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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과 나무 이야기

한여름의 꽃들 – 나팔꽃에서 연꽃까지

by 낮달2018 2026. 8. 2.

주변에서 만나는 여름꽃 – 나팔꽃, 무궁화, 분꽃, 연꽃, 도라지꽃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구미시 고아읍 문성지의 백련.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데크 길에서 내려찍은 사진이다.
▲ 우리 동네 중학교 뒤쪽 북봉산 등산로 이정표 아래의 수국. 안타깝게도 포기뿐이었다.

여름꽃이라면 뭐가 대표가 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물으니 여러 가지 답이 뜨는데, 그중 한 블로거는 능소화와 연꽃, 수국과 해바라기라고 답했다. 그래,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이미 능소화는 파장이다. 가파른 산길을 땀을 흘리며 올랐는데, 금오산 소림사 능소화는 지고 얼마 남지 않았지 않은가.

 

수국과 해바라기

 

수국은 7월 초순에 다온숲에서 조금 이른 듯하게 만났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수국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어저께 확인한 건 중학교 뒤쪽 북봉산 등산로 입구 이정표 앞에 피어난 한 포기가 고작이다. [관련 글 : 옛 쓰레기 매립장 위에 피어난 수국(水菊)의 정원]

 

해바라기는 동네에선 본 적이 없다. 아, 이웃 칠곡, 내 고향이 있는 읍의 어느 마을에 해바라기 단지가 있다고 해서 어저께 잠깐 들렀더니, 동네 어귀에서 만난 촌로는 ‘해바라기는 끝났다’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 마을은 고향 사람들이 오래 ‘말가실’이라 불러온 동네였다. 법정동명은 포남3리지만, 우리말 ‘말가실’을 한자로 써서 ‘청계(淸溪) 마을’로 불리는 이 동네에 약 천 평 규모의 아늑한 해바라기 꽃밭이 조성되어 나들이객이 드나든다고 했었다.

▲ 해바라기를 만나러 갔지만, 허탕이었다. 사진은 2013년 가을 인근 빗내들에서 열린 해바라기 축제에서 찍은 해바라기다.

올해는 어떻게 계속 헛물을 켜기만 한다. 돌아와서 인터넷에서 사진 자료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해바라기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으나, 나는 함형수(1914~1946) 시인의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을 좋아한다. ‘노오란 해바라기’와 ‘끝없는 보리밭’, 그 노란색과 푸른색의 선명한 색채 대조를 통해, 죽음을 뛰어넘는 역동적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이 시를 남기고 시인의 30대 초반에 요절했다. [관련 글 :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문성지에서 만난 홍련. 이 홍련은 여느 것에 비겨 붉은 빛이 아주 강했다.
▲ 문성지의 백련들. 백련의 오묘한 빛깔이 자아내는 단아한 기품 앞에선 일종의 환희의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문성지의 백련과 북봉산 어귀의 나팔꽃

 

연꽃은 지난 7월 26일에 문성지를 다녀왔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아차 싶어서 갔더니 온 수면이 백련과 홍련, 그리고 수련에 뒤덮여 있었다. 해마다 찍는 연꽃이지만, 오묘한 백련의 빛깔이 자아내는 단아한 기품 앞에선 일종의 환희의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올해는 조만간 성주 뒷미지의 연꽃을 만나러 갈까 생각 중이다.

 

지난 7월 26일에 들러 찍은 문성지의 연꽃을 바라보며, 나는 왜 그 백련의 오묘한 꽃빛에 내가 홀려 있는지 알 듯도 하다. 온전히 흰빛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히 베이지도 아닌 그 꽃잎의 질감은 이 세속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어떤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것이다.

 

나팔꽃은 앞서 나온 꽃과는 비기면 무명의 꽃에 지나지 않는다. 텃밭의 밭둑에, 풀밭에,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연파랑의 모닝글로리를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보곤 한다. 나팔꽃은 보는 이의 눈에 스스럼없이 담기며, 아무 데서나 정갈하게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이다. [관련 글 : 나팔꽃, 그 연파랑의 겸양과 절제]

▲ 동네 중학교 옆 북봉산 자락의 풀밭에서 자라고 있는 나팔꽃. 나팔꽃도 이른 아침에 활짝 꽃잎을 연다.
▲ 법무부 구미준법센터 주변에서 만난 검붉은 빛깔의 나팔꽃. 예전에 비기면 꽃잎이 무성하지 않았다.

그게 그 꽃이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비슷한 이미지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건 그것들이 말없이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저마다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올해는 옛 기억을 더듬어 저 아래, 법무부 구미준법센터 주변에서 자줏빛 나팔꽃도 찍었다. 한때 거기는 나팔꽃이 무성히 핀 곳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단출해져 있었다.

