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부 ‘오늘’] 1957년 5월 5일,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제정·공포
5월 5일은 94회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는 1921년 소파 방정환(1899~1931)이 처음 쓴 이래 아동을 가리키는 낱말이 되었다. 어린이날은 소파가 조직한 천도교 소년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하여 ‘십 년 후 조선을 려(廬)하라’는 전단을 시내에 배포하고 ‘어린이의 날’의 취지를 거리에서 선전하면서 처음 제정되었다. [관련 글 : ‘어린이’ 해방의 기수 방정환은 ‘사회주의자’였다]
이듬해(1923) 5월 1일, ‘어린이날’ 기념식을 거행하고 조선소년운동협회 주최의 제1회 ‘어린이날’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날 ‘어른에게 드리는 글’, ‘어린 동무에게 주는 말’, ‘어린이날의 약속’이란 전단 12만 장이 배포되었다. 이때 배포된 문건을 뒷날 ‘어린이 해방 선언’이라 부르게 된다.
*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어린이날을 1923년 5월 1일, 노동절에 방정환 등 일본 유학생들이 동경에서 ‘색동회’ 창립을 위한 회합을 열면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첫 행사를 치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어린이날은 5월 첫째 월요일로 변경되었다가 일제에 의해 폐지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어린이날을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결정한 것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건국준비위원회다. 법률(아동복리법)로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규정하게 된 것은 1961년이었다.
1957년 어린이헌장, 사회적 책임과 의무 명시
한편 1957년 5월 5일, 제35회 어린이날에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제정·공포되었다. 1924년 국제연맹에서 ‘아동권리헌장’을 채택한 지 33년 만이었다. 어린이헌장은 한국동화작가협의회에서 성문화해 처음 발표한 뒤 정부와 심의·보완한 뒤 보건사회부에서 선포했다.
모두 9개 항목으로 구성된 이 헌장은 어린이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을 규정하고 있으나,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이헌장은 1988년 보건복지부에서 개정하여 조항이 11개 항으로 늘었다. [어린이헌장 참조]
2016년 ‘아동권리헌장’ 선포
어저께엔 보건복지부가 어린이날을 맞아 ‘아동의 권리와 어른들의 책임’을 규정한 ‘아동권리헌장’ 선포식을 열었다. 정부가 1957년에 제정한 어린이헌장을 1988년에 개정한 지 28년 만이다.
전문과 9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아동권리헌장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조항들을 함축적으로 모아 간결하게 정리하였고, 아동들이 학대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놀 권리, 표현의 자유와 참여, 상상과 도전, 창의적 활동 등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어린이헌장과 아동권리헌장은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1957년 제정된 어린이헌장은 주로 어린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 어른(사회)들이 지녀야 할 책임과 의무를 규정한 것이었다.
조항들은 모두 ‘어린이는’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대부분 ‘교육하여야 한다’, ‘키워야 한다’, ‘마련해 주어야 한다’, ‘구출하여야 한다’ 등으로 진술되는데 이 행위의 주체는 물론 어른(사회)이다.
어린이헌장은 1988년 개정되면서 서술이 대폭 바뀐다. 제정 헌장의 조항들은 ‘어린이는’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목적어로 쓰였다. 그러나 개정 헌장에서는 ‘어린이는’은 실제 주어로 쓰이고 있다. 비록 그것을 보장하는 주체는 사회일 수밖에 없지만 사실상 이는 ‘어린이의 권리’를 명문화한 것이었다.
아동권리헌장, 아동의 권리를 직접 명시
이번에 선포한 ‘아동권리헌장’도 내용적으로 아동의 권리를 직접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아동 권리 헌장은 ‘아동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알고 지킬 수 있고 어른도 아동들의 권리를 이해하고 존중하여야 한다는 약속’(복지부 보도자료)이다.
아동권리헌장은 모든 조항을 ‘아동은…권리가 있다’는 형식으로 맺는다. 헌장이 제시하고 있는 권리는 보살핌을 받을 권리, 보호받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지원받을 권리, 알 권리, 교육받을 권리, 참여할 권리, 존중받을 권리 등이다.
아동권리헌장의 조항들에는 시대의 진전과 의식의 진보가 충분히 담겼다. 1957년에 처음 제정된 어린이헌장에서 1988년 개정을 거쳐 2016년 아동권리헌장에 이르기까지 소요된 59년의 세월이 응축된 것이라고 해야 할까.
아동권리헌장의 제정 선포를 환영하지만 2016년의 한국 어린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부모로부터 학대받다 숨진 아이들 문제로 우리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게 그 단적인 예다.
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다시 OECD 꼴찌라고 한다.
평균 100점, 표준편차 10을 기준으로 했을 때 우리나라의 표준점수는 82로 1위인 스페인(118)보다 30점이나 낮다. 그래서 22개 대상 국가 가운데 22위라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학대받는 아동들은 2014년엔 1만 명이 넘었으며 실종 아동도 3만6천 명(2015), 아동 급식 대상자 40여만 명(2014),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빈곤 아동의 수는 최대 68만여 명(2011)이라고 한다. [기사 참조]
아동권리헌장이 가리키고 있는 아동의 권리가 단순히 선언적 수준이 아니라, 실제 삶과 현실에서 제대로 지켜지기 위해선 얼마만 한 시간이 필요할까. 그나마 어린이날을 맞이하면서야 어린이들의 현실을 돌아보게 되는 세상은 또 얼마나 무심한 것인가.
2016. 5. 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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