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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초록 짙은 11월의 메타세쿼이아 숲, 문제는 ‘단풍’ 아닌 ‘기후’다

by 낮달2018 2024.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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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 혹은 ‘초록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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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인데, 단풍나무 잎은 몇 잎만 붉어졌을 뿐 초록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은 초록 낙엽이 될 가능성이 크다.
▲ 시원하게 뻗은 메타세쿼이아의 잎은 아직까지 푸름을 유지하고 있다.

9월까지 이어졌던 올여름의 이상폭염 탓에 제대로 된 단풍을 보기가 쉽지 않다. 나무는 일조량이 줄어드는 겨울에 쓸 양분을 갈무리하느라고 가을이면 광합성을 멈춘다. 단풍은 이때 초록 잎을 만드는 엽록소가 파괴되고 나머지 색소들이 드러나면서 잎이 물드는 현상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 가을 한가운데 초록 단풍폭염 시달린 나무가 쉬질 못해서]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으로 떠난 가족 나들이

 

어쨌거나 가을이고, 어디 단풍 구경이라도 가자며 가족들과 찾은 곳이 대전 장태산이다. 그간 소문이 자자해서 장태산 단풍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장태산은 가족들 모두 초행이었다. 9시가 넘어 출발하는 바람에 주차를 못 하는 불상사는 피했으나, 우리는 주차장 위쪽 마을의 임시 주차장에 간신히 차를 댔다.

 

그런데, 여기저기 한눈에 들어오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숲이 시선을 붙잡았지만, 숲은 아직 초록이 짙었고, 화사한 단풍 빛깔은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어차피 단풍 절정기를 맞추는 일은 하늘 소관이다, 좀 이르면 이른 대로 좋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1주쯤 더 늦출 수도 있었지만, 정작 1주일 후엔 잎이 물들기 전에 다 떨어지고 마는 불상사를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초가을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으면 나무들은 계속 엽록소를 생산한다. 나무에는 정해진 생육일수가 있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 물들지 않은 잎들이 떨어져 바로 이른바 ‘초록 낙엽’이 된다니 적어도 지금도 푸른 잎사귀는 초록 낙엽이 될 공산이 큰 셈이다.

▲ 관리사무소 주변. 숲속 어드벤처 시설의 철제 기둥 사이로 나들이객이 지나고 있다.
▲ 전체적으로 초록이 여전한데, 노랗게 변한 것은 은행이거나 단풍나무의 잎사귀가 빨갛게 물들기 전의 상태다.
▲ 메타세쿼이아 산림욕장 부근. 잎이 여전히 푸르니, 붉은 단풍을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자

장태산은 휴양림을 조성한 독림가가 붙인 이름

 

대전광역시 서구 장안로 461 장태산자연휴양림은 대전광역시 서구 장안동과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신대리 경계의 안평산(470.2m) 옆에 있는 산에 조성된 휴양림이다. 대둔산에 뿌리를 둔 산줄기에 조성되었지만, 이곳은 형제산이고, 인근에 해태산과 안평산 등이 있을 뿐, 정작 ‘장태산’이란 이름의 산은 따로 없다.

 

그런데도 장태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휴양림을 처음 만든 독림가(篤林家)인 임창봉 선생이 ‘장대하고 큰 산’이라는 뜻으로 ‘장태산’으로 명명해서라고 한다. 독림가란 “나무를 심어 산림을 착실히 경영하였다고 산림청장, 도지사, 시장 또는 군수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표준국어대사전)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장대하고 큰 산’이라면서 ‘장태산’의 한자는 ‘長太山’과 ‘長泰山’, ‘壯泰山’ 등 3가지로 쓰인다. 정작 장태산자연휴양림 누리집에는 한자 표기가 아예 없으니, 어느 게 제대로 된 표기인지는 알 수 없다. 원래 지명은 국토지리정보원이 관리하며, 개인이 붙일 수 없으므로 그냥 휴양림 이름으로 쓰고 있을 뿐, 장태산은 정식 산 이름은 아닌 셈이다.

