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화사한 비애, 저물며 오는 이의 ‘분꽃 향내’, 혹은 소망과 연민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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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 원산 여러해살이풀 분꽃은 기후 때문에 한국선 한해살이풀
아침에 맨발 걷기를 하는 동네 중학교 뒤편 북봉산 자락을 등지고 선 음식점의 건물 외벽 앞 좁다란 화단에는 빨갛고 노란 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남아메리카 원산인 분꽃은 분꽃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원산지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한해살이풀이다. 한국에서 생태가 달라지는 것은 분꽃이 추위에 약하여, 한국의 겨울을 뿌리로만 버티기 어려워 대부분의 개체가 겨울을 나지 못하고 죽기 때문이라고 한다.
둥글게 익는 검은 열매 안에는 흰 가루가 들어 있어 ‘분(粉)’꽃이 되었다. 여성들이 얼굴에 바르는 그 ‘분’ 말이다. 분은 ‘연지(臙脂)’와 함께 ‘지분(脂粉)’으로 축약해 부르는 대표적인 화장품이었다. 분꽃은 내 유년 시절, 우리 집 근처의 고샅길마다 심어졌던 꽃인데, 나는 어른들이 ‘분꽃’이라 부르는 꽃이 골목마다 피어 있었던 걸 기억한다. 아마 분꽃은 내가 태어나 가장 먼저 알게 된 꽃 이름일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부모님이 나가서 살던 신작로 마을의 방앗간으로 온 식구가 이사할 때까지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산 아래 동네에서 자랐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던 때, 다른 이에게 넘어갔던 우리의 옛집은 진작에 지상에서 사라졌다.
태어나 가장 먼저 알게 된 꽃, 분꽃
두 채의 초가로, 세 칸 본채는 가운데 마루를 두고 오른쪽은 방, 왼쪽은 부엌이었는데, 마루는 나무가 아니라, 시멘트로 시공한 것이었다. 웬 시멘트인고 하니, 전쟁 때 피란을 갔다가 돌아와 보니, 군인들이 남기고 간 것으로 보이는 시멘트가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한때 목수로도 일했던 부친은 그걸로 부실한 대청을 깔끔하게 수리한 거였다.
별채에는 맨 오른쪽에 디딜방아가 있었던 것 같고, 집을 둘러싼 돌담 아래 골담초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돌담의 끝에 ‘삽짝’이 있었다. 흔한 시골의 사립문이었는데, 나는 바랑을 이고 탁발을 온 스님에게 놋 주발에 든 쌀을 가져다 주기를 즐겼었다.
우리 집 대지는 동네보다 조금 높았던 것 같다. 제법 긴 골목 끝에 솟을대문을 지나 들어가는 아랫집은 고래 등 같은 기와집 고가였다. 그 주인이 노름꾼으로 큰돈을 따와서 지은 집이라 했다. 높다란 축대 위에 올라앉은 기와집은 아이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아래 기와집 손녀 만이의 죽음
그 집에 들어가 볼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높다란 축대 위 부엌 앞에 아름드리나무의 속을 파낸 만든 구정물 받이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사랑채에서 쩌렁쩌렁 울리던 노인의 목소리도 잊을 수 없다. 만아! 만아! 그는 늘 딸(혹은 손녀일지도 모른다)의 이름을 불러댔고, 만이라 불린 소녀는 그 사랑 앞에 대령하곤 했다.
그녀가 어떤 연령대였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날, 목을 매었던가, 무슨 극약을 삼켰는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음침한 고가에서 새어 나오던 짓눌린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떤 알지 못한 두려움에 몸을 떨었던 것을 기억한다.
만이의 상여가 나가던 날에도 골목길에는 분꽃이 피어 있었던가. 나는 그 꽃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만, 꽃의 빛깔과 향기 따위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성년이 되어 분꽃을 처음 만났을 때도 나는 이게 분꽃이라고? 하면서 심드렁하기만 했다.


