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눈이 오지 않는 고장에 내린 함박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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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에 들어와 산 지 14년째다.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구미는 겨울에 거의 눈이 내리지 않는다. 여기로 온 첫 해 3월에 꽤 많은 눈이 내린 게 기억에 남을 뿐, 그간 제대로 쌓일 만큼 온 눈은 손꼽을 정도다. 여름철 강수량도 다른 지역과는 달리 찔끔 흉내를 내는 경우도 많았으니, 겨울철 강수량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올겨울도 제대로 ‘눈이 왔다’고 볼 수 있는 날이 전혀 없어서, 입춘 지나 설을 쇠면서 눈을 기대하는 건 끝인 줄 알았다. 그저께(23일) 일기 예보에서 ‘많은 눈’이 떠도 그냥 흉내만 내고 말겠거니 하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밤새 내린다던 예보는 시간이 지나면서 ‘흐림’으로 바뀌었다.
눈이 오지 않는 고장의 반전, ‘함박눈’
정작 반전이 일어난 것은 다음 날(어제 24일) 아침이었다. 탐스러운 함박눈이 쉬엄쉬엄 내리는데, 웬걸 길에는 내리는 족족 녹는 대신, 북봉산 자락과 주차장의 차량 위로는 두꺼운 이불처럼 쌓이기 시작하는 거였다. 오후 3시가 넘어 우산을 들고 아내와 함께 눈 구경을 나섰다.
눈은 쉬지 않고, 제법 푸짐하게 내려서 짧은 노출의 사진에도 내리는 눈이 희끗희끗 잡힐 정도였다. 길바닥에 내린 눈은 녹고 있어도 산자락과 가로수 등에는 푹신한 양감의 눈이 가지를 휘게 할 만큼 묵직하게 얹혔다. 물기를 머금은 습한 눈이라고 했다.



겨울에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지방에서 나고 자란지라, 폭설이나 눈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그나마 인천 부평에서 군대 생활을 하면서 겨울이면 심심찮게 내리는 눈을 겪었다. 물론 폭설 수준은 아니고, 눈을 치우는 게 조금 성가실 정도에 그쳤다. 강설이 ‘설렘’이나 ‘축복’이 아니라, 고역이며 그게 녹으면서 빚어지는 진창 때문에 애를 먹은 시기였다. [관련 글 : 눈, ‘설렘과 축복’에서 ‘불편’과 ‘불결’로]
군대의눈, 북해도의 눈, 그리고 덕유산의 설경
제대하고 돌아와 지금까지 이 지역을 떠난 적이 없으니, 눈은 여전히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는 풍경이었다. 안동에 살 때는 그래도 이곳보단 조금 나았지만, 그것도 그리 확연한 차이라 하기 어렵다. 눈은 2014년 겨울, 북해도 여행에서 지겹게 만났었다.
홋카이도의 비에이(美瑛)에서 만난 겨울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과 때 묻지 않은 새파란 하늘이 연출하는 ‘경이로운 풍경’ 그 자체였다. 그것은 땅과 하늘의 경계를, 혹은 현실과 몽환의 구분을 무화하는 서늘한 깨달음으로 다가왔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는 다시 북해도를 찾고 싶다. [관련 글 : <미스터 초밥왕>의 고향, 스시가 전부는 아니더라]
근년에 만난 눈은 덕유산 향적봉의 것이다. 2023년 세밑에 찾은 덕유산 향적봉의 설경은 그야말로 ‘눈의 갈증’을 풀어주는 순백의 눈꽃 행렬이었다. 덕유산은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군락이 아름다운 곳이라 하지만, 그 겨울은 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설경이 마치 정물화처럼 펼쳐졌었다. [관련 글 : 덕유산 향적봉의 눈꽃 행렬, ‘설경의 갈증’ 풀었다]




그러나 돌아오면, 어쩌다 한번 아주 잠깐, 싸락눈이 날리다 그치는 이 고장의 겨울에서 설경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은 2월의 끝에, 풍성하게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아내는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최소한 쌓이는 눈을 본 지가 언제였던가 말이다.
눈을 맞으며 마실 나가 찍은 사진들
나는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아내와 함께 동네를 벗어나 인근 도서관이 있는 데로 향했다. 배가 고프다는 아내에게 도서관 근처 골목에 있는 분식집을 떠올린 것이다. 20여 분 뒤에 우리는 어묵과 순대, 떡볶이를 파는 분식집에 닿아서 어묵과 순대로 늦은 오후의 허기를 달랬다. 우리는 동네 빵집에서 빵을 조금 사서 다른 길로 천천히 돌아왔다.
나는 100여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나마 보아줄 만한 사진은 몇 장 되지 않는다. 렌즈 표면에 눈이 묻으면서 사진에 얼룩 비슷하게 생긴 부분은 보정했다. 글쎄, 얼마나 실감을 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겨울의 끝에서 풍성한 눈발과 설경을 만난 것만으로도 마음에 겨운 일 아니겠는가.



‘폭설’은 시중에 떠도는 우스개를 소재로 삼아 쓴 작품이다. 전주 출신의 이병초 시인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처음 들은 호남지방에서 떠도는 이야기인데 나도 배꼽을 잡고 웃다가 뭔가 이상한 울림이 가슴을 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튿날 곰곰 생각해 보니 그 우스개 속에 담긴 곡진한 우리말의 묘미가 너무도 살갑게 되살아났다. 이거야말로 진짜 시다!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호남 방언으로 이장의 육상을 되살려냈다. 우리말은 그냥 의미 전달의 수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각 지방마다 통용되는 토박이말은 아주 희한하게도 곡절 많은 의미의 층위를 지니고 있어서 어릴 때부터 그러한 언어습관에 젖지 않은 이들은 그 진정한 뜻을 땅띔도 못 하게 만드는 수가 많다.
- 오탁번 시 읽기 2 ‘좋은 시는 다 우스개다’, 2024.1.25.
눈을 소재로 한 시를 찾다가 한때, 사람들 입에서 우스개로 떠돌았던 오탁번(1943~2023)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아마 이 시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많이 들은 이야기일 터인데, 시인은 이 우스개를 시로 형상화했다. 남도의 어느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사흘 내리퍼부은 폭설이 서사의 축이고, 그 주역은 마을의 대소사를 이끌어야 하는 이장이다.
오탁번이 펼쳐 보인 폭설의 풍경

걸쭉한 남도 사투리로 구사되는 폭설에 대한 반응은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에서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을 거쳐 마침내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으로 발전한다. “엄청난 폭설”에서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내렸고, 마지막 날에는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폭설에 놀란 이장의 단말마 같은 반응의 사이에 온기를 부여하는 것은 제3연이다. 두 번째 날 “눈을 치우느라 녹초가 된 주민들이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고”,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폭설로 놀란 주민들은 그날 밤 집집이 ‘찐한’ 사랑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폭설로 만들어진 어느 시골 마을의 풍경화는 사람살이의 모습과 함께, 차진 남도 사투리의 여운과 함께, 사람들의 가슴에 따뜻한 불을 지펴준다. 눈은 단순히 감성을 자극하는 풍경만이 아니라, 재해가 되기도 하지만, 더러는 내왕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부부의 방사를 촉진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날 밤에도 계속 내리라던 눈은 결국 9시께에 멈추었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마치 씻은 듯이 녹아서, 산과 나무, 그리고 그늘진 길바닥에 흔적만이 남았다. 그래도 설경을 즐길 수 있었고, 눈도 이내 녹아서 길도 얼거나 더러워지지 않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이 겨울과 작별하는 의례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2026. 2.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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