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재(決裁)’와 ‘결제(決濟)’ , 어떻게 다르나
맞춤법에 서툰 이들이 가장 자주 실수하는 게 ‘ㅐ’와 ‘ㅔ’의 구분인 듯하다. 그래서 이들은 ‘자제’를 ‘자재’로 쓰고 ‘제원’을 ‘재원’으로 쓰는데 양성모음 ‘ㅐ’가 음성모음인 ‘ㅔ’보다 친숙한 탓으로 보인다. ‘결재’와 ‘결제’를 헛갈리는 이유도 같다.
기록된 글자로 배우지 않고 귀로 들어서 익혔다면 실수할 가능성은 훨씬 커진다. ‘결재 서류’라 적힌 결재판에다 서류를 끼워서 결재에 들어가는 사무직 노동자에겐 익숙한 낱말이 결재(決裁)다. 그 뜻은 “결정할 권한이 있는 상관이 부하가 제출한 안건을 검토하여 허가하거나 승인함.”이다.
생활인은 회사에서만 결재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집에 가서도 어부인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이 역시 이른바 ‘내부 결재’다. 물건을 사는 일이든, 어떤 주요한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부인의 내락은 기본이고, 그걸 빼먹으면 ‘죽는 수’도 생기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가 물건을 사고 대금을 지급하는 일은 ‘결제(決濟)’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는 “증권 또는 대금을 주고받아 매매 당사자 사이의 거래 관계를 끝맺는 일.”이다. 현금을 주든, 카드로 대신하든, 상품이나 서비스의 대가를 지급하는 일은 모두 결제다.
결재와 결제는 둘 다 ‘결단할 결(決)’ 자는 같고, ‘제’ 자만 다르다. 결재의 재는 ‘마를 재(裁)’, 우리가 흔히 재단(裁斷 마름질)한다고 할 때의 그 마름이다. 이 ‘재’ 자는 “안건을 결재하여 허가함.”이라는 뜻의 ‘재가(裁可)’에서도 쓰인다.
결제의 ‘제(濟)’는 ‘건널 제’, ‘건너다’와 ‘돕다’ 등의 뜻이 있는 글자다. 대체로 ‘해결하다’, ‘끝내다’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생을 ‘제도(濟度)’한다고 할 때 ‘제도’는 ‘물을 건넘’의 뜻이다. ‘제세(濟世)’는 ‘세상을 구제함’의 뜻, ‘공제(共濟)’는 ‘서로 힘을 합하여 도움’의 뜻이다. ‘아직 끝나거나 해결되지 않음’의 뜻인 ‘미제(未濟)’에도 ‘제’ 자가 쓰인다.
언어는 듣기만으로 학습하기 어렵다. 쓰기나 읽기를 통해서 낱말을 익히고 배우지 않으면 이런 맞춤법에서 적잖은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려자’를 ‘발여자’로 쓰고, ‘분란’을 ‘불란’으로 쓰는 맞춤법 파괴는 한자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 크다. [관련 글 : 맞춤법 파괴 - ‘발여자’(반려자)에서 ‘불란(분란)’까지]
2022. 11.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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