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영동 월류봉’, 달보다 먼저 ‘머물다’[월류(月留)] 돌아오다

by 낮달2018 2024. 10. 4.
728x90
SMALL

충북 영동군 황간면 ‘월류봉(月留峰)’ 기행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있는 월류봉 아래의 정자 월류정. 월류봉은 인근 한천팔경의 제1경으로 일컬어진다.

지난 1일은 국군의 날, 임시 공휴일이었다. 아침 일찍, 대전 계족산에 간다는 딸애가 집을 지킬 우리가 걸렸든지 멀지 않은 영동 월류봉이라도 다녀오시라고 하고 집을 나갔다. 그럴까, 하고 대꾸하다 말고 나는 우리는 이내 까짓것, 다녀오자고 합의를 봤다.

 

사전 계획 없이 떠난 소풍길

 

지도 앱으로 확인해 보니 월류봉까지는 50분이 걸린다고 했다. 냉장고를 정리하던 아내가 그걸 마저 끝내고 대강 나들이 준비를 마치니 거의 11시가 가까웠다. 맛 좋기로 소문난 동네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고, 마트에 가서 통닭을 한 마리 사 가지고 바로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굳이 속력을 낼 일도 없어 쉬엄쉬엄 가면서,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아 출출해진 속을 김밥과 닭으로 채웠다. 정오를 조금 지나 월류봉 주차장에 닿았다. 주차장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도로에 승용차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주차장까지 들어갔는데, 자리가 없어서 빙빙 돌다가 마침 자리를 비우는 차가 있어 차를 댈 수 있었다.

▲ 월류봉은 해발 407m의 석영반암 봉우리지만, 그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봉우리를 휘감아 흐르는 물은 금강 상류 초강천이다.
▲ 주차장이 있는 월류봉 광장에서 바라본 월류봉과 월류정. 이곳은 초강천을 따라 이어지는 월류봉 둘레길의 출발점이다.
▲ 월류정이 있는 산밑으로는 징검다리를 건너 접근할 수 있었으나, 따로 오를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바라보이는 낮지만, 산세가 예사롭지 않은 바위 봉우리 아래에 정자가 낯익었다. 왼쪽 언덕에 매운탕 집 몇을 일별하면서 그중 하나가 10여 년 전에 방송고 학생들과 함께 들렀던 곳임을 눈치챘다. 우리는 월류봉은커녕 거기서 매운탕을 먹고 서둘러 돌아갔었다.

 

월류봉 둘레길, 근처엔 양산팔경도 있다

 

월류봉은 충북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에 있는 해발 407m의 석영반암(石英班岩, Quartz Porphyry) 및 영동층군(永同層群) 봉우리다. ‘달이 머문다’라는 뜻의 월류봉은 달이 능선을 따라 물 흐르듯 기운다는 모습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월류봉과 그 일대의 절묘한 산수를 이르는 한천팔경(寒泉八景)의 제1경이다.

 

한천은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이 머물던 한천정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봉우리 아래로 금강 상류의 한 줄기인 초강천(草江川)이 흐르고 깨끗한 백사장, 강변에 비친 달빛이 어우러져 인근 양산면 금강 상류에 있는 8개소의 경승지를 이르는 ‘양산(陽山)팔경’에 견줄 만하다고 한다. [관련 글 : 영동의 비단강, ‘풍경에서 정경(情景)’으로]

 

봉우리를 휘돌아 흐르는 강물에 부서지는 햇볕과 낮지만, 험준한 산세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팔경의 제1경으로 모자라지 않는다. 강으로 흘러 내려오는 나지막한 봉우리 위 정자 월류정은 그림 같고, 그 앞을 휘도는 물길을 가로질러 돌로 놓은 징검다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 광장에서 강을 건너는데 만들어진 징검다리. 돌을 다듬에서 지그재그로 어긋나게 놓았다. 물은 깨끗하고 세차게 흘렀다.
▲ 우암 송시열이 1649년, 마흔셋에 이곳으로 내려와  머무르며 학문을 닦고 후학을 길렀던 한천정사. ⓒ 코리아뉴스24 사진
▲ 우암 송시열이 이 부근에 머무른 사실을 기록한 유허비가 근처에 있다. ⓒ 국가유산포털 사진

임시 공휴일인데도 월류봉을 찾은 이들은 모두 수묵의 풍경 같은 월류봉에서 반야사까지 줄곧 초강천 물길을 끼고 가는 ‘월류봉 둘레길’을 목표로 온 듯했다. 강변에 커다랗게 세운 안내판에 따르면 ‘월류봉 둘레길’은 여울소리 길(2.7km), 산새소리 길(3.2km), 풍경소리 길(2.5km) 등 모두 3코스 8.4km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사전에 확인한 것은 강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이른바 ‘잔도(棧道)’라는 이름의 덱(deck) 길이 유명하다는 것이었는데, 막상 월류봉 광장에서 둘레길로 출발하였지만, 잔도는 보이지 않았다. 출발지 근처에 아주 보기 좋은 모양의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그 앞 언덕 위에 한천정사가 있었다.

 

주자학을 절대 신봉했던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조선 후기를 이끌어 간 이념, 정치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우리역사넷)이다. 한천정사는 우암이 1649년, 마흔셋에 이곳으로 내려와 머무르며 학문을 닦고 후학을 길렀던 곳이다.

 

첫 번째 둘레길인 ‘여울소리 길’이 시작되는 원촌교까지의 덱 길은 막혀 있었다. 여름철 큰비로 위험하다면서 출입을 금하는 줄을 쳐 놓았다. 원촌교가 멀리 보이는 지점까지 갔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단 차로 거기로 이동하여, 둘레길을 돌기로 했다.

▲ 원촌교에서 시작되는 여울소리 길로 가는 산 아래 강변의 흙길. 떡갈나무 등 숲이 좋았다.
▲ 여울소리 길의 덱 길. 지붕이 따로 있는 게 특이했다. 이 길은 짧고 나머지 길은 산길을 타야 한다.
▲ 소나기를 만나 돌아오는 길에 찍은 덱 길.
▲ 돌아오는 길의 덱 길. 저 멀리 보이는 게 월류봉이다.

원촌교에서 시작된 덱 길은 짧은 구간에 그쳤고 나머지는 산길로 이어졌다. 적당한 오르막 내리막을 거치는 길 주변에는 나무와 숲이 빽빽했고, 아래는 적지 않은 강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둘레길을 도는 이들은 많지는 않았지만, 두세 명씩 계속해서 이어졌다.

 

둘레길 전체는 뒷날을 기약하고

 

두 번째 코스에 들어서기 전에 빗발이 굵어져서 부득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기회를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언제 날씨가 더 청량해지고, 단풍이 물들 때쯤에 다시 이 길을 찾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것마저 꺼릴 일은 없다.

 

“몰라서 그렇지, 국내에도 좋은 데가 많아.”

“그럼, 우리가 못 가 본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봐야지.”

 

언제나 그렇듯 그런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월류봉 부근을 떠났다. 우리가 걸은 거리는 한 2km쯤 될까. 나머지 6km를 온전히 걸어볼 수 있는 날을 가늠해 보면서, 조만간 들르려고 하는 진천 농다리엔 언제쯤 갈까, 날짜를 어림해 본다. 이런저런 말은 많아도 가을은 이미 깊어 가고 있다.

 

 

2024. 10. 4. 낮달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