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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몸, 삶, 세월

by 낮달2018 2020.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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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세월 속에 쇠락하는 몸

▲  François-Guillaume Ménageot, ‘ 휴식 중인 허큘리스 ’

언제부터인가 옷을 벗으면 편해졌다. 겉옷이 아니라 속옷까지 죄다 벗고 알몸이 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세상, 선택은 자유롭지 않다. 옷을 벗고 있어도 가능한 공간이란 고작 욕실 정도다.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아도 침실을 넘지 못한다.

 

알몸이 될 수 있는 상황이란 거기가 거기다. 욕실에서 몸을 씻거나 침실에서 속옷을 갈아입을 때다. 몸을 씻고 나서 속옷을 꿰는 일이 번거롭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집안에 아내만 있을 때는 맨몸으로 욕실을 나선다. 그리고 이 방 저 방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며 볼일을 본다. 처음에는 민망해하던 아내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알몸, ‘옷’으로부터의 해방

 

옷으로부터의 해방은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듯한 알싸한 해방감을 준다.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은 묘한 희열로 이어진다. 가능하면 더 오랜 시간을 그런 해방감에 잠겨 있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는 이내 옷을 입는다. 내가 알몸으로 구가한 해방의 시간은 고작 2~3분일 뿐이다.

 

“아예 알몸으로 지냈으면 좋겠어. 너무 편해.”
“지내시우. 누가 뭐라나. 하긴 아버님도 그러셨다니 내림인 모양이지.”

 

아내는 좀 비양조로 쥐어박는다. 그렇다. 나는 그제야 옷을 벗고 싶어 하는 내 욕구가 연면한 전통이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돌아가신 아버진 한겨울에도 굳이 잠옷을 마다시고 속옷 바람으로 주무시곤 했다. 요즘처럼 보온이 제대로 되던 때가 아니다. 그래도 선친께선 속옷 차림으로 긴 겨울밤을 나신 것이다.

 

나이 들수록 아버지를 닮아간다고 친척들 입에 오르내리는 나는 당신을 닮아 열이 많은 체질이다. 한겨울에도 내 몸은 따뜻하다. 악수를 할 때면 손이 찬 여성들은 ‘참 따뜻하네요’하고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선친께서 대체로 속옷 차림을 즐긴 것은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 해변의 알몸 휴가(nakation)

언제부터인가 한여름이면 집에서 윗옷을 입지 않고 지내게 된 것은 물론 내 ‘넘치는 열’ 때문이다. 아들 녀석은 속옷을 입는 것이 차라리 더 시원하지 않으냐고 반문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더워서라기보다는 답답해서 러닝셔츠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요즘 들어 자주 옷을 벗는 것은 그래서만은 아니다. 나는 저도 몰래 내가 내 벗은 몸에 애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처음, 나는 욕실의 거울에 비친 내 나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거기서 무심히 확인한 것은 몸의 쇠락이었다. 반세기 이상을 부려온 몸에 스민 세월의 자취는 쓸쓸하고 외로웠다.

 

나는 연민이 깃든 방심한 마음으로 거울에 비친 몸을 바라보았다. 거기 중년을 넘긴 사내의, 속일 수 없는 육신이 있었다. 완강하던 어깨는 어느새 밋밋하게 미끄러졌고, 근육질은 아니었지만 단단했던 가슴팍은 여자의 그것처럼 두툼해지면서 쳐졌다. 가슴팍과 배의 경계도 무너졌다. 중년 이후의 모든 사내들에게 공통된, 젊은 날의 열정조차 스러진 초라한 가슴패기다.

 

그리고 이어지는 허리, 그것은 가슴과 특별히 구별할 수 없을 만큼 굵어지고 밋밋해졌다. 둥그스름하게 부른 배에 견주어 뻗어 내린 하반신은 볼품없이 빈약하기만 하다. 더는 예전처럼 탱탱하지 못한 엉덩이 아래쪽도 비스듬하게 무너졌다. 한창때에 비기면 그 크기조차 졸아붙은 엉덩이 역시 노년으로 치닫는 이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몸의 퇴화, 그리고 받아들이기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다리는 휘어서 옥고 살은 조금씩 빠질 것이다. 한 발 두 발, 걸음조차 조심스레 내딛는 대중목욕탕의 노인들, 그들의 육탈(肉脫)을 시작한 몸과 다르지 않게 될 것이다. 자연스러운 상상 속에 나는 10년이나 그보다 더 뒷날의 자신의 모습을 무심히 그려보곤 했다.

