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기념 전시 <여세동보(與世同寶)>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여기 실은 사진은 대부분 직접 찍은 사진이다. 그러나 간간이 미술관 누리집이나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사진도 섞여 있다. 직접 찍은 사진은 선명도나 색채 등에서 한계가 있으나 직접 촬영한 이미지여서 아쉬운 대로 썼다. 만약 사진이 부실하다고 느낀다면 미술관 누리집에 가거나 인터넷 검색으로 훨씬 깨끗하고 보정된 사진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에 간송미술관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얼핏 들은 게 지난 설날 연휴에 대구미술관을 다녀오면서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과천관은 물론, 삼성의 리움미술관까지 들러보면서도 정작 간송미술관을 찾지 못한 것은 들를 때마다 미술관이 내부 수리 중이거나 다른 연유로 휴관하고 있어서였다. [관련 글 : 명절 연휴 전시회 나들이, ‘렘브란트의 판화’로 눈 호강하다]
자치단체가 미술관 건립, 재단이 운영하는 모델, 대구간송미술관
더러 나들이를 함께하는 퇴직 동료의 제안으로 지난 3일에 대구 간송미술관의 개관 기념 전시회인 <여세동보(與世同寶)>를 다녀왔다. 원래 계획은 13일이었으나, 개막일에도 예약이 가능하여서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11시에 출발하여 노원동의 유명 콩국수 전문점에서 점심을 먹고 예약 1시간 전에 간송미술관에 닿았다.
대구간송미술관은 9년에 걸친 준비 끝에 대구미술관 본관 아래 산비탈에 전체 면적 8천3㎡,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6개의 전시 공간을 갖추고 문을 열었다. 대구시가 국비와 시비로 미술관을 건립했고,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여,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자치단체가 미술관을 건립하고 재단이 운영하는 모델이다. (누리집 바로가기)
대구간송미술관은 건축가 최문규 교수의 작품으로 시대적 비극을 이겨낸 굳건한 정신과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한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 선생의 숭고한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미술관 입구에 아름드리나무 기둥을 세우고 동선 곳곳에 소나무를 배치했다고 했다.
서울의 간송미술관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짧게 정기전을 여는 형태로 운영하고 대구간송미술관을 간송미술관의 유일한 상설 전시 공간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나는 혹시 간송이 대구나 경북 출신인가 싶어서 확인해 보니, 선생은 서울 토박이다.
국보와 보물 40건 97점을 직접 만나는 호사
이번 개관 기념 전시의 이름은 보화각(서울 간송미술관) 머릿돌에 새겨진 오세창(1864~1953)의 글귀로 “세상 함께 보배 삼아”라는 의미의 “여세동보(與世同寶)”다. 간송은 당대 서화계 원로였던 위창 오세창(1864~1953)의 가르침을 받아 한국미술에 관한 지식과 고미술품 감식안을 키워나가며 간송이라는 아호를 받은 전형필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설립한 수장가로, 문화유산 수집가로 성장했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의 국보와 보물 40건 97점을 모았다. 미처 오지 못한 석탑과 승탑은 아쉬움을 달래고자 그 모습을 디지털 미디어로 구현하였다고 한다. 나라 안에서 세 번째 규모를 다투는 도시로 성장했지만, 그 문화적 역량에 대한 아쉬움이 지적되던 대구시가 대구간송미술관의 건립과 더불어 새롭게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세동보는 지상 1층의 전시실 1·2·3에서 각각 “회화와 전적, 신윤복의 미인도, 훈민정음 해례본 : 소리로 지은 집” 전시로 출발한다. 전시실 1에서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회화와 서적을 소개하는데 출품 회화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이정(1554~1626)의 이금(泥金) 회화가 관람객을 맞는다.
