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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봄, 풀꽃 5제

by 낮달2018 2025. 4. 13.

[사진] 민들레, 제비꽃, 꽃다지, 봄맞이꽃, 봄까치꽃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아파트 놀이터에 피고 있는 모과꽃. 진홍의 꽃색이 강렬하다.
▲ 동네 카페 화단에 핀 꽃사과꽃 사과꽃에 비기면 훨씬 검박하고 수더분한 꽃이다.
▲ 동네 카페의 울타리에 심어진 서부해당화(수사해당화). 꽃사과를 개량한 품종이라 한다.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고 있다. 매화, 살구, 벚꽃, 복사꽃에 이어 동네에 꽃사과와 수사해당화도 꽃이 피었다. 꽃이 마치 ‘꽃이 마치 실처럼 늘어져 피는 것 같’아서 이름에 ‘수사(垂絲 : 늘어진 실)’가 붙었다. 수사해당화는 중국 서부지방이 원산지인 낙엽교목으로 꽃사과나무를 개량하여 만들어진 품종인데 서부해당화로도 불린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수사해당화도, 서부해당화도 올라가 있지 않다.

 

꽃사과와 서부해당화

 

동네 카페로 오르는 입구 왼쪽에 서 있는 나무인데, 처음에 나는 이 나무도 꽃사과라 불렀다. 그런데, 근처에 있는 하얀 꽃이 피는 꽃사과와는 확연히 다른 꽃이 피는 걸 보고 확인한 결과 이 꽃이 서부해당화임을 알았다. 꽃사과가 잎이 크고 좀 수더분한 꽃이라면, 서부해당화는 연분홍빛이 곱고 화사하다.

 

아파트 뒤 북봉산 산비탈에 어린 사과 묘목이 자라는 밭이 있는데, 아무래도 햇볕이 모자란 듯 꽃이 늦다. 대체로 꽃사과보다 사과꽃은 늦은 편인데, 올해는 유난히 꽃샘추위가 여러 번 와서 더 늦어졌는지 모른다. 사과꽃은 이제 조금 짙은 분홍빛 꽃망울이 부풀고 있을 뿐이다.

 

올해 들어서야 내가 사는 아파트 동 앞의 주차장 지붕 위에 조성된 어린이 놀이터에 모과나무가 몇 그루가 자라고 있음을 처음 알았다. 사실상 거기 올라갈 일이 없어서인데, 올해는 살구꽃과 백목련꽃을 찍고, 조팝꽃을 찍다가 모과나무를 발견한 것이다. 나무껍질이 조각으로 벗겨져서 ‘운문상(雲紋狀 : 구름무늬 모양)’이 된 미끈한 줄기를 보고 고개를 갸웃대다가 그게 모과나무라는 걸 알았다.

 

사과꽃과 모과꽃

▲ 아파트 뒤 북봉산 비탈의 사과밭에 피어나고 있는 어린 묘목의 사과꽃.
▲ 아파트 놀이터의 모과나무에 핀 모과꽃. 꽃잎은 아직 활짝 열리지 않았다.
▲ 햇볕을 제대로 받는 모과나무 높은 가지에는 모과꽃이 활짝 열려 있다.

그러고 보니 모과나무는 동네에 몇 군데에 있다. 카페 옆 산비탈의 배나무 아래에도 한 그루, 벚나무 울타리가 아름다운 이웃 아파트 울타리 앞 단독주택에도 꽤 큰 모과나무가 있다. 가을에 거기 모과가 달린 걸 보고야 그게 모과나무라는 걸 알았었다. 모과나무엔 별이 잘 드는 나무 위쪽으로는 꽃잎이 열렸고, 아래쪽엔 아직 꽃망울이 익어가고 있다. 모과꽃은 흔히 보랏빛의 꽃이 흔한데, 놀이터의 나무는 진홍색을 띠고 있다.

 

사과나무 아래에 지천으로 꽃다지가 피었다. 아직 어린 싹인데, 그 노란 꽃이 신선했다. 주변에는 봄 풀꽃이 여기저기 피고 있다. 애기똥풀에, 민들레, 제비꽃 등이다. 애기똥풀의 꽃은 이제 슬슬 피어나기 시작했고, 민들레와 제비꽃은 여기저기 노랑과 자줏빛 꽃잎을 바람에 흔들고 있었다.