 

경매 처분에 나온 휴양림을 대전광역시가 인수해 이룬 시민 휴식공간

 

장태산자연휴양림은 1970년대에 이 산을 매입하여 숲으로 가꾼 독림가 임창봉 선생이 1991년 민간인 최초로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받아 조성·운영해 왔으나, 2001년 이후 금융권의 부채로 말미암아 경매 처분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일반인에게 경락(競落) 되면 휴양림으로 지정된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될 우려가 있었으며, 언론을 비롯한 시민단체, 시의회 등에서 장태산자연휴양림을 시에서 매입하여 ‘자연경관 보존과 시민 휴식 공간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결국 대전광역시에서 경매에 참여하여 2002년 2월에 인수, 리모델링한 뒤 2006년 4월 25일부터 재개장하게 되었다. 장태산자연휴양림은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국내에 유일한 메타세쿼이아 숲이다. 메타세쿼이아는 전체 면적 85㏊(815,855㎡) 중 20㏊에 7,200여 본이 숲을 이루고 있다.

 

국내 유일의 메타세쿼이아 숲 20ha

 

아름드리나무는 이 숲을 만든 고 임창봉 선생이 심었다고 한다. 처음에 낙엽송과 잣나무, 오동나무 등을 심었는데, 잘 자라지 않아 메타세쿼이아를 선택했다.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 또는 dawn redwoods)는 낙우송과의 나무로 메타세쿼이아 속 중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종이다. 달리 수삼나무라고도 부른다.

 

메타세쿼이아라는 나무가 아직 지구상에 살아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불과 80여 년 전인 1940년이고, 이름이 붙은 것은 1941년이다.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됐던 나무가 양쯔강 상류의 한 지류인 마도계곡에서 35m나 되는 거대한 크기의 나무로 발견되었고, 전 세계는 연구비를 모아 자생지를 조사하고 증식하여 다시 전 세계로 퍼트려 오늘날 우리나라의 가로수로까지 퍼져나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메타세쿼이아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56년으로, 일본이 1940년대에 중국에서 도입한 것이 다시 국내로 전래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담양의 가로수로 심은 메타세쿼이아가 유명하고, 경북에는 영덕군 영해면 벌영리에 사유림 메타세쿼이아숲이 널리 알려져 있다.[관련 글 : 경북 영덕 벌영리의 사유림 메타세쿼이아숲]

 

장태산자연휴양림은 산림청 산하의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에서 관리하는 휴양림이 아니라, 앞에서 밝혔듯 대전광역시가 독자적으로 관리하는 휴양림이다. 위기의 휴양림을 인수한 후 대전시에서는 휴양림을 리모델링하면서 노후화한 시설을 교체하고, 이용 행태별로는 숙박 체류형뿐 아니라, 야영장과 1일 휴양객을 위한 공간 배치로 자연휴양림과 도시 휴양림의 절충형으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 메타세쿼이아와 소나무 사이 단풍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다가 일부는 바스라져 말라 죽고 있다.
▲ 이 단풍나무는 그나마 가장 제대로 단풍으로 물들고 있는 상태다. 그래도 초록잎에 많다.
▲ 장태산자연휴양림은 민간이 조성한 휴양림인데 경매에 나오자, 대전광역시가 시민의 뜻을 수렴하여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자연친화’와는 거리 먼 숲속 어드벤처 시설도 볼거리

 

이후 휴양림은 보완 사업을 통하여 총길이 196m의 숲속 어드벤처와 140m의 출렁다리를 추가 설치하여 눈앞에서 메타세쿼이아의 어린 새잎이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였고, 볼거리 체험 시설과 포토 존을 확충하였다고 했다. 메타세쿼이아 숲 사이로 거대한 철 구조물로 만든 숲체험 스카이 웨이와 출렁다리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긴 했지만, 그게 환경친화적인 생태자원 보존 원칙과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래도 입장료도 주차료도 받지 않는 이 휴양림은 대전의 보물임은 틀림없다. 시민들이 도시 안의 잘 가꾸어진 메타세쿼이아 숲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태산자연휴양림은 1996년 대전시에서 대전 팔경으로 지정했고, 2019년에는 산림청에서 국가 산림문화 자산으로 지정했다. 2021년에서 2022년에는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관광 100선’에 포함되기도 했다.

