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돌 맞는 ‘어린이날’과 ‘1923 어린이 선언’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1922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이 조직한 천도교 소년회에서 창립 1주년을 기념하여 제1회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십 년 후 조선을 려(廬)하라」는 전단을 시내에 배포하고 ‘어린이의 날’의 취지를 거리에서 선전했다. [관련 글 : ‘어린이’ 해방의 기수 방정환은 ‘사회주의자’였다]
어린이날 행사, 어린이 선언 100돌
이듬해(1923) 5월 1일에 ‘어린이날’ 기념식을 거행하고 조선소년운동협회 주최의 제1회 ‘어린이날’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날 ‘어른에게 드리는 글’, ‘어린 동무에게 주는 말’, ‘어린이날의 약속’이란 전단 12만 장이 배포되었는데, 이 글들이 뒷날 ‘어린이 해방 선언’이라 불리게 되었다. [관련 글 : ‘어린이헌장’(1957)에서 ‘아동권리헌장’(2016)까지]
‘어린이날’의 제정은 1922년이고, 첫 행사는 1923년에 치러졌으니, 올해는 어린이날 제정 101주년, 어린이날 행사와 어린이 해방 선언은 각각 100돌이 되는 것이다. 1년 후인 1924년에야 국제연맹 총회에서 결정한 ‘제네바 아동 권리 선언’이 있었으니, 우리나라의 어린이 해방 선언은 그보다 1년 앞선 선구적 선언으로 평가받는다.
서구에서의 아동 권리 사상은 1922년에 애글란타인 젭(Eglantyne Jebb)이 아동 권리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the Child)을 주창함으로써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1924년, 국제연맹은 5개 조로 된 이 선언문을 ‘아동 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Declaration of Geneva)’으로 채택하였다.
‘어린이’라는 낱말이 만들어지고 ‘어린이날’이 제정된 것은 전통사회에서 천대받았던 어린이들의 인권을 환기하는 등 어린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패러다임을 바꾸는 실마리가 되었다. ‘어린이’라는 존칭어는 그냥 ‘아이’로 던져져 있던 아동을 ‘젊은이’나 ‘늙은이’와 나란히 독자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혁명적 언어’였기 때문이다.
방정환, 1921년 ‘어린이’라는 낱말을 공식화하여 ‘독립적인 존재’로 불리기 시작함
그러나 소파 방정환이 처음 이 말을 만들어 쓰기 전까지 ‘어리다’는 낱말의 뜻은 세종의 훈민정음 어지(御旨)에 ‘어린 백성’으로 쓰인 것처럼 ‘어리석다’라는 뜻이었다. ‘어리다’의 관형사형에 ‘사람’을 뜻하는 의존 명사 ‘이’가 붙은 ‘어린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인데 이때부터 ‘어리다’의 뜻이 지금과 같이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어린이’를 소파 방정환이 만들어 썼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개화기를 거치면서 일본에서 들어온 ‘아동(兒童)’과 ‘소년’이라는 낱말이 주로 쓰였는데, 일제의 식민 지배하 조선 민족의 희망을 어린이에게서 찾았던 소파는 1921년 어린아이를 대접해 부르는 말로 ‘어린이’라는 단어를 공식화한 것이다.
그로써 ‘어린이’는 ‘젊은이’나 ‘늙은이’와 나란히 쓰이는 독자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아이’나 ‘애’로 지칭되고, ‘얘, 쟤’로 통칭하는 미성숙, 의존적 존재에서 독립적인 인격을 갖춘 존재로 불리기 시작함으로써 한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우해야 하는가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동사와 형용사의 관형사형에 의존 명사 ‘이’가 붙어서 쓰이다가 명사로 굳어져서 사전의 표제어가 된 말은 꽤 된다. 나이를 기준으로 한 ‘어린이·젊은이·늙은이’ 말고도 저자를 이르는 ‘지은이’, 편자(編者)를 가리키는 ‘엮은이’, 번역자를 이르는 ‘옮긴이’, 발행인을 가리키는 ‘펴낸이’, 인쇄인을 이르는 ‘박은이’ 등이 그것이다.
사람을 뜻하는 의존 명사 ‘이’는 우리 입말에서 매우 생산적으로 쓰인 말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누구를 지칭할 때 ‘이이, 그이, 저이’를 자주 썼다. 이를테면 “어제 집에 온 이가 네 친구냐?”처럼 쓰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 사람들은 ‘이’ 대신 ‘사람’을 더 쉽게 쓴다.
그러나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낙화’)에서 ‘가는 이’가 아니라 ‘가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재미없는가 말이다.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린이’가 되면서 그들은 우리 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 편입했다. 법률에서는 만 13세 미만을 어린이로 이르는데, 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 상한이다. 중학생이 되면 13살이 되지 않아도 더는 ‘어린이’라 부르지 않으니 말이다.
‘어린이는 민족의 미래’임을 천명한 ‘1923년 어린이 선언’
‘1923년 어린이 선언문’은 어린이를 어른과 똑같이 독립된 인격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어린이는 민족의 미래’임을 강조하면서 ‘어른들에게’와 ‘어린 동무들에게’로 구분되어 발표되었다. 어른들에게는 어린이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사랑으로 그들을 바라볼 것을, 어린이들에게는 스스로 지켜야 할 생활 수칙을 위주로 자존심과 포부를 키워나갈 것을 당부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100년 뒤의 사람들이 읽어봐도 그 함의가 놀랍기만 하니, 그 시절에 이 선언은 그것 자체로 혁명이었으리라.
올 어린이날은 전국에 큰비가 내린다고 하니 이날을 기다려온 어린이들은 궂은 날씨에 상심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날씨와는 상관없이 어린이들이 다시 미래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다시 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윤석중의 노랫말에다 윤극영이 곡을 쓴 ‘어린이날 노래’를 가만가만 불러본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2023. 5. 4.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길 위에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월 광주의 진실’은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나 (9) | 2024.05.21 |
---|---|
어버이날, 부모 안의 ‘부처’를 생각한다 (4) | 2024.05.08 |
‘세월호’ 비극 10년, 진실을 외면한 야만의 시간 (38) | 2024.04.16 |
애림녹화(愛林綠化), 식목일 부역의 추억 (3) | 2024.04.06 |
4·3 일흔 돌(2018), ‘변방의 역사’에서 ‘우리의 역사’로 (11) | 2024.04.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