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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과 나무 이야기

강아지풀 닮은 ‘수크령’, 우리말 이름?

by 낮달2018 2025. 11. 22.

[풀꽃 이야기] 볏과의 여러해살이풀 ‘수크령’, ‘암크령’도 있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수크령은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 생물다양성
▲ 강아지풀. 수크령은 강아지풀과 비슷하지만, 그것보단 휠씬 키가 크고 꽃차례도 크고 색도 진하다.
▲ 구미 낙동강체육공원의 수크령. 버즘나무 사이로 낸 맨발길 부근의 언덕에 수크령 군락이 발달해 있다.

도시라곤 하지만, 동네를 벗어나면 바로 논밭이 펼쳐지는 지방에 사는지라 풀과 나무야 일상으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주변에 풀과 나무 천지라고는 해도 그걸 ‘안다’는 건 별개의 문제다. 들이나 산에 가서 자신이 이름을 아는 풀과 나무를 세어보라. 10개를 채우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심히 일상에서 풀꽃을 스쳐 지나가기만 하다가도 어떤 동기든 그 이름을 알게 되면, 그 관계가 달라진다. 그건 바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에 해당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름을 알게 된다는 건 ‘관계의 출발’이며, 거창하게는 ‘삶의 확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수크령을 처음 만난 게 2022년 10월, 가족들과 대부도 가는 길에서였다. 시흥 배곧공원을 지나는데, 강아지풀이라고 하기엔 훨씬 큰 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거였다. 그때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서야 그게 ‘수크령’이라는,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이라는 걸 알았다. 얼핏 듣고는 그게 외국어 이름이라고 생각하고만 있었다. [관련 글 : 시화호와 대부도의 낙조]

▲ 2022년 10월 대부도로가는 길 시흥의 배곧공원에서 만난 수크령.

뒤에 예의 수크령이 구미 강변체육공원 입구의 길가를 뒤덮고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 더는 수크령이 낯선 풀이 아니게 되었었다. 그러나 무심히 지나다니면서 그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았었다. 날이 갈수록 쇠퇴하는 기억력 덕분에 그 이름을 상기할 필요할 때면 대부도로 검색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10월에 체육공원에 갔다가 수크령 사진을 좀 찍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사전과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찾아보았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에 따르면 ‘그령’은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이는 ‘암크령’과 동의어다. ‘수크령’은 다른 표제어로 올려져 있다. <식물생태보감>을 펴낸 생물학자 김종원 교수(계명대)는 수크령과 암크령을 한 쌍으로 보고 중국 한자명 낭미초(狼尾草)는, 개(狗)가 아니라 ‘이리(狼, wolf)의 꼬리를 닮은 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령은 어원이 글ᄒᆡ영’, ‘글희영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앞엣것은 중국어 단어집인 <역어유해(譯語類解)>(1690)에 나오는 말인데, 중국어를 한글로 쓴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뒷엣것은 주자의 <가례>를 언해한 <가례언해(家禮諺解)>(1632)에 실려 있다.

 

둘은 비슷한데, 같은 종의 암수 종은 아닌 듯하다. 단순히 암수 종을 구분한 것이라면, 중세국어 때 ㅎ종성체언가 예사소리와 이어지면서 이 덧나서 크령이 되었다고 볼 수 있긴 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도 조금 다른데,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 생물 다양성의 설명은 훨씬 상세하다. 그런데 두 종 간의 관계에 대해선 언급이 따로 없다.

 

수크령은 길가에 흔하게 자라는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속이나 한적한 곳에는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생김새가 강아지풀과 비슷하지만, 그것보단 휠씬 키가 크고 꽃차례(꽃이 꽃대에 붙는 순서나 배열, 혹은 그 꽃이 붙은 줄기나 가지)도 크고 색도 진하다. 또 잎의 질이 매우 억세어서 잘 끊어지거나 문드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수크령은 아름다운 꽃대(이삭) 덕분에 가을철에 특히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여 관상용으로 조경, 정원, 도심 녹지, 공원, 아파트, 도로 중앙분리대 등에 널리 심는다. 뿌리가 얽혀 토양을 단단하게 잡아주어 토양 유실을 막는 효과가 있어서 사방 녹화용으로도 쓰이고, 또한, 줄기와 잎이 질겨 섬유용이나 공예, 부케 제작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크지 않고 순하며 예쁘장한 강아지풀에 익숙한 눈에는 수크령이 좀 징그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군락을 이루어 바람에 나부끼는 수크령이 연출하는 풍치는 예사롭지 않다. 이맘때 신문 화보를 장식하는 이미지 가운데 수크령이 적지 않다. 지난달 서울 가서 가보려 했다가 무산된 낙산성곽길 주변에도 빽빽하게 자란 수크령이 바람에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있었다.

▲ 구미 낙동강체육공원에 이어진 수크령 군락.
▲ 비에 젖은 수크령. 연합뉴스 사진.
▲ 서울 낙산성곽길을 따라 이어지는 수크령 군락들. 의외로 주변에 수크령을 심은 공원 등이 많다.

 

 

 

2025. 11. 2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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