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토요일에 대구로 사진 전시회를 다녀왔다. 오랜만에 귀향한 아들 녀석이 딸아이와 함께 전시회 구경을 가자고 해서였다. 사진가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로버트 프랭크란다. 문외한인 내겐 낯선 이름이었지만 주말 오후에 맞춤한 일정이라 내외가 따라나섰다.
“어디서 하는 전시야?”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요.”
역시 낯선 이름이다. 하긴 대구를 떠난 지 40년이 다 됐으니 낯설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대학 시절 이후, 대구에서 어떤 전시회도 찾은 기억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 영월에서 열리는 국제사진전을 이태 정도 다닌 게 고작이다. [관련 글 : 사진과 역사 , 영월로의 짧은 여행 / 강원도 산골마을 영월, ‘사진 축제’에 걸다]
3년 만의 전시장 ‘나들이’, 루모스 개관전
그런데 아이들은 뜻밖에 사진이나 미술 전시회 따위를 챙겨보는 편이다. ‘로버트 카파 전’이 열릴 때는 저희끼리 다녀왔고, 2015년 부산에서 열린 ‘월드 프레스포토’ 전시회에도 우릴 데려갔다. 그러니 이번 전시회는 꼭 3년 만이다. 우린 아예 전시회 따윈 잊고 살아온 것이다. 그게 어찌 우리만의 일이랴. 책 한 권 사 읽는 일도, 하다 못해 영화 한 편 보는 일도 쉽지 않은 게 오늘의 우리 부모들 아닌가 말이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로 찾은, 남구 이천동 건들바위 근처의 아트스페이스 루모스(LUMOS)는 평범한 잿빛의 5층 건물이었다. 주의해서 찾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칠 법한, 외벽에 간판 하나도 걸려 있지 않았다. 돌아와서야 확인한 것은 루모스는 대구에서 하나뿐인 사진 중심 공간이고,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1924~ ) 전시회는 루모스의 개관전이었다.
현대사진의 아버지, 2년 동안 찍은 미국 『미국인들(The Americans)』에 담다
로버트 프랭크는 ‘현대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 사진가다. 스위스 출신으로 1947년 미국으로 이주한 프랭크는 상업사진가로 성공했지만, 돈에 골몰하고 있는 자신과 미국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남미와 유럽으로 사진여행을 떠난다.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의 주제 아래 구성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며 포토에세이의 형식을 정립한 것이 이 무렵이다.
1955년, 그는 중고 포드차를 한 대 사서 2년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2만 컷 이상의 사진을 찍게 된다. 지역 주민의 의심을 사서 경찰에 잡히기도 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그는 1958년 사진집 「미국인들(Les Américains)」을 발표했는데 이는 미국 사진계가 그의 사진을 거부했으므로 파리에서 출판해야 했다.
이듬해인 1959년 펴낸 사진집 『미국인들(The Americans)』에 대해 미국 평단은 그의 사진이 “의미 없이 흔들렸고, 입자가 거칠고 노출은 우중충하며 술에 취한 듯 수평이 어긋난 데다가 대체로 엉성하다.”라고 평가 절하했다.
‘흑백인 전용칸이 구분된 전차’, ‘흑인 유모가 안고 있는 백인 아이’ 등의 사진이 담긴 사진집 『미국인들(The Americans)』은 인종차별 등 미국의 어두운 단면을 포함하고 있어서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은 1,100권 정도 팔리고 곧 절판되고 말았지만, 재판을 찍던 1968년쯤엔 이미 미국과 전 세계로 퍼져나가 사진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사진집으로 꼽히게 되었다.
회고전 형태로 열리는 이 전시회는 액자에 담은 큼직한 사진 위주의 여느 사진 전시회와는 꽤 다르다. 사진 크기는 작고 한 면에 여러 장의 사진이 인화된 형태로 이루어진 전시는 다소 맥이 빠지게 하고, 아주 무성의하게 기획된 전시라는 혐의를 거둘 수 없다.
독특한 ‘팝업 전시’, 투자와 소비라는 시장의 순환을 뒤집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로버트 프랭크와 게르하르트 슈타이들의 기획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사진, 책, 영화 등을 통해서 직접적인 방식으로 프랭크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의 사진 이미지를 신문인쇄용지에 인화하여 벽에 걸거나, 천장에 매달아 설치했다.
그간 사진 작품에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하던 프랭크의 영화와 비디오 작품은 소형 휴대용 ‘빔프로젝터’를 통해 특별히 마련된 공간의 벽면에서 상영된다. 각 전시는 전시 기간이 끝난 후 바로 폐기함으로써, 투자와 소비라는 예술 시장의 일상적인 순환을 뒤집는 방식인 것이다.
캐나다 마보우 마을의 작고 다 기울어진 자신의 집에서 이번 팝업(pop-up) 전시에 대한 아이디어를 접한 로버트 프랭크는 “저렴하고, 빠르고, 정돈되지 않은 점이 난 좋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상 루모스 누리집 안내)
그래서였을까. 토요일 오후였지만 전시장 안은 한산했다. 우리 가족이 거기 머무는 동안 관객은 단 네 사람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상황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것은 불친절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전시장 어디에도 엽서와 입장권에도 이런 사실을 안내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특한 전시 방식을 확인한 것은 이 글을 쓰면서 루모스 누리집을 뒤져서였다. 좀 씁쓸했지만, 그게 예술을 올바르게 감상하기 위해서 관객이 치러야 할 몫이라면 달리 할 말은 없다.
주 전시공간 뒤편은 ‘루모스 포토북 라이브러리’였다.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수집된 국내외의 다양한 사진집 1500여 권이 비치된 이곳에는 로버트 프랭크의 초판(1958, Delpire 출간)을 비롯해 남미 사진가들의 작품집 등을 만날 수 있다.
입장료는 6천원, 나는 도록 한 권을 샀는데, 도록마저 신문지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온통 영문으로 이루어진. 우리는 거기서 1시간쯤 머물다 나와 팔공산 단풍길을 한 바퀴 돌고 귀가했다. 로버트 프랭크라는 사진가 한 사람을 공부한 시간에 만족하면서. 그의 사진이 보여주는 현실의 울림도 꽤 여운이 있음을 밝혀둔다.
전시회는 9월 7일부터 시작되어 오는 11월 30일에 마친다. 미처 모르고 있었다면 아직 20일쯤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2018. 11. 11. 낮달
참고
· 곽윤섭, 미국인이 싫어한 ‘미국인들’로 미국을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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