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시들어 떨어지는 계절, 가을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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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규정하는 표현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게 ‘수확’과 ‘결실’, ‘풍요의 계절’이고, ‘독서’나 ‘등화가친의 계절’이라는 표현도 흔히 쓰인다. ‘천고마비’니, ‘고독’과 ‘사색의 계절’도 빠지지 않는데, 이들은 대부분 시각적, 기후적인 가을의 특징과 연관된 표현이다.
수확과 결실, 풍요 같은 낱말이 봄에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는 곡식과 과일의 한살이와 이어지는 표현이라면 그 반대편에 있는 표현이 ‘조락의 계절’이다. 조락(凋落)은 ‘시들 조(凋), 떨어질 락(落)’ 자를 써서 잎사귀가 떨어져 낙엽이 되는 상황을 그리는 표현이다.

수확과 풍요로운 결실은 추수, 수확으로 이어지면서 대풍을 선사한 들판은 비어간다. 그리고 그 뒤를 채우는 시간은 만물이 얼어붙는 겨울이다. 한가위의 만월, 그 완벽한 원형은 완성과 충만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곧 비워져야 한다는 운명의 예시이기도 하다. <토지>의 도입부에서 박경리 작가는 한가위를 비애와 체념의 묵시하는 축제라고 말한 이유다. [관련 글 : 한가위, 슬픈 풍요]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달에 연유된 축제가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는지. 서늘한 달이 산마루에 걸리면 자잔한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소복 단장한 청상(靑孀)의 과부는 밤길을 홀로 가는데 - 팔월 한가위는 한산 세모시 같은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默示)하는 축제나 아닐는지.
- 박경리, 『토지』 제1부 제1편 ‘어둠의 발소리’ 중에서
조락은 가을이라는 계절과 그 과정의 본질을 드러낸다. 시들어 떨어지는 것은 곡물이나 과일이 결실한 후, 성장을 멈추고 겨울을 나기 위해 옷을 벗는 과정이니 말이다. 마지막 잎사귀와 열매를 간신히 단 채 나목으로 옮아가고 있는 나무들, 땅바닥에 쌓인 낙엽과 떨어져 썩어가는 열매들이 연출하는 풍경은 스산하면서도 묘한 울림을 선사해 준다.















한동안 따뜻했던 날씨가 급변하며 며칠간 영하의 날씨가 이어졌다. 11월에도 여전히 온난한 날씨에 동네 중학교 울타리의 개나리가 꽃을 피우고, 초등학교 가는 길의 목련과, 산수유도 꽃눈이 생겨났다. 11월까지 꽃을 피우는 장미들도 더러 눈에 띈다. 열매들은 추위에 얼면서 쭈글쭈글해지고, 화사한 빛깔을 자랑하던 단풍잎도 바스러져 떨어지기 직전이다. [관련 글 : 2022년 11월, 만추의 장미]
두어 차례에 걸쳐 동네 산책길을 돌면서 찍은 사진들 가운데서 이 가을의 끝을 보여주는 이미지 몇을 골랐다. 12월도 어느새 중순으로 치닫고 있고, 동지도 보름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2025년도 세밑에 접어들고 있다. 비록 스산한 조락과 가을의 막바지를 보여주는 이미지지만, 그게 몇 달 후에 올 새봄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만추를 넘어선 조락의 가을 이미지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2025. 12.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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