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

[오늘] 시인 신동엽, 통일 열망 품은 채 서른아홉에 지다

by 낮달2018 2024. 4. 6.
728x90

1969년 4월 7일, 신동엽 시인 간암으로 영면

▲ 1970년 4월 부여읍 동남리 백마강 기슭에 시 '산에 언덕에'를 새긴 신동엽 시비가 세워졌다.

196947일은 김수영과 함께 1960년대를 가장 뜨겁게 살았던 시인 신동엽(申東曄, 1930~1969)이 간암으로 서울 동선동 자택에서 서른아홉의 삶을 마감한 날이다.

 

“‘1950년대 모더니즘을 거치지 않고, 토착 정서에 역사의식을 담은 민족적 리얼리즘을 추구했고 동학농민전쟁을 소재로 한 <금강(錦江)>과 같은 이야기 시로 독특한 시세계를 전개해 온 시인은 40년을 채 살지 못하고 서둘러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유명한 시 껍데기는 가라가 고교 교과서에도 실렸지만, 그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동명의 코미디언으로 자주 오인된다. 하긴 시가 읽히는 대신 텔레비전이 소비되는 시대, 살아 있는 코미디언을 두고 거의 반세기 전에 떠난 시인을 세상이 어찌 기억하랴.

 

60년대 참여시시대 마감

 

19604·19혁명 이후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던 분단 체제 극복에 대한 열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신동엽과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에 대한 시적 관심을 강하게 드러낸 김수영(1921~1968) 시인은 60년대 참여시를 이끈 두 주역이었다. 신동엽이 1년 전(1968)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수영을 뒤따랐으니 참여시1960년대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신동엽은 부여 사람이다. 1959년 장시(長詩)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면서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63년 첫 시집 <아사녀(阿斯女)>를 펴냈다. (여기 실린 시 아사녀는 신동엽의 시 중 4·19혁명의 숨결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1967년 신구문화사에서 간행한 <52인 시집>에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를 비롯하여 ‘3’, ‘원추리7편의 시를 실었다. 같은 해에 장편 서사시 금강(錦江)’을 발표하면서 그는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의 민족적 리얼리즘은 과거의 역사를 소환하지만, 그것은 화석이 된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과거를 통하여 현재 상황을 원근법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역사의식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04·19혁명은 신동엽의 역사의식에 강렬하게 각인된 기억이었다. 1957년 결혼한 부인 인명선(짚풀문화박물관장)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그날, 아침에 나가더니 온종일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에 들어왔을 때 그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고 눈은 청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그날 역사의 현장 한복판에서 민주주의의 함성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시인은 새롭게 태어난 것인지 모른다.

 

그의 시 껍데기는 가라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는 바로 4월혁명의 기억을 통해 구속과 억압의 역사를 성찰하고 분단 현실의 극복을 노래한 것이다. 뒷날 그가 4·19 시인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러한 이력 때문이다.

▲ 신동엽의 책들. 모두 사후에 나왔다. <전집>(1980), <금강>, <누가 하늘을&hellip;>(1989)

  혁명의 기억과 역사와 현실의 성찰

 

신동엽의 시 산에 언덕에가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1989년이다. 나는 1994년 복직하여 경북 북부지역의 시골 중학교에서 그 시를 가르쳤다. 이어 얼마 뒤에는 분단 극복의 염원과 확신을 노래한 봄은이 실렸고, 현행 고교 문학 교과서에는 껍데기는 가라외에도 산에 언덕에’, ‘종로 5등이 실려 있다. [관련 글 : 새해 아침, ‘신동엽을 다시 읽으며]

 

종로 5는 장편 서사시 <금강>(서화, 26장의 본담, 후화의 3단 구성)후화(後話)1’을 변형한 작품인데 나는 이태 전에 이 시를 마지막으로 가르치고 학교를 떠나왔다. <금강>은 갑오년의 동학혁명을 주제로 이 땅의 근대 민중사를 엮어낸 서사시다.