저녁에 피어 아침에 지는 꽃
음식점 화단에 심어진 분꽃은 붉은색과 노란색, 이 둘이 섞인 개체들이다. 흰 꽃은 중학교 뒤의 어느 농가 마당에 피어 있다. 줄기는 녹색으로 마디가 있고, 높이는 60~100cm가량으로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달걀 모양의, 끝이 뾰족한 잎은 마주나고 꽃은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해 질 무렵부터 아침까지 핀다.
아침에 운동하고 난 뒤 한 바퀴 돌면서 분꽃을 눈여겨보곤 하는데, 늘 꽃잎을 오므리고 있었다. 아차 싶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분꽃은 달맞이꽃처럼 밤에 꽃가루받이[수분(受粉)]하는 꽃이다. 분꽃은 바람이나 야행성 곤충에 의해 수분한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분꽃을, 오후 늦게 피고 다음 날 아침에 진다고 해서 ‘포 어클락 플라워(four o’clock flower)’라고도 한다. 이 글에서 쓴 사진은 모두 오후 7시를 전후해서 찍은 것이다. 색감은 화려하다 못해 농염하다고 해도 될 듯하다. 향기가 좋다고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후각 기능이 떨어져서 나는 향기를 따로 확인해 보지 못했다.
분꽃은 17세기경 한반도에 들어온 거로 추정하는데, 한국에서는 주로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꽃에서는 명반을 매염제(섬유에 색소가 직접 물들지 못하는 물감을 고착시키는 물질)로 하여 남색에 가까운 색깔의 염료를 뽑을 수 있다. 씨는 가루를 내어 얼굴에 바르는 분으로 이용하기도 했다지만, 그건 서민들에게나 해당하는 얘기일 듯하다.

시인의 눈물과 가슴에서 변주되는 사랑과 그리움
무심히 지나치지만, 분꽃은 가을까지는 밤에 피고 아침에 질 것이다. 화려한 색감을 가지고 있지만, 흔한 꽃이어서 그랬을까. 분꽃은 시인의 언어에 포획되어 특유한 서정과 서사를 넌지시 드러내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네 편의 시를 찾았다.
장석남의 시 ‘분꽃이 피었다’에서 분꽃은 “저녁을 밝히고/저녁을 이해시키”는 존재다. 화자가 세상에 오기 전의 세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비애보다 화사히” 분꽃은 피고, 그 “꽃 속을 걸어 나오는”, “저물면서 오는” 이로 이어진다. 분꽃이 필 무렵에 내게 온 사람, 그 둘은 무관하지만, 시인은 그 둘을 운명과 필연으로 묶어 준다.
박남준의 시 ‘이름 부르는 일’에서 분꽃은 “초저녁 분꽃 향내”로 떠오른 사람이다. 그래서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뜨겁고 아”픈 것이다. 이름을 부르는 일은 김춘수의 시 ‘꽃’에서는 그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는 일이었지만, 그에겐 초저녁 분꽃 향내마저 떠올리게 하는 애틋한 그리움으로 저며오는 일이다.

시인의 눈물에 어리는 슬픔과 공감
나태주의 시 ‘분꽃’은 “개울가 외딴집”의 “혼자 사는 아낙네”의 “소망과 슬픔”으로 노래하고, 민영의 시 ‘분꽃’은 “이남박 들고 우물로 가던 여인”, “싸움터로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은/ 정든 님을 기다리다가/파삭하게 늙어버린 우리 형수님”으로 노래한다. 여인의 노화를 아프게 바라보는 시인의 눈물에 어리는 그 슬픔을 우리는 무심히 공감하게 된다.
분꽃은 빨갛고 노랗게, 그리고 하얗게 피는 꽃에 그치지만, 그것은 시인의 눈물과 가슴에서 필연의 사랑, 북받치는 그리움으로 변주되고, 외로운 여인들의 삶의 소망과 잃어버린 희망에 대한 연민이 되어 모두의 가슴에 오롯이 다가온다. 분꽃 시편을 읽으면서, 사진 속 분꽃의 ‘화사한 비애’를 언뜻 본 듯하기도 하다.
2025. 8.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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