을 체계적으로 형성하려면 적어도 3, 4학년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서 글자와 그림을 배우고 노래를 익히며, 동무들과 놀다 다투면서 자라긴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그 시기의 기억은 단편적으로만 존재한다. 교사 최은경이 “말도 안 통하고, 하고 싶은 건 많은 초등 1학년. 툭하면 물이랑 우유를 쏟아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책으로 우주선을 접는 녀석들. 와와 외계어로 떠들던 아이들”을 ‘진정한 우주인, 여덟 살’이라고 부르.. 2018.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