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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

⑦ 입하(立夏), 나날이 녹음(綠陰)은 짙어지고

by 낮달2018 2024.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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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첫 번째 절기 입하(立夏)

▲ 5 월은 신록이 짙어져 가는 시기다 . 어저께 다녀온 금오산 숲길에 눈록빛 녹음이 짙어져 가고 있다 .

5월 6일(2024년은 5월 5일), 어린이날 대체 휴일은 ‘입하(立夏)’다. 24절기 중 7번째 절기이자 여름의 첫 번째 절기인 입하는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들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절후이다.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으로 맥량(麥凉), 맥추(麥秋)라고도 하며, ‘초여름’이란 뜻으로 맹하(孟夏), 초하(初夏), 괴하(槐夏), 유하(維夏)라고도 부른다.

입하는 봄도 완연히 무르익어 여름으로 옮아가는 시기다. 산과 들에는 나무와 숲의 연둣빛 신록(新綠)이 점차 짙어지고 묘판에는 볍씨의 싹이 터 모가 한창 자란다. 논에서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이어지고, 밭의 보리 이삭이 패기 시작할 시기다.

며칠 동안 서늘했던 날씨는 어저께부터 20도가 넘는 여름 날씨로 이어진다. 4일 토요일 최고 기온은 29도에 이르렀다. 입하 무렵이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는 시기여서 ‘입하’가 들어가는 속담이 유난히 많다.

‘입하’와 관련된 농가 속담들

옛날 재래종 벼로 이모작을 하던 시절에는 입하 무렵에 한창 못자리하므로 바람이 불면 ‘씨나락’(볍씨)이 한쪽으로 몰리게 된다. 이때 못자리 물을 빼서 피해를 방지하라는 뜻으로 “입하 바람에 씨나락 몰린다.”는 속담이 있었다.

“입하 일진(日辰)이 털 있는 짐승 날이면 그해 목화가 풍년 든다.”는 속담은 겨울에 눈이 많은 해에는 목화가 풍년 든다는 뜻으로 쓰인다. 입하 무렵은 모심기가 시작되므로 농가에서 들로 써레를 싣고 나온다고 해서 “입하 물에 써레 싣고 나온다.”는 속담도 있다.

▲ 써레질. 입하 무렵엔 모심기가 시작되므로 '입하 물에 써레 싣고 나온다'는 속담도 있다. ⓒ 굿모닝충청

재래종 벼를 심던 시절에는 입하 무렵에 물을 잡으면, 근 한 달 동안을 가두어 두므로 비료 성분의 손실이 커서 농사가 잘 안된다. 그래서 “입하에 물 잡으면 보습에 개똥을 발라 갈아도 안 된다.”라는 속담도 생겼다. 모두 입하를 전후하여 못자리하고 모내기를 하는 농가의 농사력과 이어지는 얘기다.

입하 무렵의 농사·옷감·음식·천렵을 노래한 <농가월령가>

정학유(1786~1855)의 <농가월령가> 4월령에도 이러한 농촌의 풍경과 풍속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있다. 들머리에는 ‘4월의 절기’ 입하, 소만을 소개한다. 비 온 뒤 볕이 나서 화창한 날씨와 떡갈나무 잎이 피어날 때 뻐꾸기, 보리 이삭 패어날 때의 꾀꼬리 울음소리를 노래하는 절후라는 것이다.

▲ 동네 공터에 심은 보리가 팼다. 아직도 시골 냄새가 풍기는 도시에 사는 것은 편안한 일이다.

 

이어지는 노래는 ‘4월의 농사’다. 면화 재배, 써레질과 이른 모내기, 추수까지의 양식 걱정, 누에치기의 장려, 가뭄 대비 물길 내기, 비 새는 지붕 고쳐 장마에 대비하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사월의 옷감과 음식’ 이야기다. 무명 바라기, 삼베와 모시로 여름옷 짓기, 벌 치기[양봉(養蜂)], 그리고 계절의 별미로 느티떡과 콩찌니를 노래한다. ‘느티떡’은 쌀가루에 느티나무 연한 잎을 섞어 찐 떡인데 콩찌니는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사월령의 마지막 부분은 ‘4월의 천렵(川獵)’이다. 시냇물 흐르는 백사장을 찾아 그물을 둘러치고 싱싱한 물고기를 잡아내어 바위에 솥을 걸고 솟구쳐 끓여 낸다. 세상에 어떤 진미인들 이 맛에 비기겠느냐는 시골 농부의 안분지족이 소박하게 빛난다.

이팝나무, 수국, 아까시나무 꽃에 찔레꽃까지…꽃의 향연

입하 무렵에는 마을마다 한두 그루쯤 있는 이팝나무에 꽃이 핀다. ‘입하(立夏)’ 무렵에 핀다고 하여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르다가 ‘이팝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또 꽃이 마치 흰 쌀밥 같이 온 나뭇가지를 뒤덮으며 피어 조상들이 쌀밥나무라 부른 나무다. 이팝나무 꽃은 한꺼번에 잘 피면 그해 풍년이 들고, 꽃이 신통치 않으면 흉년이 들 징조라고 하여 이팝나무를 통해 그해의 풍흉을 점쳤다.

우리 동네를 비롯한 이 도시에는 이팝나무 가로수를 심은 거리가 많다. 한 일주일 전만 해도 기미가 보이지 않던 이팝나무 꽃은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거리를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산행길에 나서면 아까시나무 꽃, 수국, 장미가 서둘러 피었고, 찔레꽃도 두어 송이 피었다.

▲ 우리 동네의 가로수는 모두 이팝나무다. 예년보다 이르게 핀 이팝나무 가로수가 풍성하다.
▲ 동네 어느 집에 핀 수국이 탐스럽다.
▲ 산행길에서 만난 아까시나무 꽃. 올해는 유난히 개화가 이른 듯하다.
▲ 동네 공터 밭 주변에 핀 찔레. 이르게 핀 꽃으로 찔레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봄은 절정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봄은 절정을 넘어 천천히 여름에 그 자리를 넘겨주려 하고 있다.

2019. 5. 5. 낮달

 

 

[서(序)]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여름 절기
소만(小滿), 밭에선 보리가 익어가고
망종(芒種), 남풍은 때맞추어 맥추(麥秋)를 재촉하고
하지(夏至) - 가장 긴 낮, 여름은 시나브로 깊어가고
소서(小暑), 장마와 함께 무더위가 시작되고
‘염소 뿔도 녹이는’ 더위, 대서(大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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