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춘천박물관 기획 전시 ‘선림원 터 금동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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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우리 내외는 딸애와 함께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2018년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이후 6년 만에 아이들이 짠 호주 가족여행에 초대받은 것이었다. 우리는 4시간쯤 걸려 공항에 도착해서 저녁 식사를 한 다음, 서울에서 바로 온 아들 녀석과 함께 밤 11시 15분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MS 클라우드 먹통 여파로 시드니 여행을 접다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에서 탑승권을 받고 수화물을 부친 다음,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여 탑승 게이트에 들어간 게 10시가 넘어서였다. 그러나 우리는 비행기에 오르는 대신, 새벽 2시에 택시에 올라 서울의 아들애 집으로 철수했다. 자세한 경위는 줄인다. MS 클라우드 먹통 대란으로 인한 문제로 22일 출발하려던 일정이 24일까지 순연되면서 더는 여행을 강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휴가까지 낸 상태여서 우리는 아들 차로 춘천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와 나머지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춘천을 들르기로 한 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춘천이 서울에서 가볍게 들를 수 있는 도시였고, 아이들은 거기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해서였다. 우리 내외는 20여 년 전에 들러서 먹은 춘천닭갈비에 미련이 있었는데, 아들애는 춘천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 전시에 가고 싶어 했다.
춘천 시내에 들어가기 전 외곽에 있는 닭갈비 전문점에서 우리는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었는데, 과거의 실망감을 상쇄하는 정도의 맛에 우리는 모두 만족했다. 그리고 바로 국립춘천박물관으로 향했다. 2002년에 개관했다는 박물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전시관 앞 광장에서는 춘천 시가지가 내려다보였다.
닭갈비와 금동보살입상에 끌려 춘천을 찾다
<다시 찾은 신라의 빛>은 2015년에 발굴된 선림원 터 금동보살입상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선림원 터 금동보살입상은 출토지가 명확한 통일신라의 소형 금동보살상 가운데 가장 크면서도 대좌와 광배, 장신구까지 갖춘 특별한 상으로 오랜 시간 보존 처리와 복원을 거친 유산이다.
본관 출입구로 들어서면 방문객을 맞는 것은 1·2층을 턴 중앙의 원형 뮤지엄·갤러리 카페다. 원형의 맞은편 벽에는 영상이 흐르고 있었고, 층별로 나누어진 카페에서는 시민들이 쉬고 있었다. 카페 왼쪽에는 상설 전시실은 ‘강원의 선사’와 ‘강원의 고대’ 관련 전시 중이었다.
2층에는 ‘강원의 중세’와 ‘강원의 근세’ 전시와 ‘이상향으로의 초대, 금강산과 관동팔경’(브랜드 존)과 ‘창령사 터 오백나한, 나에게로 가는 길’(브랜드실) 전시 중이었다. 금강산과 관동팔경 전은 아름다운 강원의 산하를 주제로 한 그림과 글씨 등을 소개하는 전시다.
일상의 희로애락을 담은 창령사 터 오백나한
창령사(蒼嶺寺) 터는 영월군 남면 창원리에 있는 절터로 2001년 오백나한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면서 알려진 폐사지다. 출토된 기와 조각에 ‘창령(蒼嶺)’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여러 문헌에 나오는 창령사임이 알려졌는데, 창령사는 15세기 말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쁨, 슬픔, 희망, 분노 등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우리들 일상의 마음을 담고 있는 창령사 터 오백나한”(국립춘천박물관)을 자연스럽게 배치해 놓았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전형적 양식의 단구형 좌상이며, 각각 다른 표정, 다른 몸짓을 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투박하고 소박한 모습이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천 년의 어둠을 넘어 다시 찾은 빛, 선림원 터 금동보살입상
이번 기획 전시인 <다시 찾은 신라의 빛>의 주인공은 물론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 있었던 남북국시대에 창건된 사찰 선림원(禪林院) 터에서 출토된 금동보살입상이다. 2015년 10월, 천 년 넘게 흙에 파묻혀 있던 9세기 통일신라 불교 조각의 걸작인 이 금동보살입상은 5년간의 보존 처리를 거쳐서 화려한 목걸이와 팔찌, 보살상을 받치는 귀꽃문양의 대좌 위에서 의연히 서 있었다.
이 금동보살입상은 높이가 38.7cm이고, 대좌(14cm)와 불상 주변을 감싼 광배(光背)까지 더하면 크기가 60cm에 이르며, 30cm가 넘는 것이 손에 꼽을 만큼 드문 통일신라시대 금동보살입상 중에서도 가장 크다. 특히 보살상의 온몸을 감싸는 장신구가 전부 따로 제작돼 ‘신라 금속공예의 걸작’이란 평가된다고 한다.
선림원은 해인사를 창건했던 순응법사가 지은 절로, 절터에서 연대가 804년으로 적힌 범종이 나오면서 창건연대를 알 수 있게 됐다. 9세기 말, 홍각선사가 중창하며 선종의 대표적인 절집이 됐다. 전성기에는 공양할 때 쌀 씻은 물이 계곡을 하얗게 할 정도로 수도승이 많아서 계곡 이름도 ‘미천(米川)골’이 되었다고 한다. 절은 1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큰 홍수로 산사태가 나며 매몰된 것으로 추정한다.
금동보살입상은 다른 조각과 비교해 볼 때 대체로 8~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본다. 보살은 깨끗한 물을 넣는 정병(淨甁)을 들고 있는데, 이 정병은 현실의 어려움에서 구원해 주는 관음보살을 상징한다. 전시실의 어둠 속에서 관음보살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천 년의 침묵을 깨고 세상에 나왔지만, 불상은 이 절터와 관련한 여러 비밀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그것을 추정해 보거나, 무심히 지나갈 뿐이다. 입상을 전시한 전시실 맞은편에는 선림원 터를 공중에서 찍은 사진이 처연했다.
이곳 선림원에서 출토된 유물도 이 절이 예사롭지 않은 사찰이었음을 시사한다. 선림원 터의 삼층석탑과 석등, 홍각(弘覺) 선사(814?~880) 탑비의 귀부와 이수, 승탑 등이 보물로 지정돼 있고, 선림원지 동종도 현재 춘천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한 시간 남짓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다 안내대의 직원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로 전국 광역 시도청 소재지에는 국립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어쨌거나 박물관은커녕, 미술관 하나 없는 척박한 공업도시에서 온 여행자는 국립박물관을 갖춘 이 지방 도시에 은근한 부러움을 표시하면서 박물관을 나와 귀로에 올랐다.
2024. 7.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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