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장호준 지음, <자전거로도 지구는 좁다> ‘라오스·네팔·타이 편’ 외 2권
자전거 세계 여행, 전 4권으로 완간
장호준이 마침내 자신의 세계 일주 자전거 여행기를 4권의 책으로 마무리했다. 지난해 12월 첫 여정을 기록한 <자전거로도 지구는 좁다> ‘중국 편’에 이어 올 9월에 ‘라오스·네팔·타이 편’, ‘튀르키예·유럽 편’, 그리고 ‘아프리카 편’을 펴낸 것이다. [관련 글 : 63세 라이더, ‘자전거 세계여행’의 서막을 열다]
2015년 4월에 배편으로 톈진(天津)을 향해 떠났던 장호준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비행기 편으로 서울로 돌아온 것은 2016년 11월이었다. 그가 길 위에 있었던 시간은 600일, 그가 밟은 길은 3만km에 이르렀다. 그 길 위에서 그가 묵을 때마다 노트북을 켜고 기록한 일정과 견문, 소회가 4권의 책으로 묶인 것이다.
600일에 걸친 3만km 여행의 기록, ‘중국 편’(354쪽)부터 ‘라오스·네팔·타이 편’(296쪽)·‘튀르키예·유럽 편’(420쪽), 그리고 ‘아프리카 편’(416쪽)은 모두 더하면 1,486쪽에 이른다. 그건 물론 그가 밟았던 여정의 합이 아니라,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관계, 호감과 비호감, 협력과 반목, 공감과 냉담 등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이다.
혼자서 떠난 여행이지만,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젊은이들과 자전거 여행자, 한국인과 외국인, 백인과 흑인, 무슬림과 기독인 등을 망라한다. 그는 현지인은 물론, 교포들과 적지 않은 교유를 맺고 그들의 신세를 지기도 했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기도 했다.
나는 2015년 3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그를 배웅한 이래, 그가 현지에서 묵을 때마다 노트북에 써서 블로그에 올린 여행기를 거의 날마다 읽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걸 정리하여 <오마이뉴스>에 올리기도 했었다. 그의 책이 모두 나오기 전에 내가 이미 전편을 완독하고 있었던 이유다. [관련 글 : 63세 라이더, 세계를 향해 페달을 밟다]
그보다 훨씬 일찍 이런저런 잡글을 끄적이고 있었던지라, 처음에 나는 그의 글에 대해 이런저런 품평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가 글을 쓰는 방식을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장의 기술과 관련한 기능적 측면이 아쉬워서였다. 그러나 그가 내 조언을 별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그걸 내려놓았다.
기능적 측면 운운했지만, 사실상 나는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이런저런 훈수를 두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비로소 그가 나 따위의 성가신 조언자가 필요 없을 만큼 자신의 독자적 세계를 확보하고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나는 새삼스러운 조언을 접은 것이었다.
피를 나눈 형제지만, 그의 도저한 행동주의 유전자는 내게는 약에 쓸래도 없는 형질이다. 내게는 기본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일주하겠다는 만용을 부릴 깜냥도 상상력도 없다. 나는 굳이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읽는 것으로 욕망을 적당히 달래는 데 적응한 위인인 까닭이다.
보통사람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세상을 연 ‘600일, 3만km’
그런데 내 상상력도 미치지 못하는 세상을 그는 열어 나갔고, 600일, 1년 8개월에 걸쳐 3만km를 돌아왔다. 여전히 나는 그게 무슨 꿈속의 일인 양 아득하다. 그러나 그가 1,486쪽, 4권의 여행기에 펼쳐낸 여정은 생생한 날것의 이야기로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어떤 사람이 세계 일주를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에겐 그 구체적 경로나 견문보다 ‘여행을 다녀왔다’라고 하는 사실만 건조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그것은 그런 여행을 겪어보지 못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낯설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과 지향 앞에서 망설이기 쉬우니 상상력마저도 움츠러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이나 호기심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클 수 있으니까. 아니 현실적으로 한두 달도 아니고, 해를 넘기는 장기간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갖춘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집이나 직장을 단 며칠 비우더라도 우리 일상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게 어디 한두 개인가 말이다.
