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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③] 시화호와 대부도의 낙조

by 낮달2018 202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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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도의 낙조. 아직 해가 한 뼘은 남아 있어 붉은 기운이 남아 있다.

연휴의 마지막 날인 10일은 대체휴일이었다. 그날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예약했다는 아들아이의 전갈을 받고 우리 내외와 딸애는 7일 저녁 케이티엑스로 상경했다. 마중 나온 아이와 함께 바로 집으로 들어가 야식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일찍 자리에 들었다.

 

첫날인 10월 8일, 아들애는 시화호를 찾아보자고 했지만, 나는 이왕이면 대부도까지 가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애당초 제부도(濟扶島)를 염두에 두었었다. 언제던가, 어떤 여성 작가가 쓴 단편소설 ‘제부도’가 떠올라서였다. 그러나 경기도 화성의 제부도는 대부도보다 조금 더 멀었고, 훨씬 작은 섬이었다.

 

간척호수 시화호방조제길

 

화성시 남양반도에서 바라보면 큰 언덕처럼 보여 대부도(大阜島, ‘阜’가 ‘언덕 부’ 자다)라 불리는 대부도는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 있는 섬이다. 우리는 광명을 거쳐 시화방조제길을 따라 대부도에 들어갔는데, 주말이라 시화방조제길을 지나면서부터 밀리기 시작해 목표한 카페에 이르는 데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시화호(始華湖)는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 등에 둘러싸인 간척호수로 이름은 방조제의 양 끝에 있는 시흥과 화성의 앞 글자를 붙여서 지었다. 1987년 6월에 착공하여 대부도와 화성시를 잇는 대선·불도·탄도 방조제가 1988년 5월에 먼저 완성되었고, 1994년 1월에 시흥시 오이도와 대부도(현 안산시)의 방아머리를 잇는 주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인공호수가 생겼다.

▲ 시흥 배곧공원에서 바라본 시화도. 강 건너는 인천시 연수구라고 한다. 빌딩 숲이 이국적으로 보인다.
▲ 인천시 연수구의 풍경.
▲ 시흥 배곧공원 근처의 고층 아파트 단지.

시화호는 원래 간척지에 조성될 농지나 산업단지의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담수호로 계획했으나, 완공 이후 시화호 유역의 공장 오·폐수와 생활하수의 유입으로 수질이 급격히 나빠지자 1997년 이후 해수를 유입하기 시작했고 2001년 이후로는 해수를 순환시키는 해수호가 되었다.

 

8, 90년대 시화호는 주변 공단에서 배출하는 오·폐수로 말미암은 환경오염의 상징 같았다. 원래 목적이었던 간척사업을 포기하고 오염 방지 시설에 돈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자, 결국은 담수화를 포기한 것이다. 뉴스로 보고 듣기는 했지만, 경상도 사람에게 시화호는 너무 먼 지역의 이야기였는데, 일흔을 앞두고 우리 내외가 마침내 여기 다다른 것이다.

 

12.7km에 이르는 4개의 방조제로 형성된 시화호의 면적은 43.8㎢(1,329만 평)이고, 시화방조제의 중앙에는 10.3m의 최고 조수간만차를 이용한 조력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수차발전기 10기에서 25만 4,000kW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프랑스 랑스 조력발전소의 24만 kW를 넘어선 것으로 현재 세계 최대 조력발전소라고 한다. 조력발전이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썰물 혹은 밀물 때 물을 가둬 두었다가 간조나 만조 시에 수문을 개방하며 방조제 안팎의 수위 차로 인한 위치 에너지를 통해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 바닷가 철제울타리를 뚫고 나온 미국쑥부쟁이.
▲ 시흥 배곧공원의 수크령.외떡잎식물 벼목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 시흥 배곧공원 풀밭의 붉은토끼풀 군락. 흰색 클로버와는 다른 붉은 꽃이 화사했다.

시흥 배곧 공원 근처에 차를 세우고 호수를 바라보았는데, 정작 호수 건너편 인천 연수구의 빌딩 숲이 마치 이국 풍경 같았다. 바닷가 출입을 막은 철제 울타리 사이에 미국쑥부쟁이가 무성했고, 호숫가 공원에는 붉은토끼풀과 수크령이 낯선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시화호 호숫가에서 만난 붉은토끼풀과 수크령

 

풀밭에서 처음 본 붉은토끼풀(‘모야모’에 물어서 알게 되었다)은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의 유럽이 원산지인 여러해살이풀이다. 흰색의 꽃이 피는 토끼풀과 달리 붉은 꽃이 피고 높이가 30∼60cm까지 자란다고 한다. 흰색 클로버와는 다른 붉은 꽃이 화사했다.

