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중학교 주변 풍경과 여물어가는 열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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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네 중학교 주변


매일 아침 식전에 동네 중학교 운동장을 찾아 맨발로 운동장을 돈다. 들쑥날쑥하긴 하지만, 운동하러 운동장을 찾는 이들은 다섯에서 열을 넘나든다. 맨발 걷기인지라 시선은 언제나 발을 다칠까 봐 맨땅을 주의 깊게 살피느라 아래로 향한다. 그러다 가끔은 목 운동하듯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땅바닥으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그러다 보니 걸으면서 굳이 주변의 풍경에 마음을 뺏길 여유가 없으려니와 날마다 찾는 공간이니 무어 따로 궁금할 일도 없다. 새벽 미명에 나와 차차 날이 밝으면서 천천히 드러나는 풍경을 스치듯 느끼는데, 때론 어떤 시간의 경계를 훔쳐본 듯한 느낌이 있다.
몇 해 전부터 학교는 꽤 공사를 오래 했다. 여름방학은 짧게, 겨울방학을 길게 하면서 장기간 공사를 시행하여 학교의 외벽이 꽤 많이 바뀌었다. 교실 천장의 석면 등을 교체했다는데 천편일률적인 외벽도 여러 빛깔과 형태로 단장했다. 어제 운동장을 도는데 한눈에 들어오는 교사(校舍)의 풍경이 새삼 산뜻하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기역 자로 꺾인 교사의 외벽은 붉은색과 황토색, 짙은 청색과 노란색이 섞인 외벽과 무늬 등으로 말하자면 ‘칼라풀’했다. 학교라 그러면 우중충한 잿빛 콘크리트의 틀이 찍어낸 듯한 구닥다리 형태가 고작이었던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가 교육 운동을 하면서 늘 되뇐 게 ‘19세기 교실, 20세기 교사, 21세기 아이들’이었으니 그건 문제의 학교 교육을 단적으로 지적한 거였다.
교사 앞에는 감나무, 배롱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등으로 울타리가 이어지고, 그 아래 계단을 내려오면 운동장, 운동장 가녘에는 빙 둘러 느티나무가 심어졌고, 그 바깥은 철제 울타리다. 아직 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헬리콥터 프로펠러의 날개를 닮은 단풍나무의 열매(씨앗)이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국기 게양대 근처의 배롱나무는 아직 꽃을 매달고 있지만, 아래쪽의 잎사귀부터 조금씩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감나무에는 주렁주렁 열린 감의 무제로 가지가 휘어질 정도다. 운동장 가녘의 키 작은 주목도 마치 속이 빈 단추 모양의 열매를 달았다. 그렇다, 시나브로 계절은 가을로 접어든 것이다.
변함없는 것도 있다. 흔해 빠진 공이다.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와서 가지고 놀다가 뻥 차놓은 공은 운동장 곳곳에 버려진 듯 흩어져 있다. 예전처럼 그걸 체육 교사들이 일일이 관리하는 체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쓰고 난 뒤 아무렇게나 운동장에 굴러다녀도 공을 가져가는 아이도 없으니, 분실의 염려 따윈 없는 것이다. [관련 글 : 요즘 ‘축구공은 흔하다’]
공은 운동장 가녘, 축구 골대의 그물과 느티나무 아래 벤치 근처, 철봉 부근에 흩어져 있는데, 어제는 카메라를 들고 한 바퀴 돌다가 울타리의 나뭇가지 위쪽에 박혀 있는 공을 두 개나 발견했다. 하나는 단풍나무 가지에 박힌 하얀 배구공이고, 또 하나는 느티나무 빽빽한 가지에 틀어박힌 빨간 줄무늬의 축구공이다.



아이들이 뻥 찬 공은 날아와 그 나뭇가지에 박혀 버린 것이겠다. 그건 마치 관중석에 흩어진 아이들의 축구화, 야구 배트, 야구 글러브 따위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일상일 것이었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으니 필요할 때마다 찾아서 쓰면 될 뿐, 애당초 관리할 필요가 없을 만큼 학교는 물론, 아이들이나 교사들도 넉넉하고 편안해진 것이다.
2. 저 혼자 익어가는 열매들
실제로 농부들은 어떻게 여기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올해에 대추와 석류, 감 등이 풍년이다. 학교의 감나무 몇 그루에 달린 감도 만만찮고, 동네의 담장 너머에서 익어가는 대추는 보기에도 탐스럽다. 예년과 달리, 석류도 마치 경쟁하듯 다닥다닥 달렸다. 동네를 벗어나도 그런 상황은 대개 비슷했으니, 풍년임이 틀림없다.



올해 처음 발견한 아파트 외곽의 화단에 선 산딸나무에 마치 덜 익은 딸기 같은 열매가 열렸다. 그게 산딸나무인 것도, 조경수로 널리 심어진다는 것도 올해 처음 알았다. 동네 곳곳에,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 울타리에 모과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파트 옆, 사람들이 채소 등을 갈아 먹는 공터에 호박 한 개가 위태롭게 걸려 있고, 북봉산과 접한 아파트 울타리 넘어 손바닥만 한 땅에 돼지감자가 무성한데, 거기 핀 노란 꽃이 화사했다. 사진을 찍는다고 울타리 벽 위에 올라섰다가 발견한 노각(누렇게 변한 묵은 오이) 두 개를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저마다 나무들이 키워낸 열매가 익어가는 것이다. 올해는 윤유월이 들어 한가위가 한 달쯤 늦어진다. 10월까지 더우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9월 초순 들면서 더위는 한풀 꺾였다. 밤에는 문을 닫고 잘 만큼 온도가 떨어지니, 새벽 운동에는 더 이상 좋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주 일요일에 벌초가 잡혔다고 집안 아우의 연락이 왔다. 오늘 나가서 예초기의 날을 하나 갈았다. 기계를 점검해 놓고, 올해는 양친의 산소를 따로 먼저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부모님과 조부모님 산소를 정리하여야 하니 어쩌면 올해가 부모님 산소는 마지막 벌초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025. 9.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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