 

단풍을 즐기러 온 나들이객으로 우리가 차를 댄 뒤에 이내 주차장은 차 버렸다. 우리는 관리사무소에서 메타세쿼이아 산림욕장을 거쳐 산림문화휴양관과 숲속의 집까지 올랐다가 되짚어 내려와 숲속 어드벤처와 출렁다리를 돌아서 내려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시간은 오후 1시에 이르고 있었다.

▲ 숲속 어드벤처로 오르는 통로 주변에도 그야말로 생짜인 단풍나무 잎이 짙푸르다.
▲ 숲속 어드벤처 아래의 단풍나무들. 이 초록잎이 단풍으로 물들 거라고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초록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거다.
▲ 숲속 어드벤처의 스카이웨이 옆으로 난 메타세쿼이아도 푸르긴 마찬가지다.
▲ 숲체험 스카이웨이의 전망대로 오르는 통로를 분주히 오가는 나들이객들. 개중에는 외국인도 적지 않았다.

단풍 없어도 메타세쿼이아 숲은 압권! 그러나 ‘지각 단풍’은 걱정!

 

간간이 보이는 은행나무 단풍과 희끗희끗 푸른 잎사귀 속에 빨간 잎이 섞인 단풍나무 등으로 조금은 아쉽지만, 단풍 구경엔 만족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메타세쿼이아 산림욕장은 압권이었다. 하늘로 총총이 들어선 메타세쿼이아 수목은 의젓하고 미끈하면서도, 웅장했다.

 

메타세쿼이아 검붉은 단풍도 매우 아름답다고 하는데, 이번 방문에서는 비슷한 풍경도 보기 어려웠다. 다음 주에는 혹시 가능할까, 그러나 다음 주에는 온도가 더 떨어진다고 하니 단풍은 기대 난망, 바로 초록 낙엽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단풍이야 못 보고 지나가도 크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지각 단풍’이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휴지기(휴식기)가 강제로 늦춰지면서 충분히 쉬지 못한 나무는 다음 해 제대로 성장할 수 없고, 본래 나무가 해야 할 탄소 흡수, 공기 정화, 물 순환 등의 기본 생태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기후 위기 속도를 늦추지 않는 이상 이 현상을 막을 방법은 따로 없다, 그래서 10년∼20년 후에는 우리나라에서 단풍을 보지 못할 수 있다니 끔찍한 일이다.

▲ 솦속 어드벤처 스카이웨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 그래도 울긋불글 단풍이 든 모습이 한결 보기 좋다.
▲ 스카이웨이 곁의 출렁다리. 2018년에 조성한 시설이라고 한다.
▲ 숲속 어드벤처로 가는 통로 주변의 단풍나무. 그 짙푸른 잎은 단풍이 들 가능성을 전혀 비치지 않고 있다.
▲ 메타세쿼이아 잎. 메타세쿼이아는 은행나무와 함께 살아 있는 식물 화석으로까지 불린다. 장태산자연휴양림은 이 숲으로 유명하다.
▲ 그나마 단풍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단풍나무 잎. 주차장 부근에서 찍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답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영속성은 보장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굳이 휴양림을 떠나면서도 그런 비관적인 전망으로 우울해할 필요는 없는 것, 우리는 아이들이 검색한 시내 맛집에서 늦은 점심을 들기 위해 서둘러 장태산을 떠났다.

 

 

 

2024. 11. 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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