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 차명진, 6300원짜리 ‘황제의 삶’을 누리다
‘6300원짜리 황제의 삶’이 화제다. 하루분 최저생계비 6300원으로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문화생활까지 누리고 기부까지 했다는 이 화제의 주인공은 한나라당 차명진(51·부천 소사) 의원이다. 이는 가히 ‘오병이어’의 기적 이래 가장 빛나는 기록이 될지도 모르겠다. [<미디어오늘> 기사 보기]
6,300원짜리 ‘황제의 삶’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서 실시하는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희망UP캠페인’의 릴레이 일일체험 참여 후기에서 그가 한 얘기다. 당연히 이 소식에 대해 누리꾼은 환호작약(?)하고 있다. 차명진 누리집 자유게시판에 오른 누리꾼의 반응 중 으뜸은 ‘부천 소사의 머슴에서 황제로 급승격’이다.
참여연대에서는 최저생계비만으로 한 달을 살아보는 “장수마을 한 달 나기” 캠페인을 7월 한 달 동안 진행하고 있다.
이 캠페인 일부로 최저생계비 릴레이 일일체험도 시행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민주당 주승용·추미애 의원과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및 일반 시민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차 의원은 23일부터 24일까지 이 체험에 참여했고 그 결과를 보도자료로 내고 자기 누리집의 ‘차명진의 톡 쏘는 이야기’ 꼭지에 올렸다. 그는 하루 치 최저생계비를 그림과 같이 썼다. 아침은 쌀국수, 점심과 저녁은 밥과 미트볼, 참치로 해결했는데 그는 겨우 3,710원으로 식사를 ‘충분하고’ ‘가뿐하게 때웠다.’
그는 ‘황도’ 통조림을 ‘음미’하며 밤에 책을 읽었고, 이튿날 아침에는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600원을 주고 조간신문을 사서 읽는 ‘문화생활’을 했다. 그가 먹을거리에 쓴 돈은 4680원, 1620원이 남았다. 그 가운데 ‘1천 원은 사회에 기부했다.’
‘문화생활’에 ‘기부’까지, ‘톡 쏘는 이야기’
아, 하나 빠졌다. 일상이니까 잘 잊어버린다. 물이다. 그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수돗물을 한 양재기 받아서 끓여 놓’는 걸로 이를 간단히 해결했다. 하기야 서울의 수돗물은 ‘먹을 만하다’니까 문제는 없겠다. 이 모든 활동을 끝낸 그의 결론이 ‘이 정도면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다.’이다. 정말 ‘톡 쏘는 이야기’다.
차 의원은 체험을 마친 후 자문자답한다.
“나는 왜 단돈 6,300원으로 황제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밥 먹으라고 준 돈으로 사회기부도 하고 문화생활까지 즐겼을까? 물가에 대한 좋은 정보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저생계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분들이 저처럼 될 수 있을까요? 단 하루 체험으로 섣부른 결론 내리는 것은 옳지 않겠지요. 다만 최저생계비만 올리는 것으론 답이 안 나올 것 같습니다. 국가재정에도 한계가 있고요.”
그의 발언이 최저생계비의 본질을 왜곡했다는 지적 따위는 까짓것, 그만두자. 작정하고 어깃장을 놓는 이에게 그런 원론을 들이대는 것은 헛수고일 가능성이 크니까 말이다. 1박 2일이 아니라 3박 4일이라 해도 누군들 못 버티랴. 그게 일상적 삶이 아니라 ‘특별한 체험’이라면 말이다.
그가 황제처럼 살았던 1박 2일의 경험이 말하고 싶어 하는 건 한눈에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는 ‘다만 최저생계비만 올리는 것으론 답이 안 나올 것 같’다며 ‘국가재정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 ‘한계’는 물론 ‘4대강 개발’ 따위의 토목·건설 사업에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위해서 일일체험에 참여했던 것일까. ‘살아보니 살 만하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체험을 통해서 ‘최저생계비’라는 우리 사회의 의제를 고민해 보자는 뜻에서 기획된 이 행사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쯤 되면 이른바 선량이라는 이들의 무책임과 몰상식이 가히 수준급이라는 걸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선거에서 야당을 지지한 젊은이들을 ‘친북좌파’로 몰면서 ‘이북에 가서 살아라’고 야유하는 각료의 수준이나 최저생계비 문제를 재정 지출 문제로만 바라보는 국회의원의 수준이나 거기서 거기다. 이게 ‘선진화’ 대한민국의 2010년의 초상이다.
‘정말 그러면 아예 황제로 살아라’?
