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불규칙용언’의 활용에서 ‘곱다’와 ‘돕다’의 활용
우리말 용언(동사·형용사)이나 서술격 조사(‘이다’)의 어간에 어미가 붙어서 문장의 성격을 바꾸는 것을 ‘활용’이라고 한다. 이 어미변화는 어간의 문법적 관계를 나타낸다. 어간에 어미 ‘―다’가 연결된 어형을 그 용언의 ‘기본형(으뜸꼴)’이라 하는데, 이는 표제어로 사전에 오르게 된다.
용언의 어미변화 = 활용, 그 규칙성과 불규칙성
이 활용의 과정에서 국어의 일반적인 음운 규칙이 적용되는 것을 ‘규칙활용’이라 하고, 그것이 적용되지 않고 어간이나 어미가 바뀌면서 기본 형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규칙 활용’이라고 한다. 활용 시 ‘어간’이 바뀌는 불규칙 활용 가운데 ‘ㅂ 불규칙 활용’이 있다.
어간의 끝소리가 ‘ㅂ’으로 끝나는 용언 중에서 국어의 일반적 음운 규칙이 적용되는 규칙활용을 하는 용언부터 살펴보자. 이 규칙활용에서는 어떤 어미가 오더라도 어간의 형태가 바뀌지 않는다.
(1) 곱다 : 날씨가 추워서 손이 곱았다.(곱아, 곱으니)
(2) 굽다 : 할머니는 허리가 굽으셨다.(굽어, 굽으니)
(3) 꼽다 : 아이들은 손가락을 꼽으며 명절을 기다렸다.(꼽아, 꼽으니)
(4) 뽑다 : 앓던 사랑니를 뽑으니 살 것 같다.(뽑아, 뽑으니)
(5) 씹다 : 그는 껌을 질겅질겅 씹었다.(씹어, 씹으니)
(6) 업다 : 아이 하나는 업고, 하나는 걸려서 간다.(업어, 업으니)
(7) 입다 : 그는 옷을 입은 채 물에 들어갔다.(입어, 입으니)
(8) 잡다 : 흐르는 세월은 잡을 수 없다.(잡아, 잡으니)
(9) 접다 : 아이와 함께 종이비행기를 접었다.(접어, 접으니)
그런데 동음이의어 가운데는 위의 규칙활용에 어긋나게 활용하는 불규칙 활용도 있다. 위 규칙활용에서는 어떤 어미가 오든 어간의 끝소리 ‘ㅂ’이 변하지 않지만, 불규칙 활용에서는 이 어간이 바뀌는 것이다.
(1) 곱다 :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고와, 고우니)
(2) 굽다 : 김은 약한 불에 구워야 맛있다.(구워, 구우니)
(3) 눕다 : 누워서 떡 먹기.(누워, 누우니)
(4) 덥다 : 오늘은 유난히 더운 날이다.(더워, 더우니)
위의 예처럼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ㅂ’이 반모음 ‘오/우(w)’로 바뀌는” 용언을 ‘ㅂ(비읍) 불규칙 용언’이라고 한다. 이들 불규칙 용언은 예전에는 모음조화가 적용되어 ‘가깝다’는 ‘가까와(가깝+아)’, ‘아니꼽다’는 ‘아니꼬와(아니꼽+아)’로 표기했다.
ㅂ 불규칙 용언은 대부분 모음조화 적용 않고 ‘우’로 씀
그러나 현행 한글맞춤법은 모음조화를 적용하지 않고, 어간의 모음 특성에 상관없이 어미 ‘-어’가 결합하여 ‘아름다워, 가까워, 수고로워, 미워, 무거워’ 등으로 소리 나므로 ‘워’로 적는다. 이는 모음조화의 파괴 현상을 맞춤법 규정 속에 받아들여 “모음조화나 형태에 어긋나게 굳어진 채로 널리 쓰이면 굳어진 것을 표준어로 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으니, 단, ‘돕다, 곱다’는 ‘도와(돕+아), 고와(곱+아)’처럼 ‘-아’ 계열로 적는다. 이 두 개 외에는 모두 ‘우’로 발음해야 하는 것이다. 흔히 ‘돕는’을 ‘도우는’으로, ‘돕자’를 ‘도우자’라고 쓰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ㅂ 불규칙 활용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저께 구미의 어떤 공공기관 화장실에 갔다가 소변기 앞 벽에 붙은 스티커를 보고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을 써 붙였는데, ‘고와야’가 ‘고아야’로 표기되어 있었다. 이는 주로 중고생 등 어린 학생들이 주로 하는 실수로 대체로 입에 익은 발음대로 표기하다 보니 빚어진 일이다.
아이들은 ‘바뀌었다’를 ‘바꼈다’로, ‘사귀어라’를 ‘사겨라’로 과감히 줄여서 쓰고, 그게 맞춤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관련 글 : ‘바꼈다’는 ‘바뀌었다’, ‘복스런’은 ‘복스러운’으로 쓰자]
바로 옆에 있는 사무실에 들러 어법에 어긋난다는 걸 알려주고 나왔는데 아마 조만간 그게 바로잡아지기를 기대한다. 공공시설에 잘못 쓰인 안내문 같은 건 보이는 대로 시정을 요구해 왔는데, 요즘은 그런 실수가 예전처럼 잦지는 않은 듯하다. 물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와 같은 비문(非文)이 버젓이 쓰이긴 하지만 말이다. [관련 글 : 제발, 이번 한가위는 ‘되지’ 말고 ‘쇠자’]
2024. 9. 10.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가겨 찻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겨 찻집]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 (7) | 2024.09.16 |
---|---|
제발, 이번 한가위는 ‘되지’ 말고 ‘쇠자’ (21) | 2024.09.12 |
[가겨 찻집] 코는 ‘골’고, 오래된 참외는 ‘곯는다’ (26) | 2024.08.09 |
‘곤욕(困辱)’과 ‘곤혹(困惑)’ 사이 (3) | 2024.08.02 |
‘문화재’는 ‘유산’으로, ‘문화재청’은 ‘국가유산청’으로 바뀌었다 (25) | 2024.08.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