▲ 영원한 것은 없다. 청춘도 스러진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상상이, 예측 가능한 뒷날이 서글프지 않았다. 힘도, 탄력도 경계도 구분도 잃은 50대 후반, 초로의 몸이었지만 아직도 거기엔 거머쥘 수 있을 만큼의 강단은 남아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내 몸을 애착의 감정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설사, 문지방을 넘을 만한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한들 제 몸을 어찌 버리겠는가.

 

그때부터였으리라. 나는 욕실에서 천천히 몸을 씻고, 거울에 비친 제 나신의 변화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힘이 넘치던 20대 시절에 터질 듯한 제 몸을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 아니었다. 그것은 쇠락해 가는 몸을 바라보는 내 눈길에 ‘몸의 나르시시즘’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알몸으로 욕실을 나와 안방으로 건너가 거기서 가볍게 체조를 하거나 건넌방에 들러 저울 위에 올라 눈금을 확인한다. 기분이 내키면 식탁에 앉아 잠깐씩 신문을 읽기도 한다. 마침 집에는 아내와 둘만이 지내니 내 알몸을 윤리적으로 비난할 이는 아무도 없다. 그것은 또 다른 해방감이다.

 

어떤 여성단체에서 주관하는 단식을 하면서 ‘풍욕(風浴)’을 경험한 아내는 내가 느끼는 해방감에 동의했다. 에덴동산 이래, 천으로 우리 육신을 감싸고 난 뒤부터 우리의 몸은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던가. 기능성을 자랑하며 살갗처럼 살갑게 몸에 감기는 속옷들이라 해도 그것이 숨 쉬는 몸을 막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끔 알몸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며 나는 이 ‘천의(天衣)’의 감각을 한껏 즐긴다. 그러나 내 ‘전라의 해방’은 그까지다. 나는 이른바 ‘나체주의자’를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을 그 범주 안에 넣을 생각은 없다. 여러 매체에서 전하는 ‘알몸 휴가(nakation)’를 흥미롭게 지켜보긴 하지만, 나를 그 해방의 공간에 삽입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다.

 

여전히 나는 ‘알몸’을 터부로 여기는 뿌리 깊은 우리 문화의 포로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혼란스러울 때 나는 대중 앞에 벌거벗고 다니는 치욕스러운 꿈을 꾸다가 소스라쳐 깨어난다. 성기를 드러내는 알몸은 기를 쓰고 감추어야 하는 인간의 정체성이며 본질인지도 모른다.

 

몸, 인간의 육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다. 어떤 시선은 그것을 부정하고 또 어떤 눈길은 그것을 흔쾌히 긍정한다. “깨끗한 마음과 생각, 이러한 보배(진리)를 얻으려면 가죽 주머니(육신)를 버려야 한다.”고 한 지눌 선사가 있는가 하면 육체를 “마음과 영혼을 담고 있는 모체”로 바라보는 도교적 시각도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건강한 육체는 영혼의 객실이요, 병약한 육체는 그 감방”이라고 했고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은 “무엇을 신성하다 할까, 사람의 육체이노라.”고 노래했다. 휘트먼이 시인의 감성으로 육체를 찬양했지만, 와일드는 육체를 ‘영혼이 머무는 집’으로 이해하되, 건강 유무에 따라 그것은 ‘객실’과 ‘감방’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영혼과 육체는 동일한 실체

 

육체를 영혼과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동일한 존재로 파악한 이는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다. 어떤 종교적 견해나 인문학적 인식의 도움 없이 나는 그의 의견을 지지한다. 영혼과 육체는 인간의 안과 밖을 이루는 동일한 실체다.

 

노화의 진전에 따라 육신이 쇠락한다 해서 거기 깃든, 고결하고 아름다운 영혼으로 위로받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무너져 가고 있는 육신만큼 영혼도 나이를 먹고 지친 육신을 대신해 슬기로워지고 단단해지고 너그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정희 시인은 시 ‘유방’에서 유방 사진을 찍으며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안고 서서’ 자신의 유방을 ‘나의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했다. 모두가 마찬가지다. 쇠락한 육체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거기 깃든 노화를 자신의 것으로, 이 무형의 세월과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욕실의 거울 앞에서 옷을 벗고 저물고 있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내가 느끼는 애착은 그런 자기애의 하나다. 집이라는 자기 영역 안에서 옷을 벗고 가벼워지기를 즐기면서 나는 어쩌면 버리고 갈 내 생애의 마지막 장면을 시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11. 3. 2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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