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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군 옥포읍 다리목 마을의 이팝나무 군락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풍경

by 낮달2018 2025. 5. 9.

[사진]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의 이팝나무 군락지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이팝나무 군락지의 아름다운 풍경. 달성군 블로그 기자단이 찍은 사진이다.
▲ 공중에서 내려다본 옥포 이팝나무 군락지. 왼쪽이 교항리(다리목) 마을이고, 입구는 맨 위에 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이팝나무는 2012년에 구미에 옮아오면서 동네와 주변 거리의 가로수로 처음 만났다. 50대 중반에 처음 알게 된 나무였으니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잎 지는(낙엽) 넓은 잎(활엽) 큰키나무(교목)인 이팝나무는 흔한 나무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13년이 지나며 인근 김천 혁신도시에서도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만날 수 있으니 요즘 들어 이 나무는 가로수로도 더러 심어지는 듯하다.[관련 글 : 이팝나무, ‘가로수의 진화]

 

지난해에는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의 위양(位良) 저수지의 이팝나무를 찾았다. 그리 크지 않은 연못 둘레는 왕버들·소나무·서어나무·느티나무·팽나무 등이 이어졌고, 이팝나무는 가운데 섬의 정자 완재정 주변에 심어진 고목이었다. 때가 조금 일렀던가, 이팝나무꽃은 절정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꽃은 활짝 피지 않았어도 수면에 드리워진 고목과 꽃 그림자가 빚어내는 풍경은 그윽하게 아름다웠다. [관련 글 : 수면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 이팝나무꽃, 그 저수지의 봄]

어린이날에 찾은 옥포 이팝나무 군락지

4월 말부터 동네 길가에 이팝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동네는 한결 밝아졌다. 넓고 두꺼운 잎사귀와 어우러진 하얀 꽃의 질감은 풍성하고 넉넉했다. 어린이날 연휴에 아내와 어디 나들이라도 가볼까 싶어서 이팝나무로 검색했더니 인근 달성군 옥포읍에 이팝나무 군락지가 떴다. 동네 한쪽의 야산에 5천여 평(15,510㎡)의 군락이 자생해 있다고 했다.

▲ 숲의 입구에는 교항1리 이팝나무단지 매각추진위의 명의로 달성군이 단지를 매입하여 공원으로 조성하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 이팝나무 숲으로 드는 중앙 통로. 길 좌우에 울타리가 만들어져 있으나, 경계를 넘어 풀들이 번지고 있다.
▲ 공휴일이어서 찾은 사람이 적지 않았으나, 숲에 흩어져서인지 오히려 숲은 한적한 느낌을 주었다.
▲ 교항리 이팝나무 숲에는 300년 넘은 이팝나무 고목이 45그루가 있다 하였으니, 이처럼 기괴하게 벋은 나무도 고목이리라.
▲ 고목이 이어진 숲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팝나무는 하얗게 꽃을 달고 있었다.
▲ 이팝나무 고목은 가지가 기묘하게 벋은 나무가 많았다.
▲ 이팝나무 숲의 끝부분. 여전히 울타리와 경계에는 무성한 풀이 번지고 있다. 저 뒤에 투쟁 구호의 펼침막이 보인다.

거리가 멀지 않아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11시가 넘어 군락지 앞에 닿았는데, 공휴일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다. 주차장이 따로 없어서 군락지 주변을 돌아가는 이면도로 갓길에 차를 댔다. 좌우에 목장승과 둥그런 돌탑이 서 있는 정문을 가로질러 ‘교항1리 이팝나무단지 매각추진위원회’ 명의의 펼침막 하나가 걸렸다.

 

“달성군이 군목인 이팝나무 보호를 위해 달성군이 매입해서 공원으로 조성하라”

 

고개를 갸웃하면서 단지 안으로 들어서니 어쩐지 허전해 보이는 이팝나무 숲이 좀 쓸쓸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교항(橋項 : 다리목)마을은 약 400년 전 임진왜란 때 성산(星山)이씨가 정착해 이루어진 마을로 큰 다리 어귀에 있다고 해서 ‘다리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교항리의 이팝나무 군락은 마을에서 100m 정도 떨어진 평탄한 구릉지대에 있는 세청숲 속에 자리 잡은 대구 지역 최대 이팝나무 자생지다. 여기 심긴 수령 약 300년 이상 된 이팝나무 45그루는 150여 년 묵은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느티나무, 말채나무 등 거목들과 어우러져 5월 초에 하얗고 풍성한 꽃을 피워 온 숲이 흰 꽃망울로 덮어버리곤 한다.

▲ 군데군데 사람들이 눈에 띌 뿐 숲은 한적했다. 숲의 마지막 부분은 울타리 밖으로 풀이 무성하게 번졌고, 바닥엔 낙엽이 쌓여 있다.
▲ 구릉의 비탈면에는 풀이 더 무성했으니, 그만큼 손이 미치지 못했는가 보았다.
▲ 이팝나무 고목에 하얀 꽃이 소담스레 달렸다. 고목은 300년 이상이라고 보기엔 믿어지지 않았다.
▲ 이팝나무 고목 옆에서 입장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 숲 너머 펼침막이 보이고 오른쪽은 팔각정이다.
▲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은 고목에 버팀목을 괴어 두었다. 이들의 나이는 300년이 넘은 게 분명하다.
▲ 이팝나무 고목 옆에 데크 시설물이 들어서 있다. 왼쪽 마을이 교항리(다리목)이다.
▲ 이팝나무 고목 아래, 낡아빠진 나무 벤치 두 개가 쓸쓸하다. 그건 마치 이 숲이 받고 있는 대접을 드러내는 것 같이 기분이 언짢았다.

