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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바다 이미지, 못내 그려도 쉬 표현할 수 없는

by 낮달2018 2024.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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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바다, 여전히 멀고 아련하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영덕의 바닷가. 해변 카페에서 내려다본 바다. 무어 하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풍경이지만, 산뜻한 푸른 이미지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다.
▲ 해변 카페 아래 회백색의 바위가 파도를 막고 있는 바닷가. 오른쪽에 국립해양청소년센터가 보인다.

경상북도 내륙에서 태어난 내가 난생처음으로 바다를 만난 것은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66년, 5·6학년 언니들을 따라간 수학여행에서이었다. 조그만 시골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운영하는 데는 일정 수 이상의 학생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그 몫을 하기 위해 ‘가불’로 수학여행을 떠난 하급생들이었다.

 

초등 4학년 때 처음 만난 부산 앞바다

 

경주를 거쳐 부산에 갔는데, 아마 해운대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철썩이며 해변으로 밀려오는 바다를 모두 난생처음 만나면서 경쟁하듯 바닷물을 찍어서 혀끝에 대어 보았다. 짤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입안에 느껴지는 짠맛을 서둘러 정리하고, 과장된 몸짓으로 그럴 줄 알았어,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었다.

 

바다를 다시 만난 건 중학교 시절을 건너뛰어 고등학교 수학여행(1973) 때였다. 대구에서 강릉까지는 열차로, 거기서부터 설악산까지는 전세 버스로 움직였다. 바닷가를 따라가면서 더벅머리 머슴애들은 가끔 오른편에 바다가 나타날 때마다 환성을 질렀고, 거대한 ‘38선’ 입간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동해대로에 있는 38선 휴게소. 1973년 수학여행 때는 빗돌 대신 대형 나무 입간판이 서 있었다.

사진을 오늘날처럼 쉽게 찍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어서 우리는 바다를 필름에 담는 건 언감생심, 그 풍경을 마음에 갈무리하는 데 급급했었다. 고교를 졸업한 뒤, 여자 친구와 함께 찾았던 포항 죽도 해수욕장에서 만난 바다는 별로 깨끗하지 않아 실망스러웠었다.

 

군 복무 시절에 만난 서해 바다

 

처음으로 바닷물에 들어가게 된 건 군 복무 시절(1978)이다. 팔자 사납게 공수부대에 차출되어 갔는데, 해마다 치러지는 해상침투 훈련에서였다. 서해안의 한적한 바닷가에 캠프를 치고 대대별로 2주간 이루어지는 훈련은 사실상 수영 교육이었다. 수영 수준에 따라 진행되는 이 교육은 쉬는 시간을 빼고 하루 8시간 내내 바닷물에 떠 있어야 하는 고된 훈련이었다.

 

수영에 비교적 익숙했던 나는 인명구조반 아래인 A조 판정을 받아 안면도 근처 훈련장에서 그야말로 매일 ‘박박 기어야’ 했다. 입수 전에 이루어지는 피티(PT) 체조에서 골병이 든 병사들은 조교들이 탄 보트 주변을, 지시하는 영법에 따라 헤엄쳤고, 가끔 보트전복훈련도 수행해야 했다.

▲ 특전사 9여단의 해상침투훈련. 요즘은 이런 훈련도 하나 보다. ⓒ 위키백과

살인적인 더위와 훈련량으로 살이 빠져서 초췌해진 병사들에게 유일한 낙은 식사 시간이었다. 취사반은 끼니마다 뜨거운 국과 함께 냉국을 제공했고, 병사들은 그걸 먹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1978년 여름의 훈련에서 나는 며칠 만에 외이도염에 걸렸고, 훈련을 면제받았다.

 

의무반에 가서 타 온 약으로 버티는데, 통증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밤이면 중대 막사에 불침번을 서야 했는데,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통증을 다스리면서 한 시간을 버티는데 위안이 되어준 게 바다였다. 어둠 속에 내려다보는 바다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가 마치 불빛처럼 아스라했고, 파도 뒤척이는 소리에 통증을 묻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가.

 

고된 훈련과 외이도염으로 시달린 탓에 한동안 바다는 쳐다보기도 싫었었다. 반드시 그래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후 나는 굳이 바닷물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울진 바닷가에 데려가서 같이 물에 들어간 걸 빼면.

▲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 있는 장사해수욕장. 뜨거운 모래 위로 파랗게 빛나는 하늘과 물빛이 싱그럽다.
▲ 영덕의 해변 카페 아래 바닷가. 저 멀리 수평선을 경계로 하늘과 바다가 다시 나뉘어진다.
▲ 해변 카페에서 찍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음료. 카페 안에서도 바깥처럼 바다를 촬영할 수 있다.
▲ 쉬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파도 속에 잠잠해지던 바다는 이내 다시 크게 뒤척이며 바다를 증명한다.
▲ 바다 안쪽에 튀어나온 바위들. 이들이 파도를 막는 방파제 구실을 한다. 주변에 해파리떼가 아주 많았다.

