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거제 ‘동백섬’, 그 환상적인 ‘동백 터널 산책길’

by 낮달2018 2025. 3. 8.

[봄나들이] 거제 지심도로 동백꽃을 보러 가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지심도는 거제도에 속한 섬들 가운데 유일하게 '동백섬'이란 이름을 얻은 섬이다. ⓒ 오마이뉴스 사진

경상북도 내륙 출신이라, 동백(冬柏)꽃을 처음 본 게 성인이 되어서다.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지역에서 동백꽃을 보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백이 있다고 해도, 남도처럼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피고 지는 건 아니고, 3월 말이나 4월이 되어야 피는 게 고작이다. 품종도 남도처럼 노란 꽃술이 아름다운, 야생의 홑 동백이 아닌 겹 동백이다.

 

자생하는 홑 동백꽃 만나러 가는 남도행

 

동백을 사진으로 찍은 건 아이들을 인솔하고 거푸 세 해를 계속해서 다녀온 제주도 수학여행, 항몽유적지에서였다. 동백꽃은 제주에선 섬을 피로 물들인 제주 4·3 사건의 상징으로 4·3의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로 읽힌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나는 겨울꽃으로 남도의 홑 동백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지난해 2월, 경상남도에서 남해안을 대표하는 겨울꽃 중 하나인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도내 섬 여행지로 지심도(거제시), 장사도(통영시), 수우도(통영시) 등 3곳을 추천했다는 일간지 기사를 읽고부터 나는 남도행을 별러 왔었다.

▲ 지심도에는 거제 장승포와 지세포에서 유람선이 운행한다. 지심도에 도착해 하선하고 있는 나들이객들.
▲ 섬 해맞이 전망대에서 새로 시작되는 동백나무 터널 산책로. 섬은 모든 길은 이러한 형태로 이어진다.
▲ 자생하는 남도의 홑 동백의 품격은 겹동백의 그것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 처연한 아름다움에 나는 일찍이 매료되었다.
▲ 대나무 군락지 대죽로가 있었다. 시원하게 쭉쭉 뻗은 대나무가 상큼하게 느껴졌다.
▲ 해안선 전망대로 가는 길의 방향 지시석. 이 지시석은 주요 요새의 방향을 확인하여 정확하게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새해 벽두에 결혼기념일을 맞았지만, 월말에 넘기기로 한 원고 때문에 미룬 여행의 목적지로 뒤늦게 남도를 선택한 건 그래서였다. 나는 세 섬 가운데 가장 가깝고, 배편도 수월한 지심도를 택했다. 아침 7시에 출발하여 경부-중부내륙-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거가대교를 거쳐 거제시 장승포의 동백섬 지심도 터미널에 도착하니 11시가 지나 있었다.

 

터미널 인근 식당에서 먹은 대구탕도 최고의 선택

 

터미널 인근의 50년간 이어왔다는 식당에서 대구탕을 먹었는데, 그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내륙에서 먹던 대구탕과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었다. 미나리를 띄운, 맑은 국물의 탕은 흔히 식당에서 먹던 엠에스지(MSG)로 낸 맛이 전혀 아닌, 부드럽게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풍미가 있었다. 나는 대구 인근 사람의 식습관대로 다진 양념을 청했다가 70대 여주인에게 퉁을 맞았는데, 그 퉁 맞은 게 전혀 억울하지 않은 맛이었다.

 

지심도(只心島)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생긴 모양이 마음 심(心) 자를 닮았다 하여 ‘다만 지(只)’, ‘마음 심’ 자를 써서 ‘지심’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지심도는 거제의 섬과 해안 곳곳에서 동백이 피어나지만, 유일하게 ‘동백섬’이라는 별칭을 얻었듯 남해안 섬 가운데 어느 곳보다 동백나무의 묘목 수나 수령이 압도적이어서 ‘동백섬’이란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심도 누리집에서 전하는 섬의 역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 섬에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현종 때로 15세대가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1750년대에는 쓰시마(對馬島) 어민들이 고기 잡으러 왔다가 휴식처로 이용하기도 했다.

▲ 산중턱에 1938년에 일본군이 만들었다는 탐조등(서치라이트) 보관소가 있다.
▲ 선착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만난 전등소(電燈所, 발전소) 소장의 사택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이다.
▲ 전등소 소장 사택 부근에서 올해 처음 만난 백매화. 근처엔 홍매화도 피어 있었다.
▲ 백매화 근처에 익어가며 꽃망울을 터뜨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청매화 꽃눈.

1940년대 일제강점기에는 섬이 군의 요새로 활용되었으며, 일본군 1개 중대가 광복 직전까지 주둔하였다. 광복 이후 1960년대에는 군사적 요충지로 해군소유가 되었으며 15가구 100여 명이 거주하게 되었다. 지심도가 자연림이 가장 잘 보존된 섬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부터이다. 2010년대부터는 성수기에는 동백섬으로, 비수기에는 ‘힐링 섬’으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12시 반에 96인승 유람선을 타고 지심도로 들어갔다. 평일이라, 승선객은 자리의 반쯤을 채웠다. 배는 거제도 본섬을 끼고 20여 분쯤 달려 지심도 선착장에 닿았다. 선착장과 바투 붙은 시멘트로 포장한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펼쳐지는데, 전기 카트를 타고 단숨에 섬 정상 가까이에 올랐다. 그냥 동백나무 숲이 군락을 이룬 섬이거니 했는데, 어럽쇼, 이건 엄청난 동백 숲길이다. 선착장에서부터 동백나무로 터널을 이룬 환상적인 산책로를 오르며, 우리 내외는 탄성을 질렀다.

