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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바꼈다’는 ‘바뀌었다’, ‘복스런’은 ‘복스러운’

by 낮달2018 20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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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겨찻집] 줄임말 바르게 쓰기, 모음 축약이 불가능한 사례

사람은 누구나 말을 할 때 힘을 덜 들여서 소리를 내려 한다. 이른바 ‘발음 경제’다. 자음과 모음을 줄여서 발음하는 ‘축약’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두 개의 소리(음운)가 합쳐져서 하나의 소리(음운)가 되는 축약은 자음과 모음에서 다 일어난다.

 

예사소리인 ‘ㄱ, ㄷ, ㅂ, ㅈ’이 ‘ㅎ’을 만나 거센소리인 ‘ㅋ, ㅌ, ㅍ, ㅊ’로 바뀌는 ‘거센소리되기’가 ‘자음 축약’인데 ‘좋고[조코]’, ‘잡히다[자피다]’, ‘옳지[올치]’ 등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음 축약’은 모음 두 개가 줄어서 한 모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사이’가 ‘새’로 주는 ‘간음화’(단모음 둘이 합쳐져 단모음이 되는 것)나 ‘그리어’가 ‘그려’로 줄 때 단모음 둘이 줄어서 이중모음이 되는 게 모음 축약이다. 이 음운 현상도 물론 발음을 쉽게 하려는 데서 빚어진다.

 

자음 축약은 음절 수가 줄지는 않아도 소리가 줄어서 발음을 편하게 하는 정도지만, 모음 축약에서는 음절이 줄어서 발음하는 데 드는 노력이 확실하게 줄어서 경제적이다. 모음 축약이 일상 언어생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다. ‘가려’로 써도 되는데, 일부러 ‘가리어’라고 쓰지는 않으니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말을 줄여 쓰는 데는 비상한 능력을 보여 준다. 특히 문자로 대화하는 통신에서 비롯한 줄임말은 거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미안해’를 ‘먄해’라고 쓰고, ‘안녕하세요’를 ‘안냐세요’로 쓰는 일은 이미 고전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언어 파괴라며 우려하기도 하지만, 정작 사용자들은 이를 공식 문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들은 언어 형식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언어의 균형을 유지하는 셈이다.

 

문제는 ‘축약할 수 없는 것’을 줄여서 공식 문서에서 사용하는 경우다. 표에서는 보는 것처럼 가장 빈번히 쓰이는 모음 축약의 용례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는 문법과는 상관없이 토박이말 사용자라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사용례이기 때문이다.

 

‘바뀌다·사귀다’는 ‘바꼈다·사겼다’로 줄일 수 없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틀렸다는 인식도 없이’ 쓰는 말도 없지 않다. 학생이나 젊은이들은 ‘바뀌다’와 ‘사귀다’ 같은 동사에 과거시제 선어말 어미 ‘-었’을 붙이면서 ‘바꼈다’, ‘사겼다’와 같이 쓰는 예가 흔하다. 어간의 ‘ㅟ’에 선어말 어미 ‘-었’을 붙일 때는 이를 줄일 수 없다. 그런데도 ‘ㅟ+ㅓ’를 축약형인 ‘-ㅕ’로 쓰는 것이다.

 

· 바뀌 + 었 → 바뀌었(○) 바꼈(×)
· 사귀 + 었 → 사귀었(○) 사겼(×)

 

동사 ‘되다’의 어간 ‘되’에 과거시제 선어말 어미 ‘-었’을 붙이면 ‘됐’으로 쓸 수 있다. 그러나 ‘ㅟ’에 ‘-었’을 붙일 때는 ‘ᅟᅰᆻ’ 으로 줄지 않는다. 아마 ‘바꼈다’나 ‘사겼다’로 쓰는 사람들은 그걸 쓰면서도 이게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의심스럽게 여겼을 듯싶다.

 

‘-스럽다’는 ‘-스런’으로 줄일 수 없다

 

어근에 ‘-스럽다’라는 접미사가 붙어서 만들어지는 파생 형용사는 종류가 꽤 많다. 가증스럽다·능청스럽다·뻔뻔스럽다·사랑스럽다·어른스럽다·촌스럽다·한스럽다 등. 이러한 낱말의 관형사형 활용형인 ‘-스러운’을 ‘-스런’으로 줄일 때는 아무도 그게 어긋난 표기라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수십 년간 국어를 가르쳐온 나도 그랬을 정도다.

 

그런데 ‘아래아 한글 2018’에선 ‘사랑스런’과 ‘뻔뻔스런’으로 쓰면, 맞춤법에 맞지 않다는 뜻으로 아래 빨간 금이 그어진다. 무심히 넘어가다가 어느 날엔 그 ‘맞춤법 길잡이’를 들여다보았고, 나는 머리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맞춤법 길잡이의 설명이다.

 

‘-스럽다’, ‘-답다’ 등의 활용형은 ‘-스러운’, ‘-다운’으로 씀이 바릅니다. 위 단어를 쓰는 용언은 ‘ㅂ 불규칙 활용’을 하는 용언으로 ‘ㅂ’은 모음 어미와 만나면 ‘ㅜ’로 바뀝니다. ‘*스런’, ‘*-단’처럼 줄여 쓸 수 없습니다.

(예) 자랑스럽다 → 자랑스러운(○)/자랑스런(×)
        시끄럽다 → 시끄러운(○)/시끄런(×)
        더럽다 → 더러운(○)/더런(×)
        아름답다 → 아름다운(○)/아름단(X)

 

그렇다. 이들 낱말은 ‘ㅂ불규칙활용 형용사’다. 설명에 제시된 바와 같이 어간에 쓰인 ‘ㅂ’은 활용하면서 모음 어미 앞에서 ‘우’로 바뀐다. 따라서 ‘운’을 ‘ㄴ’으로 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시끄런’이나 ‘더런’, ‘아름단’처럼 써 보면 이게 불가능한 축약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발음 경제’에 따라 적절한 줄임말을 쓰는 것은 ‘슬기로운 언어생활’이긴 하지만, 어법에 어긋난 것조차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라고 해서 법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상행위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언어생활도 어법의 범위 안에서 ‘발음 경제’를 꾀할 수 있는 것이다.

 

 

2020. 12. 11. 낮달

 

 

'바꼈다'는 '바뀌었다', '복스런'은 '복스러운'

[가겨찻집] 줄임말 바르게 쓰기, 모음 축약이 불가능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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