30대 후반에 승용차를 끌게 되면서부터 바닷가에 가는 일이 어렵지 않아졌다. 안동에 살 때면 아이들을 데리고 울진과 영덕을 드나들었고, 구미에 와서는 포항이나 영덕을 찾아 회나 대게를 먹기도 한다. 부산에도 가끔 갔고, 거제도에서는 벗들과 함께 며칠 묵으면서 남해를 즐기기도 했다. 전북 부안과 군산 등지에서는 제대 이후에 처음으로 서해와 재회하기도 했다.

 

제대로 찍은 바다 사진 한 장 없다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20년이 가깝다. 그러나 애당초 나는 사진으로 무슨 작품을 찍어보겠다는 욕심 따위는 내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주어진 조건에 맞는 사진을 힘들이지 않고 찍는 데 주력했을 뿐, 자신이 그런 조건을 뛰어넘는 사진을 만들 만한 감각도 능력도 갖추지 못했음을 일찌감치 인정한 결과다. 그래서일까. 어떻게 그래도 한 번 더 들여다볼 만한 바다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관련 글 : 캔디(K-10D)’를 기다리며]

 

지난 24일, ‘시드니 대신 국립춘천박물관’을 다녀와 하루를 쉰 다음, 가족들과 함께 영덕을 찾았다. 영덕과 포항, 두 선택지 중에 우리는 영덕을 뽑았다. 경부고속도로와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하는 포항과 달리 영덕은 경부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 그리고 상주·영덕 고속도로를 타야 했다.

 

7월 말, 말하자면 여름 휴가철이다. 나는 내륙에서 접근성이 떨어진 영덕 쪽이 그나마 조용하리라고 여겼는데, 이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상주·영덕 고속도로도 한산했고, 영덕의 어항 강구항도 조용했다. 우리는 어시장에서 우럭 등 횟거리를 사서 근처 식당에서 먹었다.

▲ 해변의 바윗돌이 만든 소로 흘러들어 용솟음치는 파도. 어디에서든 바다는 자신의 위대성을 끊임없이 확인해 준다.
▲ 마치 가을하늘을 연상케 하는 하늘의 하얀 구름 사이로 갈매기들이 자유롭게 비행한다. 갈매기는 역광 아래 까맣게 나타난다.
▲ 영덕 해파랑 공원의 테트라포트. 2021년 8월에 들렀을 때 찍은 사진이다.

조용한 바닷가를 물었더니 식당 주인은 근처 바닷가는 다 조용하다, 장사해수욕장 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평일이라서 그러리라고 짐작했지만, 어시장 쪽도 한산해서 그게 불경기라는 걸 짐작만 하고 말았다. 장사해수욕장에 갔는데, 볕이 너무 뜨거워 백사장 안쪽 곰솔 숲에서 바람만 쐬다가 돌아왔다.

 

영덕의 바닷가 카페에서 찍은 바다 이미지

 

돌아오는 길에 영덕 쪽에 있는 바닷가 카페를 찾았다. 어디 없이 목 좋은 데에는 자본을 들여 세운 카페엔 사람이 넘친다. 바다 쪽으로 낸 대형 유리창으로 바다를 내다볼 수 있게 만든 이런 카페가 해변을 따라 이어지고, 그런 가게마다 자동차를 타고 온 손님으로 붐비는 것이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아이들을 따라 카페 아래쪽 해변으로 나갔다. 물론 특별한 풍경이어서는 아니다. 곰솔이 몇 그루 서 있고, 바위가 드문드문 펼쳐진 해변뿐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그간 바닷가에 가서도 제대로 바다를 담으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 비어 있는 바다 한가운데에 고깃배 한 척이 조업하고 있다. 2021년 9월.
▲ 강구항 인근의 도롯가에 바닷바람과 햇빛에 과메기를 말리고 있다. 2007년 12월.
▲ 강구항 근처 바다에 갈매기들이 먹이를 찾아 수면 위를 날고 있다. 망원렌즈에 갈매기가 잡혔다. 2007년 12월.

돌아와서 그간 다녔던 바닷가 사진을 살펴보았지만, 마땅히 선택할 만한 게 없었다. 2007년 12월과 2011년 2월. 그리고 2021년 9월의 영덕 앞바다, 2011년 2월의 부안 앞바다를 찍은 사진 몇 장을 골랐다. 굳이 골랐다고 할 필요도 없을 만큼 평범한 사진인데, 그저 티끌 없이 깨끗한 풍경이 좋아서다.

 

만약 내가 바닷가에 산다면 계절별로, 또는 시간별로 바다를 꾸준히 찍어볼 엄두를 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대상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단순히 셔터를 누르는 행위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한 과정이 담기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상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전제로 촬영이 이루어지면 좀 더 살아 있는 바다가 담길 수 있을까. 

 

 

2024. 7.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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