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까 말까, 21년 된 선풍기
한낮 날씨가 더워지면서 창고에서 선풍기를 꺼냈다. 선풍기는 모두 세 대다. 둘은 이태 전과 오륙 년 전에 각각 산 놈이니 아직 생생한 편이지만, 나머지 하나는 연륜이 만만찮다. 그게 언제쯤 산 건가, 가만있자, 산 시기가 너무 까마득하다.
초임 학교인 경주 인근의 여학교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전세 120만 원, 단칸방에서 3년을 살다 방 두 개에 입식 부엌이 있던 양옥으로 옮기고 산 놈이니, 정확히 1987년에 산 것이다.
“맙소사, 아빠 21년이에요.”
저녁을 먹으면서 고물 선풍기가 시원찮은데 버리나 마느냐며, 내외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얼마나 묵었냐’고 물어 대답했더니 딸애가 입을 딱 벌리고 보인 반응이다.
아내는 우리 집을 ‘골동품 공화국’이라 이른다. 그 수명이 빤한데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서 쓰는 가전제품은 그 연륜이 만만찮은 까닭이다. 우리 집에서 가전제품이 10년을 훌쩍 넘기는 건 예삿일이다. 무슨 대단한 내핍생활을 해서도, 절약이나 물건 오래 쓰기 같은 걸 의식해서도 아니다.
세월이 좋아서 가전제품이 고장이 나서 못 쓰는 경우는 드물 만큼 품질이 좋아졌고, 쓰는 데 지장이 없으니 내처 써 온 것일 뿐이다. 또 그렇게 오래도록 물건을 쓰면서도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탓도 있겠다. 좀 기능이 떨어지거나 낡아서 외관이 곱지 않은 것쯤에 무심한 탓이기도 하다.
“이리 좋은 세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우리 내외가 ‘오래 쓰기’를 처음으로 의식한 것은 아내가 시집오면서 가져온 다리미를 버리면서였다. 울산에 있는 유명한 알루미늄 회사에서 만든 예의 다리미를 아내는 정확히 17년 동안 썼다.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버릴 때 그걸 쓴 세월을 헤아려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스팀이 자동으로 나오는 신식 물건이 아니다. 아주 날렵한 모양의 그 다리미는 10년을 훌쩍 넘기면서 코드의 헝겊 피복이 다 벗겨졌다. 나는 굵다란 전선을 사서 그 코드를 갈아주었고 아내는 다림질할 때마다 분무기를 써야 하는 그 다리미를 대여섯 해쯤 더 썼다.
결국, 녀석을 버리게 된 것은 고장이 나서였던 듯하다. 낙심한 아내에게 나는 그즈음 나오기 시작한 스팀다리미를 사라고 말했고, 아내는 5만 원이 조금 넘는 예의 물건을 할부로 사 왔던 것 같다. 저절로 스팀을 뿜어내는 그 신식(!) 다리미를 쓰면서 아내는 억울하다는 듯 그렇게 탄식했다.
“이리 좋은 세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하기야 아내는 가사노동을 절감해 주는 전자제품의 혜택으로부터 좀 처진 사람이다. 위에서 말한 단칸방 시절에 아내는 연탄불로 밥을 지어 먹었다. 처음으로 가스레인지를 쓰게 된 게 입식 부엌 집으로 옮기면서부터였으니 이는 전적으로 무심했던 내 탓이다. 가스레인지가 그렇게 고가의 물건도 아니었건만 그걸 마련해 달라고 왜 요구하지 않았나 했더니 아내는 그렇게 쥐어박았다.
“이 양반아, 그거 편한 줄 누가 모르우? 돈이 무서워서 그랬지.”
가스레인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1994년 해직됐다가 복직해 경북 북부지역으로 옮기면서 산 3구 가스레인지는 지금 명이 경각에 달렸다. 나이로 치면 14살, 노쇠해질 때도 되었다. 한 구멍은 자동 점화가 안 되고 전체적으로 불길도 시원찮아 아내는 교체를 저울질하고 있는데, 이왕 바꾸는 건 좋은 거로 하라고 했는데도 아내는 당분간 불편을 참을 모양이다.
구시대의 유물이 된 TV
식탁 옆에 커다랗게 놓인 전자레인지도 복직하던 해에 산 물건이다. 요즘 물건과는 달리 덩치도 큼직하고 특별히 디자인 개념이 적용되지 않은 듯한 고물이다. 이용 시간이 길지 않아선지 이 물건도 아직 생생하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스무 살을 채울지도 모르겠다.