 

민들레

▲ 요즘 보는 민들레는 거의 서양 민들레다. 꽃받침이 뒤집혀 있다(원 안).

한국·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하는 여러해살이풀 민들레는 대부분 노란색을 띠며, 드물게 흰색이나 회색을 띠기도 한다. 민들레 줄기는 겨울에는 죽지만, 이듬해 봄에 다시 살아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서 마치 밟아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는 백성과 같다고 하여 ‘민초(民草)’로 비유되기도 한다. [관련 글 : 민들레, 민들레]

 

민들레는 꽃이 피는 식물이어서 당연히 씨앗으로 번식한다. 민들레꽃이 진 자리에 씨앗이 보송보송 털처럼 나오는데 이것을 흔히 ‘민들레 홀씨’라고 한다. 그러나 민들레는 무성생식을 하는 식물이 아니므로 이는 ‘홀씨’가 아니다. 홀씨를 한자어로는 ‘포자(胞子)’라고 하는데 이 포자로 번식하는 식물은 이끼·곰팡이·버섯 등이다.

▲ 흔히 '민들레 홀씨'로 잘못 쓰이고 있는 민들레 씨앗. 정확히 말하면 민들레 갓털이라고 해야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가 한겨레에 제공한 사진
▲ 민들레는 지표면에 바투 붙어서자라며 겨울에 죽은 잎도 새봄에 다시 살아나는 끈질긴 생명 덕분에 '민초'라고 불리기도 한다.

민들레의 하얀 털 뭉치는 씨앗들이 엉켜 있는 것인데 이를 가리키는 바른말은 ‘상투털’과 ‘갓털’이다. 박미경이 부른 대중가요 ‘민들레 홀씨 되어’가 ‘민들레 갓털 되어’로 쓰는 건 어렵지만, 민들레 씨앗이 엉킨 하얀 털 뭉치를 더는 ‘홀씨’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민들레는 꽃이 피는 식물로, 당연히 씨앗으로 번식한다. 하얀 털 뭉치가 바로 씨앗들이 엉켜 있는 것이다. 이를 가리키는 바른말은 ‘상투털’과 ‘갓털’이다. 북한에서는 ‘우산털’로도 부른다. 다만 노래 제목을 ‘민들레 상투털(갓털) 되어’로 하기는 좀 그렇다.

 

민들레는 이미 노란색이 짙은 서양민들레가 대세가 되어 토종 민들레 찾기가 쉽지 않다. 서양민들레는 토종에 비해 꽃송이가 크고 꽃잎의 수도 많으며, 꽃받침이 꽃잎이 아닌 아래로 뒤집혀 있는 게 특징이다. 흰색 민들레는 토종이지만 매우 귀하다.

 

제비꽃(오랑캐꽃)

▲ 오랭캐꽃으로 불리기도 하는 제비꽃. 작은 꽃이지만 제비처럼 날씬하고 예쁘다.
▲ 제비꽃이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꽃의 생김새가 오랑캐의 머리채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봄이면 산과 들에 흔하게 피는 제비꽃은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일명 오랑캐꽃·병아리꽃·앉은뱅이꽃·장수꽃·씨름꽃이라고도 부른다. 제비꽃이라는 이름은 꽃 모양이 아름다워서 ‘물 찬 제비’와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병아리꽃’이나 ‘앉은뱅이꽃’은 작고 귀엽다고 붙인 이름이다.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은 꽃의 생김새가 오랑캐의 머리채를 닮았다고 붙여진 것이다.

 

이용악(1914~1971) 시인은 시 '오랑캐꽃'에서 이 풀꽃을 소재로 하여 일제 강점기 유이민(고향을 잃고 떠도는 백성)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애를 노래했다.  생김새 때문에 오랑캐꽃이라고 불리는 제비꽃의 억울함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의 억울함을 겹치면서 시인은 오랑캐꽃과 우리 민족을 동일시하며 연민과 애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400여 종이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만도 30여 종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4~5월에 피는 짙은 자주색 꽃이 아름답다. 그러나 꽃이 작고 지표면에 바투 붙어 있어서 여느 꽃처럼 내로라하지는 않는다. 화사하지만,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 모습도 애잔하다.

