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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과 나무 이야기

열흘쯤 늦게 금오산 소림사의 능소화를 보러 갔더니

by 낮달2018 2026. 7. 12.

능소화는 지고, 대신 원추리와 수국, 에키네시아가 반겨주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유튜브에서 만난 열흘 전쯤인 7월 초순의 소림사 능소화. 대웅전 축대와 대웅전 앞마당에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어제(7.10.)는 능소화를 보러 소림사에 다녀왔다. 물론 중국 허난성(河南省)의 정저우(鄭州) 숭산(崇山)의 중국 조동종(曹洞宗) 사찰 ‘샤오린스(少林寺)’가 아니라, 금오산 현월봉(976m) 자락의 조계종 사찰 소림사다. 구미에서 14년째 살고 있지만, 나는 정작 소림사라는 절의 존재조차도 몰랐다.

 

숭산 아닌 금오산의 소림사를 찾다

 

소림사를 만난 것은 근처에 능소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을 검색하다가였다. 소림사? 나는 소림쿵후의 본산인 소림사가 아니라, 중고교 때 탐닉했던 무협지에서 ‘구파일방 중 거두를 차지하는 스님들의 문파’인 소림사를 떠올리며 빙그레 웃었었다.

 

아니, 중국 숭산의 소림사가 금오산 자락에도 있다고? 한자도 같은 소림사는 개인 사찰이 아니라,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였다. 소림사의 연혁을 확인하고자 검색해 보았으나, 관련 정보는 찾지 못했다. 해인사 누리집의 ‘말사’ 항목을 검색해 보니, 같은 이름의 말사가 무려 4곳이나 떴는데, 주소와 전화번호, 주지 외에는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 금오산 자락에는 약사암 말고도 암자와 절집이 적지 않았다. 소림사는 가야산 해인사의 말사라는 것 외엔 어떤 정보도 모르는 절이었다.
▲ 소림사로 가는 길목의 금오사. 오른쪽 길로 350m쯤 오르면 소림사다.
▲ 소림사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길. 가파르고 좁은 길이어서 차를 아래 주차장에 대고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 소림사의 축대 아래 피어난 원추리. 노란 꽃들을 먼빛으로 보고 능소화인가 했었다.
▲ 소림사로 드는 어귀. 가운데 축대 위에 대웅전 지붕이 보인다.
▲ 대웅전 앞 데크 울타리 아래에 피어난 것은 원추리다. 능소화는 보이지 않는다.
▲ 가운데 배롱나무 아래 석문을 지나면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타난다. 석문 앞에는 수국과 에키네시아가 피어 있었다.
▲ 석문 아래쪽의 바위에 새겨진 '소림사' 각자. 중국 숭산의 소림사와 글자도 같다. 금오산도 숭산으로 불리었다.

소림사의 능소화는 일주문 격인 석문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이미지가 유튜브와 블로그,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의 영상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동네에도 능소화가 핀 곳이 적지 않았지만, 찍은 사진을 살펴보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소림사의 돌문(석문) 주변에 핀 능소화를 만나러 소림사를 찾을 작정이었다.

 

소림사 능소화는 지고 대신 만난 꽃들

 

늘 그렇다. 마음먹은 것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공연히 뜸을 들이는 버릇 말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기만 한 것은 능소화가 난만하게 흐드러지기를 기다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 뜸 들이기는 꼼짝없는 실패로 이어졌다.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산 중턱에 차를 대고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을 숨을 헐떡이며 오를 때만 해도 괜찮았다.

 

가는 길 중간에 황금빛 거대한 불상을 조성한 절집 금오사를 거쳐 더 가파른 길을 올라, 20여 분 만에 소림사 어귀에 다다랐다. 멀리서 절집 앞에 노랗게 보이는 꽃이 능소화인가 했더니, 이내 그게 원추리라는 걸 알았다. 아니, 그럼 능소화는?

 

능소화는 석문 주위와 대웅전 앞의 고목과 축대의 담쟁이덩굴 사이에 정말 손가락을 셀 수 있을 만큼만 피어 있었다. 소림사에 머무는 시간 내내 나는 그게 덜 핀 건지, 이미 져서 그런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내가 본 소림사 능소화가 ‘지고 남은 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돌아와 동영상을 검색해 보고서였다.