이금 산수화는 검은색을 띠는 비단이나 종이에 금박 가루로 그린 그림이다. 이정의 화첩인 <삼청첩(三淸帖)>의 ‘삼청’은 매화, 대나무, 난초를 뜻하는데, 군자가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을 나타내는 식물을 뜻한다고 한다. 이어지는 것은 겸재 정선(1676~1759)과 심사정(1707~1769) 산수화다. 특히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맨눈으로 만나는 것은 쉽게 겪을 수 없는 호사다.
누구에게나 그림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작품의 원본을 보는 건 예사롭지 않은 경험이다. 김홍도(1745~?)와 김득신(1754~1822), 신윤복(1758~?)의 눈에 익은 인물화와 풍속화의 원본을 만나는 것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전적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음운서로 한자음을 훈민정음으로 표기한 <동국정운>(1447)과 1403년에 만든 금속활자 ‘계미자’로 인쇄한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이 있다. 이 책은 <쿠텐베르크 42행 성경>보다 약 30년 먼저 만들어졌다.
전시실 2는 신윤복의 <미인도> 1점을 단독 공간에서 선보인다. 우리가 흔히 그림으로 보았던 이 그림은 화려하지만, 원본은 그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림 뒤쪽에는 제화시(題畫詩)와 인장(印章)의 시구도 따로 감상할 수 있다. 제화시 시구 ‘흉중장유사시춘(胸中長有四時春 : 가슴속은 언제나 사시사철 봄이구나)’의 울림도 예사롭지 않다.
혜원의 <미인도>와 무가지보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나는 시간
잇닿은 전시실 3에선 <훈민정음 해례본> : 소리로 지은 집> 전시가 진행된다.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서’로 시작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낭송한 소리와 한글에 얽힌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국보로 그 값을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지하의 전시실 4에서는 서예와 도자, 불교미술을 선보인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의 불교미술과 도자기, 서예 작품이 펼쳐진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난초 그림을 시작으로 그의 필적 ‘추사체’가 아름다운 먹의 향연으로 인도한다.
이어서 청자와 분청사기 백자가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와 빛깔로 관객을 맞는다. 간송이 일본 상인으로부터 당시 서울의 기와집 20채 값이었던 2만에 사들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경매에 나온 백자로 1만 4천5백80원에 낙찰받은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은 그 존재만으로도 놀랍다.
동경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존 개스비(Jhon Gadsby)가 소장품을 일괄 처분하고 돌아간다는 소식에 간송은 바로 동경으로 가서 이른바 ‘개스비 컬렉션’으로 알려진 고려자기 20점을 인수한다. 이 가운데 9점이 대구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전시실의 마지막은 삼국시대 불상인 국보 계미명삼존불상과 고려시대의 금동삼존불과 불감(佛龕)이, 간송이 수집한 두 석탑 부도탑 모형을 배경으로 갈무리된다.
마지막 전시실 5에서는 38미터에 달하는 반원형의 스크린에 조선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이 움직인다. 흘러가는 하루, 변화무쌍한 날씨 속 인간의 삶과 자연의 모습을 담은 미디어아트 동영상이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서 스크린에 흘러가는 영상을 바라보며 오늘의 관람을 복기해 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누릴 수 있다.
5전시실을 나오면 통창 너머로 연못에 현대식 정자가 있는 풍경이 나타난다. 건축가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풍경은 깊은 인상을 남았다. 1시 반에 입장하여 관람을 마치니 4시 반이 가까웠다. 1층의 간송아트숍에서 나는 미인도 엽서 1장과 연소답청 스티커 1장을 샀고, 미술관 측에서 무료로 나누어주는 카드 두 장도 받았다.
1층 강당에서 정규 전시 해설이 있다고 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우리는 서둘러 미술관을 떠났다. 추석 연휴에 하루쯤 짬을 낼 수만 있다면 나는 가족들과 함께 한 번 더 이 전시를 찾아볼 작정이다. 설사 그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괜찮다. 대구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1시간 안에 찾을 수 있는 이웃 동네이니 말이다. 문화의 ‘접근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2024. 9. 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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