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기록물’과 ‘산림녹화 기록물’ 등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결정
마침내 제주 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제221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가 자난 4월 11일 오전 6시 5분(프랑스 현지 시각 10일 오후 11시 5분) 『진실을 밝히다: 제주 4·3 아카이브(Revealing Truth : Jeju 4·3 Archives)』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최종 승인한 것이다. 이로써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된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이 7년 만에 열매를 맺게 되었다. [관련 기사 : 제주 4·3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이번에 등재된 제주 4·3기록물은 진실 규명과 화해의 과정을 담은 역사적 기록 1만 4,673건이다. 여기엔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와 옥중 엽서(27건), 희생자와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1만 4,601건), 시민사회의 진상규명 운동 기록(42건), 정부의 공식 진상조사보고서(3건) 등이 포함됐다.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제주 4·3기록물의 역사적 가치와 진정성, 보편적 중요성을 인정했다.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는 제주 4·3기록물에 대해 “국가 폭력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 사회적 화해를 이뤄내며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조명한다”라며 “화해와 상생을 향한 지역사회의 민주주의 실천이 이룬 성과”라고 높이 평가했다.
한편, 이번 집행이사회에서는 제주 4·3기록물과 함께 한국이 신청한 산림녹화 기록물도 함께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에 등재되었다. 산림녹화 기록물은 경제개발과 생계를 이유로 황폐해진 국토를 중앙집권적 계획을 통해 되살린 사회적 연대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유네스코는 1992년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이라는 이름으로 세계기록유산 사업을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인류의 소중한 기억을 보존해야 하는 전 지구적 노력을 강조해 왔다. 이번 집행이사회에서 한국이 신청한 두 유산과 더불어 모두 74건의 기록유산이 세계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등재되면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에 포함된 유산은 총 570건에 이른다.
이번에 등재된 유산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회복, 그리고 지속 가능한 환경 재건의 경험이 전 세계가 함께 기억해야 할 가치 있는 기록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은 2023년 ‘4·19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결정한 데 이어 이번에 두 건의 등재가 결정됨으로써 총 20건의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관련 글 : ‘4·19혁명’과 ‘동학농민혁명’의 ‘기록물’,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산림녹화 기록물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1960년대 중후반에 그 당시 부모님을 대신하여 사방(砂防 : 산, 강가, 바닷가 따위에서 흙, 모래, 자갈 따위가 비나 바람에 씻기어 무너져서 떠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시설하는 일) 부역(負役 : 백성이 부담하는 공역)이라 하여 산에 나무를 심는 일에 여러 번 동원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글 : 애림녹화(愛林綠化), 식목일 부역의 추억]
제주 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자 하는 국민과 국가의 노력에 대한 세계가 경의를 표하는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제자문위원회가 밝힌 대로 ‘국가 폭력’에 맞선 진실 규명과 ‘사회적 화해’, ‘희생자의 명예 회복’ 노력 등은 “화해와 상생을 향한 지역사회의 민주주의 실천이 이룬 성과”로서 마땅히 존중되고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p536, 제주 4·3평화재단 누리집에서 재인용
사건의 중심에 남로당이 있긴 하지만, 이 비극적 사건은 제주도민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벌인 끔찍한 살육의 역사다. 보수 진영에서는 ‘폭동’이라고 규정하고, 진보 진영에서는 ‘항쟁’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생의 합의로 묵은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면서, 역사에 대한 평가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4·3사건’을 말하거나 기록할 때 굳이 ‘사건’을 붙이지 않는다. ‘사건’은 사실상 중립적 표현 같아 보이지만, ‘여순반란 사건’이나 ‘10·1사건’ 등에서 드러나듯, 사실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은연중에 엿보이기 때문이다. 4·3평화재단, 4·3평화공원, 4·3평화기념관 등, 제주에서 4·3과 관련된 제도나 조직 등에서 ‘사건’을 붙이지 않고 단지 ‘4·3’만을 쓰는 까닭이 거기 있지 않나 싶다.
4·3은 올해 77돌을 맞았지만, 여전히 제주도 지역의 역사로만 한정되는 것처럼 이해하는 사례도 많다. 국가가 나서 특별법을 제정하고, 국가 원수가 공식 사과까지 했지만, 여전히 극우 세력들이 ‘공산 폭동’으로 폄하하고 노골적 적의를 드러내는 일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특정 지역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극복해야 할 역사로서 기억되는 게 필요한 이유다. [관련 글 : 4·3 일흔 돌(2018), ‘변방의 역사’에서 ‘우리의 역사’로]
특별히 이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관련하여 제주도와 도민의 환영이 남다른 것은 그 비극적 역사성 때문이다. 제주는 이번 4·3기록물의 등재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인류무형문화유산(2009 제주칠머리당영등굿, 2016 해녀 문화) 여기에 세계기록유산까지 더해져 '유네스코 5관왕'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됐다. [관련 글 :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등재됐다]
현재 프랑스 파리 국제대학촌 한국관에서는 등재를 기념하는 ‘제주4·3 아카이브(ARCHIVES) : 진실과 화해’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앞으로 등재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관련 전시, 학술 행사 등 다양한 기념 사업을 국내외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2022년 4월, 제주 여행에서 나는 4·3평화공원 등 4·3 관련 공간을 따로 찾지 못했다. 언제쯤 다시 제주로 여행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4·3의 상처가 남은 유적지를 따로 찾아볼 생각이다. ‘제주 다크투어’는 역사를 나누고 기억을 공유하는 역사의 연대다.
2025. 4. 14. 낮달
* 참고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누리집
· 4·3평화재단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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