 

오후 4시 이후에 피는 꽃 분꽃

 

아침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오리전문점 화단에서 꽃잎을 오므리고 있는 분꽃을 만난다. 분꽃은 6월부터 10월 사이, 주로 오후 4~5시경(저녁 무렵)에 피기 시작해 다음 날 아침에 오므라드는 게 특징이다. 옛 시골 어머니들에게 저녁밥을 지을 시간을 알려주던 정겨운 꽃이다. 저녁에 핀다고 하여 ‘저녁 꽃’ 또는 영어로 ‘네 시의 꽃(Four O'Clock Flower)’라 불리었다. [관련 글 : 분꽃 - 유년의 기억 속 그 꽃]

▲ 우리 동네 오리전문점 화단의 분꽃. 오후 4시 이후에 찍은 사진이다. 오후에 피어서 아침이면 꽃잎을 오므려 버린다.

분꽃은 잎사귀가 큼직하니 시원하다. 꽃도 그 생김새가 아주 곱다기보다는 진홍과 노랑, 하얀 꽃이 서로 어우러져 내뿜는 강렬한 색감이 곱고 처연하다. 아침에는 잔뜩 오므려 반쪽이 된 꽃을 보다가 오후 늦게 활짝 피어난 꽃을 바라볼 때 그 느낌은 훨씬 뜨겁다.

▲ 중학교 울타리 건너편 북봉산 자락에 이어진 무궁화 겹꽃. 글쎄, 이 꽃은 실패한 개발이 아닐까 생각한다.
▲ 중학교 화단에서 찍은 하얀 무궁화와 붉은 꽃. 홑꽃이 훨씬 아름답고 선명하다. 무궁화는 석달여 동안 매일 새꽃이 피고 진다.

무궁화, 다함이 없는 꽃

 

무궁화도 여름꽃이다. 무궁화는 뜻밖에 동네 곳곳에, 어린이 놀이터 앞에, 중학교 울타리 안을 빙 둘러 희고 붉은 꽃들이 화사하게 피었다. 한때 나는 그 꽃의 이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궁(無窮)’이란 ‘끝(다함)이 없다’는 뜻인데, 하필이면 이 꽃이 왜 하는 억하심정이 내겐 있었다.

 

그러나 쉰이 넘어 아이들에게 ‘무궁화’를 다룬 글을 가르치면서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무궁화가 무궁한 것은 끝없이 피고 지는 강인한 생명력과 시들지 않는 민족의 은근과 끈기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매일 새로운 꽃이 약 100일 동안 피어나는 이 꽃에 ‘무궁화’ 이름을 붙인 건 절대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모두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라고 알고 있지만, 그와 관련한 어떠한 법령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들어가고, 대통령 휘장과 행정·입법·사법 3부의 휘장을 모두 무궁화로 도안하여 제정·사용하게 했으니, 무궁화가 ‘나라꽃’이 된 건 일종의 ‘관습’이다. 오는 8월 8일은 어린이들의 발의로 어린이 의회의 공식 의결로 만들어진 ‘무궁화의 날’이니 새롭게 무궁화를 바라봄 직하지 않은가. [관련 글 : 무궁화의 날을 아십니까]

▲ 우리 동네 카페 앞의 도라지밭의 도라지꽃. 비빔밥의 빼놓을 수 없는 재료가 되는 도라지꽃은 아주 오묘한 생김새를 자랑한다.

그리고 도라지꽃

 

비빔밥이나 제삿밥 짓는 데 필수로 들어가는 나물인 ‘도라지’의 자줏빛, 흰빛의 꽃도 지금 한창이다. 동네의 카페 앞에는 열 평쯤 되는 밭에 도라지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다. 도라지는 더덕과 함께 널리 알려진 여러해살이풀이다. 산이나 들에서 잘 자라며 한반도를 비롯해 일본 전역, 중국, 동부 시베리아에 서식한다. 꽃은 7~8월에 청 자주색으로 피는데 흰색의 꽃이 피기도 한다. 이를 백 도라지라고 하며, 꽃이 겹으로 피는 것을 겹도라지라고 한다.

 

도라지꽃의 봉오리는 마치 풍선 모양 같아서 영어로는 ‘풍선꽃(Balloon flower)’이라고 불리고, 통꽃은 오각형 별 모양이다. 암술과 수술도 오각형을 이루는 정교한 보석 같은 모양인데, 보라색과 흰색을 띤 청초한 모습은 비빔밥의 재료가 되는 나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기품으로 그윽하다. [관련 글 : 능소화와 도라지꽃의 계절]

 

‘겪어보지 못한 뜨거운 여름’을 지내며

 

요즘은 매일 최고 기온을 갈아치우는 기록이 알려지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여름’이 이어지고 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가물은 깊어지는데, 이 여름은 언제쯤 기세가 꺾어질지도 내다보지 못한다. 전 세계적인 기상 이변과 그걸 고스란히 견뎌내야만 하는 인류는 그간 누려온 모든 영화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기후 위기로 인한 인류세의 종말을 지나고 있지만, 이 여름은 그래도 끝날 것이다. 가을에 자리에 내주고 여름은 황망히 퇴각할 것이다. 그나마 이 재앙의 세기를 살아가는 인류에게는 아직도 자연의 순환이 형식적으로나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을에 다시 만날 수확과 풍요는 그 어떤 희생의 과실로 인류에게 다가오게 될 것인가.

 

 

2026. 8.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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