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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곤욕(困辱)’과 ‘곤혹(困惑)’ 사이

by 낮달2018 202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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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해 보이지만, 그 뜻의 차이가 분명하니 쓰임새가 다르다

 

이제 사람들은 개별 언론사는 물론이고, 포털의 뉴스조차 잘 보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건조하고 중립적인 텍스트 뉴스 대신 정파적 시각에 따라 ‘편을 확실히 가르고’ 시청각으로 전해주는 유튜브로 옮겨간 것이다. 언론사 뉴스와 포털의 뉴스를 골라 읽고 나서 나 역시 유튜브로 이동하는 순서를 따르곤 한다.

 

유튜브, 맞춤법·표준 발음 문제다

 

그런데 유튜브 채널을 시청할 때마다 자막에 드러나는 ‘심각한 맞춤법 오류’와 자막을 읽어주는 해설자의 발음에 적지 않은 문제가 드러나서 입맛이 쓰다. 자막이 자동 생성되는 한국어야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멀쩡한 문장에 어절 하나가 빠진 경우도 적지 않고 그걸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해설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한번은 ‘곤욕’과 ‘곤혹’을 어색하게 표현한 부분이 보여서 유념해 두었는데,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아서 찾지는 못했다. 둘 다 한자어인데, ‘곤(困)’은 ‘곤할, 지칠 곤’ 자, ‘욕(辱)’은 ‘욕될, 욕보일 욕’ 자고, ‘혹(惑)’은 ‘미혹할, 의심할 혹’ 자다.

뜻도 명확하게 나뉜다. ‘곤욕’은 ‘심한 모욕, 참기 힘든 일’의 뜻이고, ‘곤혹’은 ‘곤란할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이다. 강도로 치면 ‘곤혹’은 좀 곤란한 정도지만, 참기 힘든 모욕인 ‘곤욕’이 훨씬 세다. 곤욕은 주체가 직접 받는 실질적 구체적 피해지만, 곤혹은 사례에 따라 다르긴 해도 ‘조금 난처한 상황’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잘 드러나지 않는 피해이기 때문이다.

 

곤욕은 ‘심한 모욕’, 곤혹은 ‘어찌할 바를 모름’의 뜻

 

둘은 각각 실제 사용 예에서도 차별적인 방법으로 쓰인다. 이를테면 곤욕은 ‘치르다’, ‘겪다’와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지시하는 동사와 같이 쓰이지만, 곤혹은 주체의 내면적 상황을 뜻하는 ‘느끼다’와 함께 쓰이는 것이다.

 

명사 곤욕과 곤혹은 접미사 ‘-스럽다’를 붙여 형용사로도 쓰인다. ‘곤욕스럽다’는 “곤욕을 느끼게 하는 데가 있다”의 뜻, ‘곤혹스럽다’는 “곤혹을 느끼게 하는 점이 있다”의 뜻이다. 이 둘의 구분은 꽤 까다롭기 때문인지 여러 매체, 블로그 등에서도 다루고 있다. 동영상으로 MBC ‘우리말 나들이’를 추천한다. [MBC 우리말 나들이 바로가기]

 

비슷해 보이지만, 두 말의 뜻은 구별해 쓰는 게 필요하다. 아무도 ‘모욕’과 ‘어찌할 바를 모름’이 서로 비슷한 뜻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니까. 한자어 낱말은 우리가 무심히 쓰지만, 한자어의 훈을 살펴보면 그 세밀한 뜻도 새겨볼 수 있다.

 

흔히 ‘와중에’ 꼴로 쓰여 “일이나 사건 따위가 시끄럽고 복잡하게 벌어지는 가운데”의 뜻으로 쓰이는 낱말이 ‘와중(渦中)’이다. 이 낱말의 원뜻은 “흐르는 물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의 뜻이다. 한자 ‘와(渦)’가 ‘소용돌이’라는 뜻의 글자이기 때문이다.

 

곤욕은 ‘욕’을 기억하고, 곤혹은 ‘미혹’을 기억해 두면 두 낱말의 뜻을 분간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2024. 8.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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