외교부 장관의 어법으로 하면 차명진 의원에게도 비슷한 충고를 해 줄 수 있겠다. 누리꾼들의 반응처럼 ‘정말 그렇게 느꼈다면 아예 황제로 살아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 충고를 애써 삼키는 것은 그것이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야 하는 그들과 그들 삶에 대한 모독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차명진(1959~) 의원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민중당과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 보좌관을 거쳐 김 의원의 지역구에서 보궐선거(2006)로 국회에 들어왔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재선되어 한나라당 대변인 등을 역임했다.
‘위키백과’는 아주 기민하게 업그레이드되는 모양이다. 27일 아침에 확인한 <위키백과>에는 그의 약력 사항으로 2010년 항목이 ‘추가’되어 있다.
- 2010년 황제 즉위 (최저생활제)
- 황제[편집]
2010년 7월 즉위
업적: 최저생계비(6300원)으로 황제의 삶을 즐김
다만 6300원 중에서 20원이 남은 관계로, ‘20원마저 썼더라면 세상사에 유래없는 지고지락(至高至樂)한 삶을 누렸을 것을!’이라는 탄식을 자아냄.
차명진 의원 체험 후기 전문
▶ 최저생계비로 하루 나기 체험 후기 1
최저생계비로 하루 나기 체험에 다녀왔습니다. 식사비 6300원을 받고 쪽방에서 1박2일을 살아보는 겁니다. 저보다 앞서서 몇 분이 다녀갔지만 한나라당 의원은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선배 경험자의 가계부를 조사했습니다. 한 컵에 800원 하는 쌀 두 컵에 1600원, 김치 한 보시기 2000원, 참치캔 한 개 2000원, 생수 한 병에 500원, 이렇게 해서 모두 6100원이 들었답니다. 받은 돈 전부를 착실히 먹거리에 썼군요. 쌀은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걸 샀고 부식은 근처 구멍가게에서 샀답니다.
전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제가 굶어 죽을까 염려한 집사람이 인터넷에서 조사한 자료를 참조했습니다. 쌀은 800원어치 한 컵만 샀습니다. 그리고 마트에서 쎄일하는 쌀국수 1봉지 970원, 미트볼 한 봉지 970원, 참치캔 1개 970원을 샀습니다. 전부 합해 3710원. 이 정도면 세끼 식사용으로 충분합니다.
점심과 저녁은 밥에다 미트볼과 참치캔을 얹어서 먹었고 아침 식사는 쌀국수로 가분하게 때웠지요. 아참! 황도 970원짜리 한 캔을 사서 밤에 책 읽으면서 음미했습니다. 물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수돗물을 한 양재기 받아서 끓여 놓았지요. 이 정도면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지요. 나머지 돈으로 뭐 했냐구요? 반납하지 않고 정말 의미 있게 썼습니다.
▶ 최저생계비로 하루 나기 체험 후기 2
먹거리로 쓴 돈 4680원을 빼니까 1620원이 남더군요.
그중에서 1000원은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체험 내용 중에 쪽방촌 사람들 도우는 일이 있는데 제가 만난 사람은 1급 시각장애자였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1평짜리 골방에 박혀 매일 술로 지새웠습니다. 그분을 부축하고 동사무소에 도움을 신청하러 가는데 인사불성에 속이 불편한지 계속 꺼억댔습니다.
약방에 가서 제 돈 1,000원을 내고 속 푸는 약을 사드렸습니다. 집에 돌아가서는 걸레를 물에 빨라 방 청소를 해드렸는데 이불을 들자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혼비백산 달아나더군요. 바퀴벌레 알도 쓸어내고 청소를 마친 다음에 젖은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 드렸습니다. 기분 좋은지 살짝 웃더군요.
하루밤을 잘 자고 난 다음 날 아침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돌아오면서 조간신문 1부를 600원에 샀습니다. 문화생활을 한 셈이죠. 마지막으로 남은 돈은 20원이었습니다.
나는 왜 단돈 6300원으로 황제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밥 먹으라고 준 돈으로 사회기부도 하고 문화생활까지 즐겼을까? 물가에 대한 좋은 정보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저생계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분들이 저처럼 될 수 있을까요? 단 하루 체험으로 섣부른 결론 내리는 것은 옳지 않겠지요. 다만 최저생계비만 올리는 것으론 답이 안 나올 것 같습니다. 국가재정에도 한계가 있고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 <차명진 의원 누리집>에서 * 띄어쓰기와 문단 나누기 외에는 원문 그대로임.
2010. 7.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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