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곶감을 깎아 베란다에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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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이 있는 처가의 장독대 앞 텃밭 가장자리에는 대봉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살아생전에 장모님께서 심어 놓은 것인데, 따로 관리하지 않으니 해마다 깍지벌레의 공격에 속수무책, 여느 감나무와 달리 성급하게 익으면서 떨어지고 만다.
원래 처가엔 담에 바투 붙은, 적어도 백 년은 족히 묵은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었다. 장모님 살아 계실 때, 그 나무에서 감을 따고 그거로 곶감을 깎아 걸며 글 한 편을 썼다. 그게 2014년이었는데, 이듬해 우리는 장모님을 여의었다. [관련 글 : 감 따기와 ‘곶감’ 만들기]
감의 역사
감은 동양이 원산지로 중국에서는 재배역사가 오랜 과일 중 하나다. 감은 가장 오래된 본초학 서적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B.C. 100)에는 나오지 않고 <예기(禮記)>에 비로소 나타난다. 이후 <신수본초(新修本草)>(659)·<제민요술(齊民要術)>(532~549) 이후, 농업 관련 문헌에는 반드시 나타난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감이 재배된 것으로 추측된다. 감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은 고려시대의 의학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1236)이다. 1417년(태종 17) 경상도 의흥현에서 중간(重刊)한 <향약구급방>에 경상도 고령에서 감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감의 주성분은 15∼16% 정도의 당질로 대부분이 포도당과 과당이다. 감 특유의 떫은맛 성분은 디오스피린이라는 타닌 성분이다. 감에 생성된 아세트알데하이드가 타닌과 결합하여 물에 녹지 않는 성분이 되면 떫은맛이 없어진다. 단감 속에 보이는 검은 점은 타닌 세포가 변화한 것이다.
감은 우리나라에서 완전한 개량·육성이 이루어진 유일한 과수이다. 경북 예천의 고종시, 의성군 사곡면의 사곡시, 경산 고산의 반시, 고령 수시, 전북 남원의 흑시 등이 유명하다. 이 밖에도 상주의 둥시가 있고, 반시는 지금 경산 아닌 청도의 명산으로 이름이 났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여러 분야의 어휘를 한자와 한글로 대비하여 편찬한 사전인 <물명고(物名攷)>에도 다양한 종류의 감을 소개하고 있다.
곶감의 껍질에는 돋아나는 흰 가루는 과당, 포도당, 만니트 등의 성분으로, 감이 건조될 때 감 속의 당분이 밖으로 배출되면서 표면에서 당 막을 형성하여 흰 가루 상태가 된 것으로 예전에는 이를 시상(柹霜) 또는 시설(柹雪)이라 하였다고 한다.
버려둔 감 농사, 홍시와 곶감으로 남다
감은 날로 먹거나 침시(沈柹)와 곶감으로 먹는다. 침시는 보통 소금물에 담가서 떫은맛을 뺀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홍시보다 땡감을 삭혀서 먹곤 했는데, 그게 침시였던 셈이다. 주전부리할 만한 먹을거리가 없었던 그 시절에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감이 적당했다. [관련 글 : 감 이야기- 땡감에서 홍시, 곶감까지]
감은 이른바 삼색 과실의 하나로 제찬(祭饌)으로서 없어서는 안 되는 과일이다. 조율이시, 또는 조율시이(棗栗柿梨)의 ‘시(柿)’가 바로 감이다. 곶감을 탕수에 넣어 벌꿀 또는 설탕을 섞고, 여기에 생강·잣 등을 넣은 것으로 수정과(水正果, <물명고>에선 水淨果로 표기)가 있다.
담에 붙은 오래된 감나무는 집을 비워두면서 가을이면 한길에 감이 떨어져 부패하면서 냄새도 나고 보기에도 영 그랬던 모양이다. 이웃에서 괜찮으면 감나무를 베어내는 게 어떠냐는 제의해 와서 고민 끝에 한길로 벋어 난 가지만 베어냈다. 그러다가 결국은 밑둥에 톱을 대고 말았다. 그래도 생전에 심어 놓은 대봉 감나무가 있으니 하고 위로하면서.
지난해에는 가을에 바빠서 꽤 오래 텃밭을 찾지 못했었다. 어느 날 텃밭에 와 보니, 누가 일부러 따간 것처럼 감나무에 감이 죄다 떨어지고 없었다. 아내는 누군가가 집에 들어온 거 아닐까 의심했지만, 나는 비록 바깥에서 표시 나게 끈으로 묶어 잠근 대문을 누가 열고 들어오겠느냐고 했지만, 그래도 미심쩍은 건 마찬가지였다.
올해, 마늘을 심으러 왔다가 살펴보니, 뜻밖에 우리 감은 이웃의 감나무와는 달리 성급하게 익고 있는 거 같았다. 아마 그것도 병충해 탓인 듯했다. 우리는 그제야 지난해 감이 죄다 떨어진 이유를 거꾸로 추정해 볼 수 있었다. 아직 감을 따기에는 이른 때지만, 달린 채로 익어가고 있는 감을 버려둘 순 없었다.
우리는 가지를 꺾어 가면서 까치밥만 남기고 감을 죄다 땄다. 집으로 가져와 함께 깎아서 창고에 쟁여두었던 곶감 걸이에 꽂아서 베란다의 건조대에다 걸었다. 마침맞게 갑자기 온도가 떨어지면서 며칠간 집을 비웠는데도 감은 무르는 일 없이 건조대에서 잘 말라가고 있다.
10월 5일에 감 140여 개를 걸었으니 한 달 넘게 말리면 11월 초순에는 얼마간 곶감이 될 것이다. 아내는 반건시도 좋다면서 그 전에 한두 개씩 따서 먹는데, 나는 그것보다는 온전히 된 곶감을 더 좋아한다. 몇 개나 남아서 곶감이 될지는 모르지만, 가끔 베란다에서 햇볕에 발갛게 익어가는 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 가을은 행복하다.
2022. 10.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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