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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

⑨ 망종(芒種), 남풍은 때맞추어 맥추(麥秋)를 재촉하고

by 낮달2018 2023.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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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세 번째 절기 ‘망종(芒種)’

▲ 망종은 맥추를 재촉하는 계절이다 . 우리 동네 공터에도 보리가 익어가고 있다. 밭 자편의 하얀 건물은 커피집이다. 5월 28일.

내일(6월 6일, 2024년도는 5일)은 망종(芒種)이다. 여름의 세 번째 절기이자, 24절기 가운데 9번째 절기로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든다. 망종(芒種)의 망(芒)은 ‘까끄라기 망’자로, 벼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곡물을, 종(種)은 씨앗을 말한다. 이 시기가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 적당한 계절이란 뜻이다.

 

‘발등에 오줌 쌀’ 만큼 바쁜 절기

 

이 시기의 농촌은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적당한 때다. 그래서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망종’이라는 말이 생겼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5월령은 “오월이라 중하(中夏)되니 망종 하지 절기로다. / 남풍은 때맞추어 맥추(麥秋)를 재촉하니 / 보리밭 누른빛이 밤사이 나겠구나.”라고 노래한다.

 

모내기와 보리 베기가 겹치는 이 무렵의 농촌 상황은 북쪽과 달리 보리농사가 많았던 남쪽일수록 바쁘기 이를 데 없었다. 남쪽에서는 이때를 ‘발등에 오줌 싼다’고 할 만큼 바빴다.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처럼 보리는 망종까지는 모두 베어야 했다. 망종을 넘기면 보리가 바람에 쓰러지는 수가 많기 때문이고 보리를 베어야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망종에는 ‘망종 보기’라 해서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듦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음력 4월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 되어 빨리 거두어들일 수 있으나, 5월에 들면 그해 보리농사가 늦게 되어 망종 내에 보리농사를 할 수 없게 된다. 곧,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듦에 따라 그해의 보리 수확이 늦고 빠름을 판단할 수 있었다.

 

“망종이 4월에 들면 보리의 서를 먹게 되고 5월에 들면 서를 못 먹는다.”고 하는 속담이 있다. ‘보리의 서를 먹는다’는 말은, 그해 풋보리를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양식이 모자라 보리 익을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풋보리를 베어다 먹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망종의 풍속들

▲ 고향마을의 보리밭. 누렇게 익은 보리가 넘실대는 광경도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6월 1일.

지방에 따른 망종의 풍속도 다르다. 경남 섬 지역에서는 망종이 늦게 들어도 안 좋고 빠르게 들어도 안 좋으며 중간에 들어야 시절이 좋다고 한다. 특히 음력 4월 중순에 들어야 좋으며, 망종이 일찍 들면 보리농사에 좋고, 늦게 들면 나쁘다고 믿는다. 부산 일부에서는 망종에, 날씨가 궂거나 비가 오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망종 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서 손으로 비벼 보리 알을 모은 뒤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갈아 채로 쳐 그 보릿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전남 지역에서는 이날 ‘보리 그스름(보리 그을음)’이라 하여, 풋보리를 베어다 그을음을 해서 먹으면 이듬해 보리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보리가 잘 여물어 그해 보리밥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망종 날, 보리를 밤이슬에 맞혔다가 그다음 날 먹는 곳도 있다. 이렇게 하면 허리 아픈 데 약이 되고, 그해에 병이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이날 하늘에서 천둥이 치면 그해의 모든 일이 불길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우박이 내리면 시절이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남과 충남, 제주도에서는 망종 날 하늘에서 천둥이 요란하게 치면 그해 농사가 시원치 않고 불길하다고 믿는다. 모두가 농사에 목을 매고 그 풍흉에 따라 삶이 달라지던 시절의 민속적 믿음이다.

 

‘망종 넘은 보리’와 ‘스물 넘은 비바리

▲ 아파트 숲속에 익은 보리밭.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보리밭 주변을 지나간다.
▲ 동네의 단독주택 사이에 난 공터에 심은 보리가 실하게 익어가고 있다. 6월 3일.
▲ 고향 마을 어귀의 보리밭.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추었던 보리밭은 요즘 드문드문 다시 보이고 있다. 6월 1일.
▲ 산행길 길목의 못자리. 이제 드문드문 모내기가 시작되고 있다.
▲ 녹음이 짙어지는 샛강생태공원에는 연꽃이 소리없이 번지고 있다. 연두에서 진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다.

망종 날과 관련한 표현으로 ‘망종 넘은 보리, 스물 넘은 비바리’라는 말이 있다. 망종을 넘긴 보리는 익어서 쓰러져 수확이 적고, 스물이 넘은 여성도 외모나 생리적으로 차츰 기울어져 값어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여자 나이 스물이 결혼 적령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반영된 표현이다.

 

우리 동네 아파트 앞 공터에 심은 보리도 누렇게 익었다. 불과 서너 평밖에 안 되는 좁은 땅이지만,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보리밭을 둘러보며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따뜻한 미소가 묻어난다. [관련 글 : 5월, 보리와 보리밭]

 

한때는 ‘가난’의 상징이었던 보리가 요즘엔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을 받을 만큼 세상은 변했다. 문학적으로 보리는, 언 땅에서 겨울을 나는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수필가 한흑구(1909-1979) 선생이 ‘보리’를 통해 노래한 것은 ‘고난을 견디며 끈질기게 살아가는 보리의 강한 생명력에 대한 예찬’이었다.

 

다음 절기는 하지(夏至), 오는 22일이다. 5월 말에 날씨가 춤을 추었다. 30도를 넘는 날이 계속되다가 이제 평년 기온으로 돌아왔는데, 어쨌든 이상 고온이 낯설지 않을 만큼 요즘 날씨는 널을 뛰는 것이다. 올여름은 지난해만큼 덥지 않으리라고 하지만, 모두가 예측일 뿐이다.

 

지구온난화든 무엇이든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환경의 변화는 인간과 그 문명이 자초한 것이다.  망종을 지나며 농사도 집안일도 미리 장만해 두는 선인들 삶의 지혜가 인간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날씨와 계절의 순환을 넘기는 힘이었음을 새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2019. 6. 5. 낮달

 

[()]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여름 절기

입하(立夏), 나날이 녹음(綠陰)은 짙어지고

소만(小滿), 밭에선 보리가 익어가고

하지(夏至) - 가장 긴 낮, 여름은 시나브로 깊어가고

소서(小暑), 장마와 함께 무더위가 시작되고

염소 뿔도 녹이는더위, 대서(大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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