▲ 소림사의 일주문 격인 석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나타난다. 석문 지나 오른쪽축대에 능소화 몇 송이가 보인다.
▲ 석문 쪽에서 올려다본 대웅전. 왼쪽이 능소화 고목인데, 능소화가 몇 송이 달려 있지 않다. 모두 진 것이다.
▲ 석문 앞에서 바라본 계단. 계단 쪽에 능소화가 조금 피어 있고, 문 앞에는 자주루드베키아(에키네시아 Echinacea)가 곱다.
▲ 석문 왼쪽 화단의 수국이 한창 피고 있다.
▲ 석문 아래쪽에서 바라본 대웅전. 대웅전 추녀 왼쪽에 능소화 고목에 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 그나마 석문 지나 돌계단 오른쪽 축대 벽에 능소화가 조금 보인다.
▲ 석문 지나 대웅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에 능소화 꽃잎이 떨어져 있다.
▲ 대웅전 앞에서 만난 몇 송이 능소화. 꽃잎 저편으로 돌탑이 보인다.
▲대웅전 아래 높다란 축대의 벽에 담쟁이가 무성하고 한쪽에는 남은 능소화가 드문드문 보인다.
▲ 대웅전 앞 울티리에 피어난 접시꽃. 잔홍빛이 강렬하다.
▲ 대웅전 축대의 담쟁이 넝쿨 사이로 몇 송이 능소화가 꽃잎을 늘어뜨리고 있다.
▲ 하산하는 길에, 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 등 참나뭇과 계열의 나무들이 싱그런 잎새를 자랑하고 있다.
▲ 유튜브에 보이는 능소화가 절정일 때의 소림사 대웅전. 불과 닷새 만에 소림사에서 능소화가 몇 송이 남지 않았다.

능소화는 없어도 좋았다

 

내가 웹의 동영상에서 확인한 소림사 능소화는 사진과 같다. 그런데, 불과 닷새 남짓한 시간에 그 꽃이 다 졌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동영상이 지난해의 것이 아니라, 올해 거라는 게 맞다면 그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현실이 된다. 적어도 소림사의 능소화는 6월 중순부터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는 얘기다.

 

능소화를 보겠다고 가파른 길을 땀을 쏟으며 올라 소림사까지 닿았는데, 정작 능소화는 지고 없었지만, 나는 전혀 낙심이 되지도 안타깝지도 않았다. 거참, 또 허탕이구먼, 하면서도 나는 거길 힘들여 오른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까짓거, 능소화만 꽃인 건 아니다.

 

능소화 대신 원추리와 수국, 그리고 자주루드베키아(에키네시아 Echinacea), 접시꽃 등으로 갈음하였을 뿐이다. 전혀 아쉽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건 온전히 ‘시간에 따른 결과’인 까닭이다. 늘 그렇듯 ‘꽃의 때’를 맞추지 못한 것은 살아 있는 꽃들의 생리를 인간이 제멋대로 다스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니던가.

▲ 소림사로 오르는 길목의 금오사. 엄창난 규모의 금오대불이 산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 금오사 금오대불 아래 존자(부처님의 십대 제자나 높은 깨달음을 얻은 성자 '아라한'을 높여 부르는 경칭)들의 상이 세워져 있다.
▲ 칠곡군 북삼읍 쪽에서 바라본 금오산. 구미에서 바라본 금오산에 비기면 꽤 낮설고 풍광이 좋다.
▲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쪽 후면에서 바라본 금오산. 금오산 단풍은 이 후면이 훨씬 더 훌륭하다.

능소화 이야기는 2019년에 처음 썼다. 퇴직한 학교의 담장이 온통 능소화였고, 여기저기서 만났던 능소화가 어쩐지 좋아서였다. 나태주와 김선우, 그리고 박남준의 시를 소개했는데, 박남준의 시에서 노래했듯 능소화는 “돌담에 기대어 등을 내 거는 꽃”이 맞다. [관련 글 : 능소화, 돌담에 기대어 등을 내 거는 꽃]

 

내년에는 화원 남평 문씨 세거지 돌담길 능소화를!

 

내 생각에 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지난봄에 찾았던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의 남평 문씨 세거지의 돌담길에 핀 능소화다. 거길 찾는 것도 내 선택지였지만, 어쩐지 새로 길을 나서기가 엄두가 나지 않아서 차일피일하다 때를 놓쳤다. 내년 여름에는 어떻게 될까, 생각하다가 부질없는 질문이다 싶어서 생각을 멈추고 올 무더위를 어떻게 견뎌낼까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 우리 동네의 능소화. 지난 6월 하순에 찍은 사진들이다. 이들에게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로 한다.
▲ 인터넷에서 찾은 능소화 풍경. 위는 <경향신문>, 아래 왼쪽은 인스트그램에서, 오른쪽은 <나무위키> 사진이다.

 

2026. 7.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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