 

지심도는 500m 정도의 너비에 1.5㎞의 길이로 면적 10만 2천여 평(0.356㎢)의 타원형의 섬으로 기암괴석의 해안선 둘레도 3.7㎞에 불과하다. 그런데 섬의 대부분은 동백나무 숲으로 덮여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심도의 동백숲은 현재 국내에서 원시 상태가 가장 잘 유지된 곳으로, 한낮에도 어두컴컴하게 그늘진 동백숲 터널이 섬 곳곳에 끊어질 듯 이어진다. 동백꽃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피고 지므로 숲길을 걸을 때마다 바닥에 촘촘히 떨어진 붉은 꽃을 일부러 피해 가기도 힘들 정도로 동백꽃이 무성하다고 했지만, 3월 초 꽃샘추위가 지난 시점이어서 아직 절정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지심도에는 1,200년 묵은 고령의 동백도 있다는데 500~600살 수령의 울울창창한 동백나무 숲과 터널이 섬 곳곳을 이어준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남부와 일본, 중국에 자생하는 늘푸른큰키나무(상록교목)로서 산다목(山茶木)으로 불리기도 한다. 꽃은 한자어로 ‘산다화’, 또는 ‘춘백(春柏)’으로 부르기도 한다. 송수권 시인의 시 ‘산문에 기대어’에 나오는 그 산다화다. [관련 글 : <산문에 기대어>의 송수권 시인 떠나다]

▲ 선착장 가까이 산책길에 거대한 후박나무 고목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다 자라면 6~9m 정도가 되는 동백나무의 꽃은 붉은색이나 돌연변이로 드물게 흰색, 분홍색 꽃이 피기도 한다. 야생의 동백나무는 홑 동백이고, 반겹 동백이나 겹 동백은 일본인들이 만든 고급 원예품종이다. 동백나무는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여 주로 산지·해안·촌락 부근에서 자라며, 한반도에서는 중부 이남에 분포하고 있다.

 

홑 동백은 잎이 5장~7장으로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진다

 

동쪽으로는 울릉도, 서쪽으로는 대청도까지 올라가는데, 육지에서는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의 것이 가장 북쪽이고, 내륙에서는 지리산 산록의 화엄사 경내에서 자라는 것과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의 선운사 경내에서 자라는 것들이 가장 북쪽의 동백이다.

 

동백은 잎이 두꺼워 살이 많으며, 늘푸른나무라 우선은 산불이 절집으로 번지는 걸 막아준다고 한다. 씨에서 기름을 짜 동백기름을 만드는데, 예전에는 동백기름을 머리에 발라 윤기가 흐르게 하였다. 서민들은 생강나무에서 짜낸 기름을 썼는데,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개동백’이라 불러서 김유정의 단편 소설 ‘동백꽃’이 쓰이기도 했다. [관련 글 : 산수유와 생강나무]

 

홑 동백은 잎이 5장~7장으로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지고 홑 동백 외의 모든 동백은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는 겹 동백이다.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지 않고 꽃 전체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특징 때문에 예부터 동백꽃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나 깊은사랑에 비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꽃이 떨어지는 모습이 목이 잘리는 것과 같다고 불길하다고 보는 이도 있다고 한다.

▲ 산책길의 솔가리사이로 동백꽃 한 송이가 떨어져 있다. 홑 동백은 꽃잎이 통째로 떨어진다.
▲ 누군가가 산책로에 떨어진 꽃잎은 축대 위에 올려놓았다.
▲ 선착장 근처의 마을 앞에 흐드러지게 핀 어린 동백꽃들. 고목엔 생각만큼 꽃이 다투어 피지 않는 듯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의 여인>(La Dame aux camélias)은 일본에서 <춘희(椿姬, つばきひめ)>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목을 따랐다. 이 소설은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도 만들어졌다. 1964년에 발표된 가수 이미자의 트로트 가요 ‘동백 아가씨’는 1960년대 최고의 히트곡이었는데, 이는 이름만 땄을 뿐 소설이나 오페라와는 무관하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의 섬, 언젠가 다시 오마고 약속한 섬

 

우리는 동백숲 터널을 따라 섬의 일부를 도는 데 그쳤지만, 나는 지심도가 스쳐 지나가듯 만날 섬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섬에 있는 몇 군데 민박집에 묵으면서 섬 전역을 돌아봐야 제대로 지심도의 동백을 즐길 수 있을 듯해서다. 앞서도 밝혔듯, 꽃이 절정은 아니었고, 고목에는 생각만큼 꽃이 많이 피지 않는 듯했다.

 

섬 곳곳에 일제강점기 일본군 주둔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섬 뒤쪽으로는 주둔한 일본군이 포진지로 이용한 구덩이와 견고한 탄약고도 있었다. 산 중턱에 1938년에 일본군이 만들었다는 탐조등(서치라이트) 보관소는 직경 2m 정도의 탐조등이 약 7~9km 거리를 비출 수 있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견고한 콘크리트 보관소와 철문만이 남아 있었다.

 

선착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만난 전등소(電燈所, 발전소) 소장의 사택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사택 주변 동백숲과 마당에도 동백꽃이, 주변에는 홍매화와 백매화도 피어 있었다. 이런 조그만 섬에도 아픈 식민지 역사가 배어 있다는 건 슬픈 일이다.

 

우리는 선착장에서 30분쯤 쉬다가 2시 50분 배편으로 장승포에 돌아왔다. 절정의 동백꽃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봄나들이는 만족스러웠다. 언젠가 아이들과 1박을 하면서 섬을 돌아볼 수 있으면 했지만, 그건 역시 쉽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언제라도 다시 지심도를 찾으리라고 자신에게 약속하면서 동백섬 지심도를 떠났다. 

 

 

2025. 3. 8.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