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어머니들이 지은 ‘컵 받침’을 받고
어저께 4·16재단에서 우편물이 도착했다. 책자인 듯해 뜯어보니 <2019 4·16재단 활동 보고서>다. 나한텐 안 보내줘도 괜찮은데, 중얼거리며 꺼냈더니, 손바닥만 한 비닐로 포장한 손수건 같은 게 나왔다. “4·16공방에서 세월호 엄마들이 정성껏 만든 컵받침”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때는 2014년이었다. 역 광장에서 촛불이 켜지고, 그해 4월은 아프고 더디게 흘렀다. 날마다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끝내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아이들 곁에 가 보지 못했다. 부지런한 이웃들은 멀다 하지 않고 팽목항과 안산을 다녀왔지만 나는 고작 서울광장과 우리 지역의 분향소를 찾은 게 다였다.
그리고 이태 후에 나는 학교를 떠났다. 그해 가을 백만 촛불에 참여한 다음 날, 나는 안산을 찾았다. 아무도 팽목항을 찾지 않은 걸 나무라지 않았지만, 가까이서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지 못했다는 마음의 앙금은 짐으로 남아 있었던 까닭이다. [관련 글 : 세월호 참사와 ‘여객선 사고’, 안산을 다녀오다]
그리고 다시 2년이 흘러 2018년 4주기를 앞두고 지역에서 열린 세월호 상영회에서 나는 4·16 기억위원에 참여한다는 서명을 했다. 글쎄, 그게 무엇인지 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이듬해 2019년에 참사 다섯 돌을 맞았다. 떨어지는 숫자 때문인지 첫 촛불이 켜진 역 광장에서 베풀어진 추모제에 적지 않은 이들이 모였다. 촛불혁명으로 새 정부가 들어섰고, 세월호 문제의 매듭이 풀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세월호 5주기 추모제, 구미의 엇갈린 ‘측은지심’]
4월 말, 4·16재단에서 정기후원 참여 요청 전화를 드리겠다는 문자가 왔을 때, 나는 재단 누리집에 가서 정기후원 신청을 하고, 전화가 왔을 때 미리 신청했다고 전했다. 후원금은 5월부터 통장에서 이체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매월 1만 원의 후원금을 내는 거로 나는 세월호는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기대만큼 문제가 쉽게 풀리지는 않은 듯하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한 이래, 검찰이 특별수사단을 만들어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에 나섰지만, 여전히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극단으로 엇갈리고 있다.
발생 6년째를 맞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세월호의 비극을 진실 그대로 온전히 바라볼 수 없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고 싶은 권력의 의중에 영합한 정치인들의 왜곡된 시각과 그 정치적 선동에 추종하는 유권자들이 무의식적으로 학습한 증오는 슬픔마저도 익숙하게 편을 갈라버린 것이다.
6주기 바로 전날에 21대 총선거가 치러진다. 유족들이 후보 가운데 참사 책임자와 진상규명을 방해한 인물을 공개한 것은 여전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배제와 증오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 진상규명 방해자가 다시는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하면서 공천 부적격 후보자 1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를 포함해 김용남·김진태·김태흠·배준영·심재철·안상수·안홍준·이진숙·정유섭·정진석·주호영·차명진 등 미래통합당 전·현직 의원 14명, 이정현·이주영 의원 등 무소속 2명, 조원진 자유공화당 공동대표, 홍문종 친박신당 대표 등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5주기 전후에 두 전·현직 야당 의원이 밝힌 막말은 지금도 여전히 극단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지형을 웅변으로 드러내 준다. 공개적으로 세월호의 희생을 모욕하고 능멸해도 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는 기회가 주어지는 한국 사회의 갈 길은 멀다.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 세월호 사건과 아무 연관 없는 박근혜, 황교안에게 자식들 죽음에 대한 자기들 책임과 죄의식을 전가하려 하고 있다.”
- 차명진 전 의원(경기 부천 병 공천), 2019.4.15. 페이스북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
- 정진석 미래통합당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 공천), 2019.4.16. 페이스북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국가의 무책임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슬픔을, 그 책임의 일부를 져야 할 정치인들이 폄훼하고 모욕·능멸할 수 있고, 그들이 주권자의 지지로 정치적 이력을 더해가는 사회라는 사실은 참담하고 부끄럽다. 4.15 총선은 또 어떤 결과로 우리 사회의 양식과 건강을 증명해 줄까.
내가 받은 컵받침은 미색과 보라색의 두 가지다. ‘4·16공방’은 세월호 가족 활동 모임 가운데 하나다.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시던 가족들이지치거나 힘들 때 모여 아이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고 실컷 울기도 하며 서로 아픔을 나누던 공간”(활동보고서)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다가 공방에 다 같이 모여 바느질을 하기 시작”한 “공예를 통해 세월호 가족들의 치유의 장이자,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역사회와 더 깊고 넓게 만나는 매개”로 역할하겠다는 공방이 만들어내는 물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고.
(구입 문의 : 416family.org@gmail.com)
기계로 제작한 것과 달리 반듯반듯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물건이지만, 여러 빛깔을 천을 한데 모아 만든 컵 받침에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듯하다. 그걸 무심히 컵 받침으로 쓰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6주기를 맞는 올 4.16에는 두 차례(4.12., 16.) 참사해역에서 선상 추모식을 진행한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고자 피해 가족과 관련 기관, 단체만 참석할 예정이라고. 다시 그 해역에 서게 될 유족들의 아픔을 환기하는 것으로 올 4·16을 맞아야 할 듯하다.
2020. 3. 28. 낮달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는다. 분노 없이는 떠올릴 수 없는 이 희생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는 우리 사회, 우리 정치앞에서 안타까움과 부끄러움 없이 다시 세월호를 이르기 어렵다. 진도 앞바다에서 떠난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간 써 온 세월호 관련 글을 읽어본다. 2023. 4. 16.
2014년 4월(1) 잔인한 봄―노란 리본의 공감과 분노
2014년 4월(2) 아이들아, 너희가 바로 새잎이었다
2014년 4월(3) 세월호, 돌아오지 않는 교사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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