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뉴라이트’ 교과서, 거듭돼도 이번엔 ‘코미디’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에서 ‘식민지근대화론’ 이념을 표방하는 보수 우익의 한 갈래인 뉴라이트(New Right) 계열의 인물들을 독립기념관과 ‘국사편찬위원회’까지 3대 역사기관의 수장으로 임명할 때부터 진작에 그 낌새를 알아챘어야 했다. 결국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춘 뉴라이트가 다시 벌이게 될 ‘역사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는 걸 말이다.
‘역사 전쟁’은 ‘과거를 해석하는 싸움’(김정인, <역사전쟁>)인데, 여기서 ‘과거’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때부터 지금에 이르는 한국의 근·현대사다. 그 고갱이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인식과 독립전쟁에 대한 관점이다. 일제에 대한 저항과 응전으로 일관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와 일제에 협력(부역)하며 영화를 누린 친일 인사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갈리는 것이다.
이 ‘역사 전쟁’은 지금까지 늘 보수 세력의 도발로 시작되었다. “독립과 친일 청산, 권위주의 정부의 등장, 산업화, 민주화 등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해석”(김정인)을 기반으로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보수 우익의 역사적 도발이 진행된 것이다.
이 역사 전쟁은 보수 세력이 시작한 것이긴 하지만, 그 상대는 진보 진영이 아니었다. 일제의 통치에 협력한 친일 세력을 엄호하면서 일제와 맞선 독립운동가들에게 날을 세우면서 시작한 보수 세력은 식민지근대화론에 기대어 기존 역사학계가 좌편향이라면서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이 한국 근현대사를 배우는 고등학교 절반이 채택한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친북·반미·반재벌’ 관점을 담고 있다”라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은 2004년이었다. 그리고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은 2005년 초 ‘교과서 포럼’을 결성하고 ‘근현대사 교과서 개정’ 운동을 시작함으로써 이른바 ‘교과서 전쟁’을 도발했다.
이전의 ‘교과서 전쟁’에서 뉴라이트는 ‘전패’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8년에는 교과서 포럼이 편찬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펴내, 식민지근대화론과 이승만 국부론, 박정희 경제성장 주역론 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근현대사 해석’은 기존 학계의 역사 인식과 상당히 달랐는데도 이들은 기존 서술이 좌파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의 도전에 대해 해방 이후 식민사관을 주체적으로 극복해 온 우리 역사학계는 굳건하고 의연하게 대응했다. 이들 친일 보수적 관점으로 일관한 뉴라이트가 보수 정당의 엄호 아래 시도한 ‘역사 전쟁’에 ‘참전’한 것은 역사학계만 이 아니라, 자녀들이 엉터리 역사를 배우기를 원하지 않은, 역사 교과서를 상식적 선택으로 응원한 시민 사회와 국민이 힘을 보탰고, 결과적으로 뉴라이트는 패배했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학계의 대응은 역사교육연대회의가 펴낸 책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안교과서> 이후 우군을 얻지 못한 보수 세력은 이른바 ‘교학사’ <한국사>로 반격을 시작했다. [관련 글 : 논란의 <한국사> 교과서, 정부의 직무유기](2013.9.6.)
