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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새해 아침, ‘신동엽’을 다시 읽으며

by 낮달2018 2020.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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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창작과비평사, 1979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신동엽 전집>을 산 게 1989년께였다. 같은 출판사에서 낸 그의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산 것도 그 어름이었을 게다. 지금 생각해도 참 바빴던 때였다. 날마다 회의였고, 늘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때였다. 에둘러 왔는데, 그의 시를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다.

 

89년에 학교를 떠났다가 94년에 경북 북부의 궁벽한 시골 중학교로 복직해 3학년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다가 신동엽을 다시 만났다. 교과서에 그의 아름다운 시 ‘산에 언덕에’가 실려 있었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 전공 서적에서 북으로 간 문인들의 이름을 “박○원(박태원), 임○(임화), 정○용(정지용)” 등과 같은 복자(伏字)로 배웠던 터여서 교과서에 박힌 그의 이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동이 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동엽의 시비(詩碑)에 새겨진 이 시는 그의 문학 정신이 잘 승화된 서정시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땅에서 선량하게 살다가 죽어서도 이 땅의 산야에 감도는 ‘그리운 그’(민중)의 넋들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 부여 나성터 금강(백마강) 기슭에 서 있는 신동엽 시비.

신경림은 <시인을 찾아서>에서 87년 대선을 전후해서 반공주의자들의 표를 의식, 급조됐다는 비석, ‘반공 애국지사 추모비’가 바로 옆에 높다랗게 서서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비는 시원한 주위의 풍광과는 다르게 고단해 보인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시인의 이름을 두고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녀석들은 그때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던, 같은 이름을 가진 젊은 코미디언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 희극인이 한자도 시인과 같은 글자를 쓰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싶어서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맨 위에 커다랗게 소개되는 건 예의 코미디언이고, 시인은 그 아래 ‘인물’란에 조그맣게 떠 있을 뿐이다. 그게 현실이다.

 

몇 해 전, 다시 중학교에 돌아왔더니 이번에는 분단 극복의 염원과 확신을 노래한 ‘봄은’이 실려 있다. 마침 북핵 문제와 6자회담 따위가 어지러울 때여서 아이들과 통일에 관해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에게 여전히 통일은 ‘강 건너 불’이다. ‘이대로 사는 게 좋다.’고 아이들은 천연덕스럽게 되뇌는 것이다.

‘봄은’은 분단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통일에 대한 주체적 의지 및 염원을 다룬 시다. 시인은 ‘분단의 현실과 냉전 시대’를 상징하는 ‘겨울’을 넘어 ‘진정한 통일과 화해의 시대’를 뜻하는 ‘봄’을 기다리는 우리 자신을 통일 주체로 바라보고 있다.

 

맥락을 읽으면서 문답으로 이 작품을 가르쳤다. 통일에 대한 무관심하고 이기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아이들은 외세나 주변 강대국에 대해서는 비교적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인식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수월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긴 했지만, 녀석들이 ‘통일’을 얼마나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는지는 자신이 없다.

 

얼마 전에 우연히 서가에 꽂힌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가 눈에 아프게 들어왔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옛 동무를 만난 듯해 반가웠는데, 정작 시를 읽고 나서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동엽의 시의 바탕은 아름다운 ‘서정성’과 준열한 ‘역사성’이다. 그는 험난한 현대사의 구비를 넘어왔지만, 정작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은 한 번도 자유와 평화를 누리거나, 마음껏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면서 세상을 향해 준엄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1989)

‘먹구름이 덮인 하늘’과 ‘지붕 덮은 쇠항아리’가 무엇을 의미하며, 이와 대립하는 ‘맑은 하늘’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는 스스로 명백하다. 연민(憐憫)으로, 차마 삼가며,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리는 이만이 그 구원의 하늘을 볼 수 있으리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신동엽 시인이 세상을 뜬 지 30년이 훨씬 지났다. 세상엔 ‘하늘을 본 사람’으로 넘친다. 곡절 많은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 왔지만, 여전히 분단의 상처는 시퍼렇고 외세의 발호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지금 반쪽으로 얻은 이 혼곤한 자유와 풍요가 세계의 전부인 양 으스대는 천박한 자본과 수구(守舊)의 칼바람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다.

 

참으로 ‘티 없이 맑은 영원과 구원의 하늘’, 진정, 당신은 보았는가.

 

 

2007. 2.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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