 

역시 처음 만난 수크령은 외떡잎식물 벼목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나는 처음엔 핑크뮬리와 비슷한 종인가 하였으나 아니었다. 강아지풀보다 훨씬 크고 억센 원기둥 모양의 꽃이삭이 인상적이다. 볏과 수크령 속은 열대와 난대에 약 130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수크령, 흰수크령, 붉은수크령, 청수크령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대부도에는 달 전망대와 조력문화관, 구봉도 낙조 전망대 등이 관광명소라고 소개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단출하게 바닷가에 카페를 찾아서 낙조를 구경하기로 했다. 이른바 오션뷰 카페라는 커피집은 단원구 대부북동에 새로 지은 2층 건물이었다. 주차장이 넓어서 선택한 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 바닷가 전망이 좋은 곳에 신축한 2층 건물에 들어선 카페에는 낙조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 요지에 세운 카페에 손님들이 붐빈다. 건물 앞에는 흰색 파라솔을 세웠고, 거기서 사람들은 해넘이를 기다리고 있다.

그날 해넘이 시간은 오후 6시. 빈자리 없이 가게를 가득 채운 젊은이들 틈에 앉아 있기가 적이 거북했다. 30대 어귀에 초임 학교에서 동료들과 동해 해돋이를 보겠다고 새벽에 석굴암에 오르기도 했지만, 해넘이를 보러 오긴 처음이었다. 시골에선 굳이 구경하려 하지 않아도 저녁놀을 바라볼 수 있으니 서울이라고 다를 리 없다.

 

대부도의 노을

 

그러나 도시의 삶은 황혼을 바라볼 만큼 여유롭지 않다. 또 빌딩 숲에서 바라보는 저녁놀과 바다의 수평선 너머로 지는 태양이 연출하는 낙조는 좀 다를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까운 바닷가로 나와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6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카페를 빠져나가서 가게 앞 철제 울타리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울타리 앞에는 방향과 높이를 조정할 수 있는 하얀 파라솔이 처져 있고, 그 앞에는 계단식으로 된 콘크리트 포장 관람석이 이어져 있었다. 거의 의식하지 못했는데, 관람석 앞까지 차 있던 바닷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개펄이 석양빛에 검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관람석도 성이 차지 않는 듯, 그 아래 갯벌로 내려가 사진을 찍느라 부산했다.

 

나는 사진기로 낙조를 담아본 적이 없다. 해돋이는 막 사진을 찍기 시작하던 시기에 몇 차례 시도했지만, 무어 진득하게 매달리는 데는 젬병이어서 그러다가 말았다. 무엇보다도 무슨 ‘작품 사진’ 같은 데에 흥미가 없었다. 나는 그냥 보이는 대로 풍경을 찍고, 그걸 보면서 그 시간을 복기해 볼 뿐이었던 탓이다.

 

당연히 어떻게 찍어야 제대로 된 사진을 찍는지도 잘 모른다. 나는 잠깐 스마트폰으로 ‘일몰 사진 찍는 법’을 검색하다 말았다. 대신 감도(ISO) 100에 셔터 속도 1/30초로 설정하고 보이는 대로 셔터를 눌렀다. 돌아와 비교적 잘된 사진 몇 장을 골랐다.

▲ 대부도의 노을. 모두 비슷한 풍경이면서도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 등이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노을은 아름다웠지만, 나는 거기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는 않았다. 원래 실경보다는 사진이 훨씬 아름답게 보이는 법, 나는 노을이 드러내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해가 바닷속으로 넘어가자 하늘빛은 붉은 빛이라기보단 노란 빛으로 보였다. 수평선에 민둥산처럼 이어진 작은 섬과 송신탑 위로 짙은 잿빛의 구름과 흰 구름이 마치 흩날리는 듯한 하늘이 아련했다.

 

노을과 대비되어 어두워진 갯벌의 흙과 자갈이 마지막 석양빛에 반사되어 번쩍번쩍 빛을 냈고, 수면은 검붉게 빛났다. 젊은이들은 열심히 ‘추억을 만들려고’ 사진 찍기에 바빴다. 우리 세대는 추억을 만든 적이 없다. 그게 나중에 추억이 되리라고 여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오랜 뒷날에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자취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환기하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별로 밀리지 않았다. 낙조가 목표인지라 들어가는 시간은 비슷했지만, 떠나는 시간은 같을 이유가 없어서일까. 나는 뒷자리에 앉아 선팅된 차창 밖으로 시화호의 물빛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2022. 10.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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