 

봄맞이꽃

▲ 들이나 길가에서 흔히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인 봄맞이꽃. 꽃송이가 작아서 선명하게 찍기가 쉽지 않았다. 아래는 2023년 사진이다.

어린이 놀이터에서 만난 봄꽃이 봄맞이꽃이다. 들이나 길가에서 흔히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앵초과의 식물이지만, 앵초보다는 크기가 아주 작고 나약하게 생겨서 야생식물의 특징이 뚜렷한 풀꽃이다. ‘오는 봄을 반갑게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에서 봄맞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같은 계열로 금강봄맞이, 애기봄맞이 같은 꽃이 있고, 비슷한 모양의 풀꽃으로 참꽃마리도 있다.

 

꽃다지

▲ 아파트 뒤 산비탈 과수원에서 피어난 꽃다지. 아직 덜 자라 어리다.
▲ 접사하여 찍은 꽃다지. 2023년 사진이다.

꽃다지는 풍접초 목 십자화과에 속하는 관다발식물이다. 햇볕이 잘 드는 초지, 숲 가장자리, 길가, 공터 등에 흔하게 자라는 두해살이풀이다. 정작 나는 풀꽃보다는 1992년 창립하여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소외된 이들과 함께한 민중가요그룹 ‘꽃다지’를 먼저 알았다.

 

꽃다지가 부른 노래로 ‘민들레처럼’, ‘전화카드 한 장’, ‘바위처럼’ 등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통일가요인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훗날 신형원이 리메이크하여 부르기도 했다. 안치환이 작곡하여 꽃다지 2집(1997)에 발표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는 안치환이 리메이크하면서 크게 히트하였다.

 

나는 꽃다지가 부른 노래도 즐겼지만, 김호철이 작곡한 ‘꽃다지’를 따뜻하게 기억한다. 1990년 인천민중문화예술운동이 만든 ‘꽃다지’는 그 애상적인 가락이 마음을 적셔주는 노래였다. [관련 글 :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사랑과 그리움의 노래로 다가온 꽃, 꽃다지] 나는 2019년에 ‘파업가’ 30주년 기념으로 나온 김호철 헌정음반을 샀고, 거기 나온 두 버전의 ‘꽃다지’를 즐겨 듣는다. [관련 글 :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이 노래가 서른 살이 됐다]

 

아직 꽃다지는 어리다. 한 보름쯤 뒷면 줄기가 튼실하게 굵어지고, 잎도 넉넉하게 달린 꽃다지가 여기저기 다투어 피어나 있으리라. 마치 감꽃과 비슷한 모양의 네 잎의 꽃은 비록 작지만 앙증맞고 아름답다. 지지난해에 접사로 찍은 꽃다지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노래를 가만가만 불러본다.

 

봄까치꽃

▲ 지난 3월 21일, 북봉산 자락을 내려오다가 찍은 봄까치꽃. 상큼하고 신선한 느낌의 풀꽃이다.

이들보다 훨씬 이른 지난 3월 21일에 북봉산 줄기에서 찍은 ‘큰개불알꽃’도 봄꽃으로 흔하다. 3~4월에 피는 이 꽃은 일본인들이 열매가 개의 음낭을 닮았다고 보고 붙인 이름을 직역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줄곧 그렇게 부르다가 최근에 동호인들이 ‘봄까치꽃’이라 부르고 있다. 아무리 쳐다봐도 개불알꽃보단 봄까치꽃이 훨씬 어울리는 꽃이다. 자줏빛이 도는 짙은 파랑 꽃잎이 주는 느낌도 신선하고 상큼하다.

 

그러구러 4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다시 반짝 꽃샘추위지만, 아마 이게 겨울의 마지막 숨이리라. 곧 꽃들이 지고 열매가 여물며, 장미와 찔레의 계절이 시작될 터이다. 6월 3일 대선이 ‘장미 대선’이 된 이유도 거기 있지 않은가.

 

 

2025. 4. 1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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