이팝나무는 저 혼자 자라는 곳이 있으나 이 숲처럼 집단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은 드물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이 숲을 일러 ‘동네 방패’라고 일컫기도 하는데, 이는 이팝나무 숲이 마을을 지켜주는 보호림의 상징성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다리목마을에서는 이팝나무 숲을 보호하고자 숲에 위해를 가하는 자는 백미 한 말씩 벌과금을 물려 왔으며, 칠월 칠석에는 마을에서 당산제(堂山祭)를 지내고 있다.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듯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수더분한 숲’

입구 쪽에선 그래도 공휴일이라고 가까운 숲을 찾은 이가 적지 않다 싶었는데, 정작 숲을 돌 때는 어쩌다 사람들을 마주치는 정도로 숲속은 한적했다. 그리 넓지 않은 숲이 그렇다면 그건 입장객의 절대 수가 적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그건 모두가 호젓하게 숲을 거닐어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숲은 복잡하지 않다. 중앙에 난 좀 넓은 숲길을 중심으로 가지를 친 샛길들이 펼쳐지는데 어느 길로 들든 비슷한 물매로 이루어진 길 좌우에는 이팝나무 고목과 그보다 훨씬 작은 나무들이 하얀 꽃들을 달고 서 있다. 길과 나무, 숲 이외에는 특별한 시설이나 볼거리가 없어서 한 바퀴 도는 데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길 좌우로 목제 말뚝을 박고 거기 밧줄을 이어 울타리 겸 경계를 지어놨는데, 이팝나무 고목 아래 맥문동이 무성한 대신, 통로 주변에는 보랏빛 갈퀴나물과 잡초라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한 풀이 자라고 있었다. 풀은 경계를 넘어 통로에도 번지고 있어, 전체적으로 숲은 마치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건 이 숲이 제대로 정비되지도, 관리되지도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곳곳에 목제 벤치가 놓여 있었는데, 그건 족히 십 년을 넘은 듯, 빛이 바래고, 기름기가 쏙 빠져버려서 바스러지기 직전처럼 보였다. 실제로 숲 끝의 벤치 하나는 다리가 부러져 풀밭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시골이라도 웬만한 마을 뒷산에도 등산로를 정비하고, 야자 매트를 깔고, 운동기구를 설치할 만큼 지자체의 예산이 넉넉한데도 제법 이름난 관광지가 왜 이렇게 허술한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건 결국 숲에 내걸린 펼침막의 내용과 이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 통로 옆으로 난 무성한 풀들이 길을 침범하고 있다.
▲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은 오래되어 기름이 다 빠진 벤치가 위태롭게 숲을 등지고 서 있다.
▲ 숲에서 만난 이팝나무꽃은 여느 꽃보다 훨씬 희고 넉넉해 보였다.
▲ 낡은 나무 벤치도 그렇고, 기울어진 평상, 그 주변에 돋은 풀들, 그게 자연스럽다기보다 방치된 느낌이어서 기분이 언짢았다.
▲ 넘어질 듯 위태롭게 벋은 이팝나무에 버팀목을 괴어 놓았다.
▲ 숲 오른쪽 너머에 보이는 마을이 교항1리, 다리목 마을이다.
▲ 무성하게 우거진 풀밭을 배경으로 수명이 다한 듯한 낡아빠진 나무 벤치가 순식간에 이 풍경을 쓸쓸하게 만들어 버린다.

숲 안쪽에 걸린 펼침막을 읽어보고서야 상황이 얼추 짐작되었다. 그 펼침막은 “더 이상은 관리 못 하겠다 달성군은 매입해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라”, “고유 자산 이팝나무단지를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을 해지하라등이었다. 역시 정문에 걸린 펼침막과 마찬가지로 ‘교항1리 이팝나무단지 매각추진위원회’ 명의였다.

소박하고 정갈한 이팝나무 숲은 봄의 생기를 은은히 뿜어냈다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관련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달성군청에 전화를 한번 넣어 보려다가 말고, 나는 펼침막 3개의 내용을 조합하여 상황을 대충 꿰어맞출 수 있었다. 이 군락지의 소유는 마을 내지는 마을 사람들이다. 그래서 마을이 관리를 맡았으나, 아마 그게 힘에 부쳤던 모양이다.

 

군의 지원은 낡은 벤치를 봐도 알 만하니 주민들은 지친 데다가 화까지 잔뜩 나 있는 듯했다. 그들은 시에서 이 단지를 매입하여 직접 관리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시는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 됐든 그런 민원이 빚어지고 있는데 상황은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이 숲이 어쩐지 내버려둔 듯 초라하고 어설퍼 보이는 까닭일 터였다.

 

나는 숲을 거닐면서 관리나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낡은 벤치와 부실한 화장실, 통로 주변의 잡풀 등을 보면서 내심 마음이 불편하고 언짢았다. 숲이 마땅히 받아야 할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마치 내가 모욕받는 느낌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인위적으로 잘 정비된 명승지의 풍경에 너무 익숙한 것은 아닌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비록 다소 허술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옥포 이팝나무 숲은 사람 손을 덜 타면서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꾸밈없는 모습이어서 좋았다고 정리하게 된 것은 그래서다. 인위적인 조경이 아니라, 최소한만 손을 댄 숲에서 묻어나는 것은 소박하고 정갈한 풍경이었다. 아직 꽃이 흐드러지게 피지는 않았어도, 숲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이 봄의 그윽한 생기를 시나브로 느낄 수 있었다.

 

정오를 지나서 우리는 숲을 떠났다. 지난해 다녀온 밀양 위양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면서. 언제나 우리는 조금 이르거나 조금 늦게 현장에 이른다. 그건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생처럼 쓰디쓰지 않을 뿐, 대신 그 풍경이 가르쳐주는 건 그것 자체로도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2025. 5. 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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