그러나 장호준이 20개월간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생활과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는 전세금을 빼서 길을 떠났으니, 여느 생활인이라면 차마 하지 못할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어서였다. 20개월에 이르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과 맞섰던 한 여행자의 용기와 지구력은 생각할수록 놀랍기 짝이 없다.
이번에 완간한 세 권의 책 속표지에 있는 저자의 여행 경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는 중국에서 라오스 루앙 프라방으로 건너가 방비엥, 비엔티안을 거쳐 타이의 치앙마이, 수코타이, 방콕을 거쳐 네팔로 넘어갔다. 카트만두에서 시작한 네팔 여행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까지 이어지며 그는 2011년에 거기서 숨진 등반가 박영석의 추모비 앞에서 오열하기도 했다.
튀르키예로 건너가 그가 만난 튀르키예인들과의 교유는 저자 특유의 친화력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그는 거기 머문 두 달 동안 몇 사람과 깊게 사귀었고, 이들 가운데 한 친구는 여행에서 돌아온 1년 후에 한국을 방문해 그와 재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불가리아·루마니아·슬로바키아·독일·네덜란드·스위스·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등을 거쳐 그리스까지 닿았다. 그리고 그리스의 베니젤로스 공항에서 비행기로 이집트로 건너갔다. 그의 여행은 대륙의 동쪽 해안을 따라 수단·에티오피아·케냐·우간다·탄자니아를 거쳐 아프리카를 종단해 마침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른다. 톈진에서 케이프타운까지 달려온 20개월의 여정은 그렇게 끝난 것이다.
60대 자전거 여행자의 무모한 도전에 동참하는 법
독자들에겐 그 여정이 도상(圖上) 여행에 그치겠지만, 그것은 단순히 여행지를 잇는 점과 선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을, 인간의 도시고 그 안에서 맞부딪는 사람과 사람의 교유와 교류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이라는 공통점 하나에 인종, 지역, 국가, 종교 따위의 차이점을 수렴하는 입체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여행기가 단순히 여행지의 견문이나 주워섬길 뿐이었다면, 그건 정말 지루한 글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은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상황을 에둘러 긴가민가하기보다는 정곡을 찌르는 단문의 경쾌한 서술로 그가 달려간 그 길과 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 아슬아슬하게 함께하면서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이 책 정말 재미있다. 짬짬이 시간 내서 읽는데 한번 잡으면 멈추기가 쉽지 않다. 86세인 어머니는 총 4권의 시리즈 중 3권을 다 읽으시고 이제 마지막 편도 마무리 단계다. 난 이제 3권째 튀르키예 유럽 편을 펼쳤다. 어머님 말씀이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라신다.
저자 장호준 님은 스쿠버다이버고 60이 넘어 중국 톈진에서 남아공 케이프타운까지 총 3만km를 600일 동안 자전거로 여행하였다. 이 책은 흥미진진하고 좌충우돌하는 그의 여행기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께 꼭 권하고 싶다.
- 신광식·<해저여행>(다이빙 전문 잡지) 발행인
그게 86세 어머니가 책을 놓지 못하게 한 이유다. 지은이는 여정과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을 얼렁뚱땅 얼버무리거나 요약하고 건너뛰는 법이 없다. 그는 마치 현미경을 들이대듯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을 관찰자가 아니라 동조자로 상황 속에 끌어들인다.
그래서 일상과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가벼운 여행조차 떠나기 쉽지 않은 이들에게 그의 여행기를 따라가는 도상 여행이 적지 않은 대리만족을 선사할 수 있으리라. 이 여행기에는 인과나 필연 같은 삶의 소소한 법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게 여행의 순서와 무관하게 책 한 권을 집어 읽기 시작하면 쉽사리 이 60대 자전거 여행자의 ‘무모한 도전’에 살갑게 ‘동참’할 수 있게 되는 이유다.
2023. 11.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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