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성못과 지산 샛강의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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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인 오늘 낮 우리 지역의 최고 온도는 35.4℃, 어제보다 6℃가 높다. 9월도 중순, 음력 8월 보름날 낮 온도로는 기록을 찍을 듯하다. 이제, 더위도 물러가는구나, 하고 방심하다 만난 늦더위는 끔찍하다. 그나마 20일부터는 낮 최고 기온이 30℃ 이하로 떨어진다는 일기 예보가 위안이 된다.
끔찍한 늦더위 속, 9월의 연꽃 소식
가끔은 자정 이후나 새벽녘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그게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폭염을 지워가는 가을의 조짐이거니 하고 느꺼워하곤 한다. 어쨌든, 이 괴로운 늦더위를 견디게 하는 힘은 조만간 이 더위가 손을 들고 퇴각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샛강과 들성못의 연꽃을 돌아보고 글을 쓴 게 지난 7월 중순이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연꽃은 퇴(退)내지만, 봐도 봐도 물리지 않는 게 연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후 거기엔 다시 가지 않았는데, 아내가 며칠 전 샛강 하류에 연꽃이 새로 잔뜩 피었다고 말해 주었다. [관련 글 : 2024, 샛강의 연꽃 / 2024, 구미 문성지(들성못)의 연꽃]
*퇴-내다(退내다) : 「동사」 「1」 실컷 먹거나 가지거나 누리어서 물리게 되다.
9월에 연꽃이 새로 피었다고? 7~8월이 꽃이 피니, 9월에 피는 게 이상하다고 할 순 없다. 11일 아침 일찍 들성못을 거쳐 샛강에 들렀다. 들성못은 규모는 샛강에 미치지 못하지만, 꽃의 수효는 샛강에 비길 바가 아니었으므로 들성못은 어떤가 싶어서였다.
차를 대고 못을 가로지르는 데크길로 들어서자, 펼쳐진 저수지의 연밭에는 꽃 대신 연밥을 맺은 꽃자루가 못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열매를 맺은 지 꽤 시간이 지난 듯 연밥은 푸른색을 띤 놈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말라서 빨갛게 바래는 중이었다. 물론 남은 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연꽃을 보고 즐기고 말지만, 기실 이 인도 원산의 여러해살이풀은 꽃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 씨와 뿌리 등 쓰임새가 만만찮다. 연의 땅속줄기는 흙 속을 기는데, 가을이 끝날 때쯤에는 그 끝이 커져 연근(蓮根)이 만들어진다. 또 연의 열매[연실(蓮實)]인 연밥은 연근과 함께 먹거나 약재로 쓰인다. 또 커다란 원형의 방패 모양을 한 잎도 연잎밥이나 연잎 차로 쓰이니 연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식물이다.
연밥에 총총 박힌 게 ‘연자(蓮子)’로도 부르는 연씨다. 연자육으로도 부르는 연씨는 저항성 전분이 풍부해 탄수화물 체내 흡수량을 줄이고, 지방을 잘 흡수한다. 그리고 체내의 독소를 빼는 데도 효과적이어서 해독다이어트로 인기가 많다. 또 칼슘이 풍부해 골다공증을 예방하고 뼈에 좋은 음식으로 꼽힌다.
연씨는 상처를 내서 심어야 할 만큼 껍질이 두껍다. 배아에 수분이 스며 들어가야 싹을 틔우게 되는데 단단한 연씨의 껍질이 수분 침투를 막고 있어 작은 물구멍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씨앗이 6, 7백 년의 시간을 견뎌 꽃을 피우게 된 것은 연씨의 껍질이 두꺼워서 가능한 것이었다고.
두꺼운 연씨 껍질 덕분에 700년 만에 꽃을 피운 ‘아라 홍련’
2009년 4월 경상남도 함안군 성산산성에서 발굴된 연꽃 씨앗을 틔워서 피운 ‘아라연꽃’ 얘기다. 성산산성은 함안군 가야읍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으로 여기서 발견된 15개의 종자 중 일부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추정 연대는 760년 전에서 650년 전까지로 확인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700년 전의 씨앗이었다..
함안군에서는 2010년 그중 일부 씨앗을 발아시키는 데 성공했는데 이 연꽃은 꽃봉오리는 요즘 연꽃과 달리 긴 타원형이고, 색깔도 꽃잎 아래가 흰색, 중간이 선홍색, 끝이 진한 홍색이었다. 이 꽃은 고려시대 탱화와 벽화에 그려진 모습과 같이 진화되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어서 옛 아라가야의 터전이었던 함안군에서는 이 연꽃을 ‘아라 홍련’이라 이름 붙였다.
‘여름의 끝’을 장식하는 샛강의 연꽃 엔딩
들성못을 간단히 둘러보고 바로 샛강 하류로 갔다. 물이 조금씩 줄고 있는 수면을 온통 검푸르게 뒤덮고 있는 연잎 사이로 홍련과 백련이 여기저기 피어나 있었다. 물론 호수를 빽빽이 덮은 7월의 연꽃과 비길 바는 아니다. 연꽃 사이로 연밥의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뒤늦게 꽃이 새로 핀 것은 더위 탓인지도 모른다.
망원렌즈가 핀이 나가서 100mm 매크로 렌즈로 담을 수 있는 풍경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파인더를 통해 들여다보는 연꽃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꽃과도 견줄 수 없는 고아한 기품을 보여준다. 연꽃은 맑은 물이 아닌 진흙 속에서 자라되, 진흙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도리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관련 글 : 그 ‘샛강’이 생태공원이 되었다]
처서를 지났지만, 여전히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호숫가 풍경을 바라보면서, 가을이 코앞에 오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 끔찍한 더위라고 몸서리를 치지만, 이제 여름의 목숨은 경계에 이르렀다. 이 여름의 끝에 이 ‘연꽃 엔딩’을 자축하는 것은 지금 오고 있는 가을을 반가이 맞기 위해서다.
*마땅한 우리말로 바꾸기가 쉽지 않아서 ‘엔딩(ending)’을 그대로 썼다. ‘결말, 종결, 종료, 결말’ 등 어느 것도 바꾸기에는 적절하지 않아서다.
2024. 9.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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