둘러보면 우리 집에서 쓰는 물건치고 10년을 넘기지 않은 물건이라곤 각각 세 번째, 네 번째 제품을 쓰고 있는 세탁기와 냉장고뿐이다. 고장이 나거나, 낡아서 하는 수 없이 간 세탁기는 모두 반자동이었는데 워낙 혹사하다 보니 제 수명을 다하지 못했고, 냉장고의 경우는 하도 이사를 다니다 보니 옮겨 다니다가 골병이 들어 명이 짧아진 게 아닌가 싶다. 내 주민등록부에는 무려 13번에 걸친 주소이동 사항이 있는데 적어도 그중 10번은 집을 옮겨 다닌 기록이다.
지금 안방에 놓인 텔레비전도 11년째 쓰는 27인치 브라운관 형식으로 엄청난 부피를 자랑하는 놈이다. 우리는 무심히 쓰는 것이지만, 요즘 엔간한 집이면 갖추고 있는 피디피나 엘시디 텔레비전에 비기면 케케묵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단언컨대 저놈은, 다른 고장이 나지 않는다면 아날로그 TV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는 2015년까지 우리 집 안방을 지킬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쓰다가 아들 녀석의 방이 된 작은방에 놓은 14인치 텔레비전도 이 집으로 옮기던 해 산 것이니 11년째다. 11년째 된 것은 내 승용차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당신 차를 바꾸어야 하는데, 하고 말꼬리를 늘어뜨리지만, 어차피 그건 일이백만 원으로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별한 탈이 없는 한, 승용차는 물론이고 나머지 것들도 우리 집에서 얌전히 나이를 먹으리라.
오래된 물건에 담긴 건 가족이 함께 건너온 세월
올해 스무 해를 넘긴 선풍기는 일찌감치 회전 기능을 잃었다. 몇 해 전에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너무 오래된 모델이라 부품이 단종되고 없었다. 타이머 기능은 잘 사용하지 않으니 상관이 없지만, 제1단계 스위치인 미풍은 회전속도를 잃어버렸다. 간신히 도는 수준이어서 바람이 잘 일지 않는다. 2단계부터의 기능은 살아 있지만, 전체적으로 날개 부위가 고정되지 않고 제멋대로 도니 만지는 게 마뜩잖다.
이십 년을 지나느라, 플라스틱 외관은 이미 제 빛깔을 잃었다. 누렇게 변색한 데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과자를 사 먹으면서 얻은 스티커를 붙였던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띈다. 그 부분의 변색은 더디니, 나머지 부분과 확연히 다르다. 날개는 여러 번 교체한 듯하다. 그러나 녹도 슬지 않고 여러 해를 지킨 것은 해마다 보관할 때 비닐을 씌우는 등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은 까닭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버리고 새로 한 대 사라’고 했지만, 막상 아내는 버리기가 망설여지는 모양이다.
‘혼자서 쓰는 건 지장이 없는데…….’
품 안이든, 집안이든 지닌 물건을 버리는 건 반드시 쉽지만은 않은 법이다. 그것도 한두 해가 아니라 십수 년 세월을 같이한 물건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내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크고 작은 찜통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같다.
본의였던 아니었든 간에 오랜 시간 써 온 물건에 담긴 건 우리네 남루한 살림살이의 흔적이다. 내핍을 강조하지 않았달 뿐이지, 쉽게 새 물건으로 바꾸지 못한 것은 역시 넉넉하지 못한 생활 탓이기 때문이다.
거듭 확인하거니와 우리가 지녀온 오래된 물건에 담긴 건 우리 가족이 함께 건너온 세월이다. 그리고 그 세월 속에는 아리고 쓰린 아픔의 옥니뿐 아니라 따뜻했던 시간의 기억조차 오롯하게 배어 있다. 그 점이 하찮은 물건인데도 함부로 그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2008. 6. 10. 낮달
물론 21년 된 선풍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 지금은 방방이 한 대, 거실과 주방에도 각각 한 대씩 있으니 선풍기는 모두 5대다. 확인해 보지 않아도 모두 얼추 10년이 가까워지는 것들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보관했던 창고에서 꺼내니 목이 부러진 게 한 대 있었다.
물론 나는 그걸 서비스센터에 가서 갈아왔다. 오래된 거라 같은 빛깔의 부품이 없다면서, 흰색 선풍기에 연두색 목으로 갈아 끼운 그놈을 우리는 썩 잘 쓰고 있다. 선풍기를 끄러 일어날 때마다 리모컨이 간절히 그리웠다. 올에는 그놈을 한 대 살까 싶은 생각인데, 글쎄다.
27인치 브라운관 텔레비전은 2015년까지 못 갔다. 2012년에 이 지역으로 옮겼는데 어느 날 고장이 났고, 새 걸 사는 게 좋겠다는 서비스 요원의 충고를 받아들여 43인치 엘시디 텔레비전으로 바꾸었다. 43인치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 세상이 따로 있구나 싶더니 요즘 눈이 침침해지면서 화면 위에 쓰인 글자가 아물아물하는데, 아들 녀석은 갈 때가 되었다고 은근히 충동질이다. 그러나 나는 2년쯤 더 버텨볼 작정이다.
2020.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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