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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토사구팽, 개를 버리는 건 주인이 아니라 ‘국민’이다

by 낮달2018 2022.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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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의 우경화

(누리꾼들의 광고 불매운동에 대한 억지 수사’, ‘에버랜드 무죄판결,

‘PD수첩 수사’, ‘KBS 사장 수사)

▲ 손문상의 그림 세상(8. 12.) ⓒ 프레시안

코드, 편 가름을 위한 ‘정치적 표지’?

 

이른바 ‘코드’ 타령은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돌연 투사로 변신한 조중동이 합창하던 일종의 트렌드(?)였다. 정권의 인사가 비슷한 정치적 이념이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등용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데 붙인 비난의 딱지였다. ‘코드(code)’의 백과사전적 정의(“통신에서 글자·단어·구절과 같은 한 단위의 정보를 그에 상당하는 임의로 선택된 어구로 바꾸는 데 사용하는 일정한 규칙”)에 비기면 그것은 지극히 정치적인 뜻인 셈이다.

 

민주주의가 정당정치를 통해 구현되고, 집권 정당이 자신의 국정 철학을 펴는 데 비슷한 이념과 철학을 갖춘 이들을 선호하는 건 그리 나무랄 일도 아니다. 그러나 현 정권과 그 수호자를 자임하는 조중동이 입 모아 부르짖는 ‘잃어버린 10년’, 그땐 그랬다.

 

그러나 권토중래(捲土重來), 정권을 되찾은(!) 현 정부의 인사나 국정 운영은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린 개구리’ 짝이다. 그들의 코드는 ‘강부자’나 ‘고소영’ 같은 신조어를 만들며 만화방창(萬化方暢)을 구가한다. 거품을 물며 지난 정부의 ‘코드인사’를 물어뜯던 하이에나 언론 조중동의 서슬 푸르던 질책은 어느새 간데없다.

 

조중동 식의 비판과 견제는 늘 이중 잣대로만 기능한다는 걸 깨달은 것은 촛불로 모인 국민이었다. 이제 조중동은 현 정권의 충실한 후견인으로서 그들만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거기에 비판적인 언론과 누리꾼들의 여론에 못질해대고 있는 형국이다. 전 정권의 인사를 ‘코드’로 규정하고 집요한 비난을 퍼붓던 여당과 조중동은 이제 그것을 ‘국정 철학의 공유와 집행’을 위한 전제로 정의한다. 결국 코드는 편 가름을 위한 ‘정치적 표지’가 되어 버린 셈이다.

 

‘강부자’와 ‘고소영’으로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을 꾸리는 것도 이른바 ‘코드’ 인사로 접어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 정부가 챙기려는 코드는 이미 그 정도를 넘었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논공행상을 위해 선거 캠프에서 이바지한 측근들을 공기업과 정부 투자기관에 낙하산으로 임용하기 위해 임기가 남은 전임자를 몰아내는 방식은 가히 조폭의 그것을 닮았다.

 

10년 동안의 기근(!)에 허기진 듯 자리를 만들고 거기 측근을 심는 데 국가 기관을 동원하는 새로운 선례도 만들어냈다. 순순히 사임하지 않으면 감사와 사업 조정 등의 전가의 보도를 빼 드는 일 서슴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빈자리를 채우는 건 정작 ‘전문성’이나 ‘능력’과는 상관없는 이들이고 보면 이들의 행태를 전리품을 챙기는 것과 견주는 게 반드시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정부와 권력의 ‘코드’ 맞추기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 일탈로 질주하는 듯하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수장에 대통령의 멘토 출신을 앉히더니 YTN 사장 등 언론과 그 관계 기관에 대선캠프의 특보들을 들이고 마지막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순서도 아예 노골적이다.

 

정부는 KBS 사장을 해임하고 후임 사장을 추천하는 과정에 이미 권력의 의중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KBS 이사회와 감사원과 검찰의 3각 편대를 이용하였다. MBC PD수첩 보도에 대한 경영진의 사과를 받아내는 일련의 과정에도 방송통신심의위와 검찰 수사라는 생광스러운 수단이 쓰였다. 국민의 눈과 귀는 안중에 없이 방송 장악을 위한 이들의 오만한 발자국은 요란하기만 한데, 문득 그게 마치 5공의 군홧발 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웬 까닭일까.

 

‘사냥개’를 버리는 건 ‘주인’이 아니라 ‘국민’이다

 

경찰과 검찰 등 물리적 권력 집행기관을 ‘개’에 비유하는 일은 오랜 관행이다. 독재 권력이나 비합법 권력을 지키기 위한 집행기관으로서 그들을 ‘주구(走狗)’라 부르는 것은 그들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지 않은 데서 연유하는 이름이다.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검경을 우리는 ‘개’라고 비하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그들을 ‘개’라고 헐뜯은 일은 그리 많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2008년 현재 비판적 언론과 여론은 그들을 개, 특히 권력의 주문에 따라 먹이를 향해 달려가는 ‘사냥개’에 비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누리꾼의 순발력은 그들을 ‘견찰(犬察)’로 부르기까지 한다.

