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문화재단의 리움미술관 관람(2022.5.6.)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특별히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순례하는 소양과 취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국립미술관을 두 군데를 굳이 찾은 것은 풍광 좋은 공원으로 나들이하는 것처럼 예술과 역사 탐방도 숨 쉬듯 가까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삼성의 리움, 정상급 사립미술관
이런 곳을 빼놓지 않고 섭렵한 벗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리움미술관을 서울 나들이 때 들러야 할 목록에 진작에 올려놓았었다. 마땅한 기회를 엿보다가 아들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리움미술관을 찾은 것은 지난해 5월 6일이다. 아들은 전날 들른 강화도와 다음날의 국립수목원 사이에 리움미술관을 예약해 두었다.
리움(Leeum)은 삼성문화재단에서 2004년 서울 한남동에 미술관 건물을 신축하면서 개관한 사립 미술관이다. 리움은 삼성그룹 창업주이자 미술 애호가인 이병철 회장의 ‘리(Lee)’와 ‘뮤지엄(museum’의 ‘um’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리움은 “도시·건축·자연이 어우러진 공간 속에서 예술·인간·문화가 서로 만나 대화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새로운 문화예술의 지평을 제공할 목적으로 설립”(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되었다.
호암(湖巖) 이병철(1910~1987)은 1965년 삼성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한 후, 자신이 수집한 고미술품 1천2백여 점을 기증하고 1982년 4월, 자신의 아호를 딴 호암미술관을 개관했다. 호암미술관은 호암갤러리, 로댕갤러리를 운영해 왔으나 2004년 10월 호암갤러리를 한남동으로 이전하여 삼성 미술관 리움을 개관하였다.
리움은 한국 최고의 부자로 일컬어진 삼성그룹의 창업주가 세운 미술관으로 컬렉션만큼은 한국 전통 미술과 현대 미술 모두에서 한국 정상급인 미술관이다. 특히 한국 전통 미술에 관해서는 리움과 비교될 만한 사립 미술관은 간송미술관이나 호림박물관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삼성문화재단의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
짓는 데 8년이나 걸린 리움의 건축물은 크게 3동으로, 각각 세계적인 특급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의 작품이다. 리움의 소장 작품은 한국 사립 미술관으로서는 최고 컬렉션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국보만 36개, 보물이 96개에 이를 정도니, 국립박물관 중에서 신라 시대의 문화재들을 대량 소장한 국립경주박물관이 국보 13점, 보물 30점을 소장하고 있는 걸 비기면 이 소장품 수준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리움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고미술 유물이 수두룩하다. 호암미술관과 함께 리움은 이병철의 고미술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리움에는 한국 유일의,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유물들도 적지 않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분청사기 등의 국보와 보물뿐 아니라, 정선, 최북, 강세황, 김홍도, 김정희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금속공예, 불교 미술, 그리고 박수군, 이중섭부터 쟈코메티와 데미안 허스트까지 내로라하는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21년 4월, 유족들은 이건희 회장의 상속세 발표에서 23,000점에 달하는 ‘이건희 컬렉션’을 사회에 환원하여 국공립 미술관에 기증하기로 밝혔다. 구체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보 14건, 보물 46건을 포함한 2만 1693점, 국립현대미술관에 1488점, 광주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강원도 양구의 박수근미술관, 제주도의 이중섭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의 5개 지역미술관에 102점으로 총 23,283건이다.
부의 직접적 사회 환원 아니지만, ‘문화 자산’의 공공적 향유 기회 제공
이건희 컬렉션 기증 후에 리움 도자실의 전시품 수준이 얼마간 낮아졌다. 그러나 1층의 불교 미술품과 금속공예품 등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없는 통일신라시대의 그림, 고려시대 불화, 금동대탑 등이 있어 리움의 소장품 수준이 가공할 수준이라는 게 드러났다.
세계의 유명 부자들이 천문학적 기부 등 자선사업에 매진하면서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비기면 한국의 기부문화는 걸음마 수준이다. 그나마 삼성이 문화재단을 통해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으나 이는 부를 직접 사회에 환원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병철 컬렉션’이 삼성문화재단에 출연되어 삼성가가 상속세를 면제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건희 컬렉션’도 같은 경로를 밟는다. 이건희 컬렉션을 상속받으면 합계 12조~13조 원으로 추산되는 상속세에 더해 미술품에 대한 세금도 물어야 하지만, 기증품들은 상속 재산과 상속세 납부 대상에서 제외된다.
애당초 이병철·이건희 회장이 유물이나 미술 작품을 사들이면서 그걸 기증이라는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고액의 미술품을 보유하는 것도 적지 않은 투자라는 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는 없다.
삼성가가 모아온 미술품의 양과 질은 개인의 수집품 차원을 넘어섰다. 미술계에는 국가적으로 주목해야 할 이 ‘문화 자산’을 공공의 차원에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해 있었다. 이런저런 말이 있어도 삼성가 컬렉션이 이에 일정하게 응답한 점은 평가받을 수 있겠다.
리움의 운영은 상설 전시관과 특별전시관으로 이뤄진다. 고미술품, 현대미술품을 전시하는 상설 전시관은 무료 개방하지만, 특별전시관은 성인 기준 12,000원의 입장료가 받는데 둘 다 사전 예약해야 관람할 수 있다. 아들이 일찌감치 예약해 두어 우리 내외는 50%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안 챙과 아트 스펙트럼 전시
그때 리움은 미국 작가 이안 쳉(Ian Cheng, 1984~ )의 첫 아시아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었다. 이안 쳉은 인공 지능과 게임엔진을 이용한 가상 생태계 작업으로 잘 알려진 미국 작가로, 철학적 사유에 기반을 두고 기술을 통해 인간 의식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을 전개해왔다고 한다.
한편, 아트 스펙트럼 전시도 있었다. 2001년 호암갤러리에서 격년제 청년 작가 서베이 전시로 처음 시작된 이 전시는 2006년부터 리움에서 이어서 진행한다고 했다. 이 전시는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 장르를 넘어 영상과 설치가 주류를 이루는가 하면, 퍼포먼스와 관객 참여 같은 새로운 접근도 일상화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묵혀 둔 사진 파일을 고르면서 1년 전의 관람을 복기해 보지만, 이것저것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리움 누리집을 참고하여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관람기를 대신한다. 리움 누리집에 가면 깨끗한 이미지를 볼 수 있지만, 내 렌즈에 찍힌 사진들은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3. 2. 24.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길 위에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급식 총파업 … 고교생의 ‘응원과 공감’의 대자보 (4) | 2023.04.03 |
---|---|
살구 이야기 - 살구꽃, ‘행림(杏林)’과 ‘행화촌(杏花村)’ (4) | 2023.03.21 |
다가오는 ‘봄 기척’을 엿보다 (2) | 2023.02.23 |
아직 멀리 있는 ‘봄’ (5) | 2023.02.04 |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 ‘왕도는 없다’ (2) | 2023.0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