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이웅렬, ‘아름다운 퇴장’과 ‘4대 세습’ 사이

by 낮달2018 2018. 12. 2.
728x90

코오롱 그룹 이웅열 회장(63)의 퇴진 논란

▲ 코오롱 누리집의 뉴스란에 실린 이웅렬 회장 퇴임 선언 소식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63)의 퇴진이 화제다. 지난 23년 동안 그룹 경영을 이끌어온 이 회장은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면서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코오롱 밖에서 펼쳐보려 한다고 밝혔다고.

 

그는 내년 1월1일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코오롱은 후임 회장 없이 내년부터 지주회사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재벌그룹의 오너가 스스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재벌 오너가 물러나는 것은 대체로 경영에 대한 책임을 비켜 갈 수 없을 때나, 위법행위를 저질러 도덕적 비난을 피하는 수단으로 가끔 행해지곤 했으니 말이다.

 

얼마 전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전무가 사퇴 의사를 밝힌 것도 ‘초등학생 딸의 폭언 논란’이 확산하면서였다.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된 대한항공 일가에서도 직책에서 물러나는 일이 거듭되었다. 그러다가 이들은 어느 날 슬그머니 복귀하곤 했지만.

 

이웅렬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느꼈다”면서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한데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다 내려놓는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그는 퇴진 이유로 “새로운 시대, 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그 도약을 끌어낼 변화를 위해”서라고 했다. 특히 변화를 위해 앞장서 달렸지만, 그 한계를 느껴 “스스로 비켜야 진정으로 변화가 일어나겠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대체로 주요 일간지들은 그의 퇴진을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듯하다. 어쨌거나 외부의 압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변화의 걸림돌을 자임하면서 스스로 떠난다고 한 것을 평가하는 모양새다.

 

이 회장의 퇴진을 완전히 다르게 평가한 칼럼 두 편이 눈길을 끈다. <CBS 노컷뉴스>의 구성수 논설위원의 글 “예순두 살 ‘청년 이웅열’의 아름다운 퇴장에 박수를 보낸다”와 <경향신문> ‘여적’에 실린 이대근 논설고문의 “이웅렬과 4대 세습”이다.

 

‘예순두 살 청년’의 ‘아름다운 퇴장’

 

<노컷뉴스> 구성수 위원의 글은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표현에서 보이듯 매우 긍정적으로 그의 퇴진을 서술하고 있다. 이 회장이 전격 사퇴 선언을 하면서 인용한 사자성어 ‘시불가실(時不可失)’이 ‘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라고 본 것이다.

 

구 위원은 또 그의 퇴진이 ‘세상이 변하고 있고 변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비롯하였고, ‘산업 생태계 변화상’도 주목하면서 ‘그룹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용퇴를 결심’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장남이 있지만, 경영권 승계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인데도 60대 초반에 물러나겠다는 것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구 위원은 이를 이 회장이 “자신을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청년 이웅열’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면서 “까짓거, 행여 마음대로 안 되면 어떻습니까. 이젠 망할 권리까지 생겼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는 패기도 가졌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용퇴를 ‘아름다운 퇴장’이라고 표현하면서 구 위원은 마지막으로 “경영권을 끝까지 놓지 않으면서도 승계를 위해 온갖 꼼수와 탈법을 일삼는 다른 재벌그룹들에 좋은 선례가 됐으면 한다.”고 글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이대근 논설고문은 이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제목에도 ‘4대 세습’이 들어간다. 이웅렬은 코오롱그룹 창업주인 이원만의 장손자이자 이동찬의 외아들로 그룹의 3대째 세습하고 있다. 그의 아들 이규호 상무는 전무로 승진하며 이후의 경영 승계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을 4대 세습이라 표현한 것이다.

▲ 코오롱 누리집에 실린 이웅렬 회장과 사원들의 모습

이 고문의 칼럼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우버의 트래비스 칼라닉 얘기로 시작된다. 둘 다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경영에 실패하자 쫓겨난 창업자다. 피자 체인 파파존스에서 창업자인 존 슈내터가 인종차별 발언을 해 이사회에서 쫓겨난 이야기도 곁들인다.

 

‘사유물’의 ‘4대 세습’

 

그는 그 기준으로는 “직원을 지속적으로 학대한 조양호 일가가 여전히 한진그룹을 장악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고,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재벌 총수가 4대 세습까지 하는 “성공담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웅렬의 퇴진이 세습 경영을 그만두겠다는 뜻으로 오해받을 만하다고 덧붙인다.

 

이 고문은 <노컷뉴스>에서 찬사를 보낸 이 회장의 퇴진을 ‘회사의 판단’이 아니라 ‘그의 마음대로’ 이루어진 거라며, 이는 “마음이 바뀌면 다시 돌아갈 수 도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그것 바로 “코오롱이라는 기업이 그의 사유물이라는 증거”라고 못박는다. 그가 나와도 이웅렬의 ‘그룹 지분 50.4%는 불변’이라면서.

 

구 위원이 ‘경영권 승계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한 것과는 반대로 그는 “겨우 30대인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4대 세습도 진행 중이다. 자신은 금수저를 그만 물겠다면서도 아들에게는 물릴 생각인 거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이 고문은 퇴진하는 건 그의 개인적 자유지만, 그걸 “자기희생의 결단이거나 무슨 역사적 선언을 한 것처럼 포장”해서 안 된다며 그룹 홈페이지에서 자신을 ‘최고 비전 창조자(chief vision creator)’라고 소개한 이웅렬에게 마지막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그토록 잘난 체하던 잡스도 자신을 이렇게 부르지 않았다.”면서 말이다.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두 칼럼의 엇갈린 시선은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재벌경제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경제 상황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구 위원은 ‘꼼수와 탈법’을 일삼는 재벌그룹과는 달리 기업의 혁신을 위해 자발적으로 퇴진한 기업 총수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반대로 이 고문은 재벌 회장의 퇴진이 제도적 변화가 아닌 한,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해프닝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그의 퇴진을 미화하거나 포장해선 안 되는 이유다. 아들의 전무 승진을 4대 세습이 진행되는 것으로 본 점에서도 두 사람의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두 칼럼의 시각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할 만한 경제적 식견은 없지만, 이 고문의 시각에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은 이웅렬의 ‘금수저’ 운운한 발언의 함의가 탐탁하지 않아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느꼈다.”

“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한데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다 내려놓는다.”

 

자신의 지위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이라는 걸 의식하고 있는 걸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책임감과 특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좀 다르지 않나 싶다. 그가 누린 특권이든, 지고 있다는 책임감이든 아무도 그것을 준 적도 요구한 적도 없는 특권이고, 책임감이라는 얘기다.

 

회장직에서 물러나도 그의 지위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불과 한 자릿수의 지분으로도 그룹을 장악할 수 있는 한국에서 재벌의 후예로 태어났고 그 특권을 고스란히 누리며 살아왔다. 그동안 그가 졌을 책임감도 그 특권을 지키기 위한 그의 짐이었을 뿐이다. 그게 자기들의 특권을 누리는 자의 의무처럼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또 그는 내려놓는다고 했지만 그걸 다시 손에 넣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의지에 달린 이상, 본질에서 달라지는 건 없다. 그가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한국 사회에서 코오롱그룹에서 그의 실질적 지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코오롱그룹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 것인지, 그가 말하는 ‘창업’과 경영권 승계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그리고 그가 다시 총수의 자리에 돌아오는 날이 언제쯤일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2018. 12. 2.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