 

갑오농민전쟁을 본담(本譚)으로 하는 이 이야기 시의 마지막 에필로그 격으로 이 시가 쓰인 이유는 자명하다. 갑오년의 좌절과 패배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시인은 동대문의 위치를 묻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서 아프게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  전문 텍스트로 읽기]

  

 화자가 종로 5가에서 만난 한 소년의 모습을 통하여 역사적 시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은 당대 민중들의 비극적인 모습이다. 19세기에 밀려온 외세, 제국주의의 침탈 대신에 1960년대의 한국 사회는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해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

 

시인은 거대한 외국 자본에 의한 근대화와 산업화로 농촌이 피폐해지면서 농민들이 도시 노동자로 전락하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화자가 인식한 당대의 비극적 현실을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으로 비유하면서 화자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 시는 종로 5가 신호등 앞에서 동대문을 묻는 한 소년을 만난 것을 계기로 화자는 당대 민중들의 운명을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해체된 농촌 현실과 농민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소년에 대해 는 정서적 일체감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낀다.

 

시인은 소년의 모습을 통해 우리 민중의 비참한 현실이 농민의 희생과 농촌의 붕괴를 담보로 이루어진 산업화 정책의 결과임을 고발한다. 근대화의 모순과 노동자들의 비애를 통해서 시인은 오늘의 역사적 의미를 성찰하고 있는 셈이다.

 

사후에도 소환되고 있는 신동엽

 

신동엽은 이틀 후인 49, 경기도 파주군 금촌읍 월롱산 기슭에 묻혔다가 2003, 고향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백제 왕릉 앞산으로 이전했다. 이듬해 418일 고향인 부여읍 동남리 백제교 옆 백마강 기슭에 산에 언덕에를 새긴 시비가 세워졌다.

 

신동엽의 문학은 사후에 뒷사람들에게 끊이지 않고 소환되었다. 1975<신동엽 시 전집>이 출간되었지만, 박정희 군사정권은 이 책을 긴급조치 9호 위반이라는 이유로 판매를 금지했다. 이 책은 박정희 사후 1980년에 재출간되었다.

▲ 1982년에 복원된 시인이 자라고 신혼생활을 한 생가. 유족은 2003년 이 집을 부여군에 기증하였다.
▲ 충남 부여군이 기증된 신동엽의 생가 뒤편에 2013년에 세운 신동엽문학관.

 1979년에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되고 서울YMCA에서 출판기념회를 겸한 10주기 행사가 열렸다. 7월에는 일본에서 시집이 번역·간행되었다.

 

1982년에는 가족과 창작과비평사(창비)가 공동으로 신동엽 창작기금’(2002년 신동엽창작상, 2012년부터 신동엽문학상으로 변경)을 만들어 그해에 활동이 뛰어난 작가에게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금을 주기 시작했다. 신동엽의 문학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작가라는 조건 외에 시, 소설의 구분 없이 주어지는 이 상을 받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유족들은 1982년에 신동엽이 자라고 신혼생활을 한 생가가 복원하여 2003년에 이 집을 부여군에 기증했다. 이에 부여군은 201353, 생가 뒤편에 총면적 800의 신동엽문학관을 개관하였다.

 

1990년에는 모교인 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 교정에 신동엽 시비가 세워졌다. 이 외에도 부여초등학교(1999)와 전주교육대학교(2001) 교정에 각각 그의 시비가 세워져 현재 그의 시비는 모두 네 곳에 이른다.

▲ 가극 <금강>은 2016년에 성남문화재단이 뮤지컬로 자체 제작한 <금강, 1894>로 공연되었다.

1994,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가극 <금강>이 문호근 연출로 초연되었다. 이후 이 가극은 평양에서도 공연(2005)되는 등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016년에는 성남문화재단이 현대적 장르인 뮤지컬로 다시 자체 제작한 <금강, 1894>로 공연되기도 했다.

 

2003년에 신동엽 시인에게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4월혁명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모든 쇠붙이를 부정하며 분단 극복의 비원을 노래한 시인에게 마침내 관에서 훈장을 수여하기에 이른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 ,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시인이 부르짖은 1967년으로부터 꼭 반세기가 흘렀다. 그러나 남북이 화해와 협력을 모색한 것도 한때,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재개된 대립과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언제쯤 그가 바란 대로 아사달 아사녀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 맞절할수 있을까. 언제쯤일까.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은 그날은.

 

2017. 4. 5.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