그러나 전국의 2,352개 고교 중 1%도 안 되는 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지만, 이마저 학생, 교사, 학부모들의 항의에 밀려 채택을 포기하면서 채택률은 0%에 가까워졌다. 이는 진작부터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한 교육부와 새누리당, 보수 세력의 지원에도 시민들은 이 ‘역사 왜곡’ 교과서를 철저히 외면함으로써 이루어진 결과였다. [관련 글 : 다수 대중의 ‘상식적 합의’를 성찰하라](2014.1.10.)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최악의 선택에 올인했다. 이에 대학에서는 역사학 교수들이 교과서 집필을 거부하고 대학생들은 국정화 반대 대자보 붙이기 운동으로 맞섰다. 결국, 편찬 기준과 집필진조차 공개하지 않은 채 발행된 국정교과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뒤 학교 현장에 적용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을 <경향신문>은 ‘역사 교과서 전쟁’이라고 부르면서 그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신문은 ‘2022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사 공통 교육과정 시안’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과 ‘6·25 전쟁과 분단의 고착화 과정’, 그리고 ‘시민 사회의 성장과 다원화된 민주주의의 양상’이라는 세 가지 목표가 지닌 ‘불씨’에서 출발하여 이 전쟁의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 [관련 기사 : 20년 넘은 논쟁에도 끝나지 않은···‘역사교과서 전쟁’의 역사]
2024, 다시 모습을 드러낸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이미 종료된 전쟁이라고 여겼던 이 교과서 논란이 다시 지펴진 것은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새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공개되면서이다. 뉴라이트 인사를 주요한 정부 부처의 수장으로 임명하는 ‘엽기’ 인사 문제도 종료되지도 않은 시점에 다시 문제의 ‘뉴라이트 교과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학력평가원이 편찬한 고등학교 <한국사> 1, 2가 그것이다. 이 교과서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집필진 등이 과거 학술 세미나에서 뉴라이트 역사관을 교과서에 반영해 학교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것도 확인되었다.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가 학계·교육계 전문가들과 이 교과서를 집중 분석한 결과 이 교과서에 오류가 300건이 넘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관련 기사 : “한국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오류 300건 넘어”] [관련 동영상] “일제가 착취? 저질스런 왜곡” 교과서 필진 주장에 또 ‘발칵’ (2024.08.30/MBC뉴스)
다음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낸 보도자료에 보고된 ‘오류’를 분류한 제목들이다. 이 보도자료에는 관련 내용이 매우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문제 많다 – “이런 교과서가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나?”]
[사례1] 무더기 사실 오류의 사례-조선교육령 (2권 12쪽, 17쪽)
[사례2] 용어 혼용의 사례 – 조선(인), 조선 정부, 조선사, 조선어 vs. 한국(인), 대한제국 정부, 한국사, 한국어(1권 142쪽)
[사례3] 용어 혼재와 서술 오류 –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 과정(2권 68쪽)
[사례4] 식민주의 사관의 반복 – 03 조선사회의 성립과 발전(1권 33쪽)
[사례5] 개항기: 일본 긍정 편향 서술(1권 112~113쪽)
[사례6] 독립운동 진영의 분열 강조- 역사특집 김구와 김원봉(2권 71쪽)
[사례7] 식민지근대화론(2권 25쪽)
[사례8] 기독교 성향의 역사 사료 선택 (2권 34쪽, 88쪽, 112쪽)
[사례9] [역사특집] “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인” (2권 74쪽)
[사례10]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수립 의의 강조
뉴라이트 쪽에선 2년 전부터 야심 차게 준비했다고 하지만, 그 시작부터 <교학사 교과서>와 유사한 오류가 반복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게다가 이 교과서는 7차 교육과정 국정교과서(2002)를 베껴 쓰는 등의 ‘졸속 출판의 정황’도 낱낱이 드러나고 있어, 교학사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역사 배우고, 수능 치를 수 없을 수준”이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교과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민주 시민의 상식’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들이 걸어온 첫 번째 싸움은 비극이었지만, 이제 기존 교과서의 ‘재판’ 수준에 그치는 이번 교과서로 벌일 채택 과정은 한 편의 ‘코미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교학사 교과서> 때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의 승패를 결정짓는 이들은 교사들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이다.
그러잖아도 국민은 8·15를 광복절이라고 확인하기를 거부한 뉴라이트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한 ‘엽기’ 인사에, 의료 대란에 잔뜩 ‘빡쳤다’. 그간 무능과 불통의 국정을 속 썩이며 지켜보기만 했던 시민들은 이 정부가 자신들의 이념을 확산하고자 하는 의도를 이미 충분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정권만 들어서면, 멀쩡한 역사 교과서가 이리저리 재단되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언제쯤 막을 내릴 것인가. 광복 90년을 앞두고, 자행되는 이 역사에 대한 자폭 테러가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참담할 뿐이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식민지 시대’의 역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2024. 9.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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