▲ 김용민의 그림 마당(7/17~8/8) ⓒ 경향닷컴
▲ 장봉군 화백의 한겨레 그림판(왼쪽 , 7/30, 8/9) 손문상 그림 세상 ( 오른쪽 , 7/30)

 

위에 인용한 <경향>과 <한겨레>, 그리고 <프레시안>의 만평들이 가리키는 것은 누리꾼들의 ‘광고 불매운동에 대한 억지 수사’나, ‘에버랜드 무죄’ 판결, ‘PD수첩 수사’, ‘KBS 사장 수사’ 등이다. <경향> 김용민 화백의 개는 주인들 앞에서는 애완견처럼 미끈한 모습이다가도 주인이 겨냥하는 먹이 앞에서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이 개는 더러 ‘사냥×’로도 불린다.

 

<한겨레> 정봉군 화백이 그린 개는 푸들 류 같다. PD수첩의 PD조차 ‘푸들’로 읽히는 만평 속에서 이들 개는 아직 굴레를 매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아주 충직하게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다. <프레시안> 손문상 화백의 개들은 뒤의 주인에게는 추파를 던지면서 겨냥된 먹이 앞에서 음험하고 포악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그 으르렁거림 앞에 위태로이 선 것은 KBS, MBC, YTN, 언론재단 등이고, 그 아래 엎드린 정연주 사장과 PD수첩은 몹시 고단해 보인다.

 

흔히 권력의 주구로 묘사되는 경찰·검찰에 이어 ‘선진화 원년’의 주구에는 ‘감사원’과 ‘방송통신위원회’까지 동원되었다. ‘감사원’ 하면 우리는 한승헌 같은 꼬장꼬장한 감사원장을 떠올리지만 그건 이미 흘러간 옛 노래다. 2008년의 감사원은 대통령과 권력의 의중을 받들어 그들이 원하는 감사 결과로 언론 장악의 밑그림을 그려놓음으로써 옛 명성을 스스로 버렸다.

 

성찰 없는 권력의 질주에 동원된 주구들이 잊어서는 안 될 게 하나 있다.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토사구팽(兎死狗烹)]”라는 걸. 고사에서 개를 삶는 건 제왕의 권력이지만, 오늘날의 그것은 다르다. 선출된 권력, 정권은 유한한 것이다. 그 힘이 사냥개를 제물로 삼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을 버리는 건 국민이다. 그들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힘으로 국민을 할퀴고 물어뜯지만, 정작 그 ‘국민의 버림’을 받는 순간 그들의 힘이란 한낱 거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직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건 무리일까. ‘에버랜드 무죄’를 선고한 법원도 광고 중단 수사를 맡은 검찰과 쌍둥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구속 재판 확대를 강조하던 법원은 최근 시국사건에서 구속영장 발부를 남발하는가 하면,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 싣지 말기 운동’을 벌인 누리꾼 두 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4명 기각)했다. <한겨레>는 사법부마저 ‘코드 맞추기’ 대열에 끼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전하고 있다.

 

“이 사건 수사가 애초부터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수사에 ‘정당성’을 준 것”이며, “재판부는 ‘증거 인멸 우려’를 들었지만 발부된 사람과 기각된 사람의 차이가 뭐냐”는 반론이 무성하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에서는 결국 법원이 ‘정치적 고려’로 권력과 ‘타협’한 것으로 보고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이에 대한 민변의 논평은 그런 뜻에서 의미심장하다.

 

“오랜 기간 노력해 발전시켜 온 구속 기준들이 불과 몇 달 사이에 후퇴하고 무너지는 현실을 법원 스스로 깊이 되돌아봐야 한다. (…) 폭력을 동반하지 않는 의사 표현과 소비자 불매운동을 이유로 구속까지 되는 현실에는 자유와 희망이 있을 수 없다.”

 

‘그들만의 미래, 그들만의 행진’

 

경제적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국세청이 여기서 빠질 수 없다. 최근 국세청은 민주노총 법률원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당연히 ‘노동계를 압박하려는 표적 세무조사’ 논란이 무성하다. ‘졸렬한 좁쌀 행정’도 이쯤 되면 금메달감이다.

 

형사사건 수임료가 건당 100만~200만 원 정도로 일반 법무법인(로펌)의 절반 수준도 안 되고 그나마 돈 없는 노동자들에겐 수임료를 못 받기 일쑤인 데다 고소득 자영업자와는 거리가 먼 ‘월급쟁이 변호사’가 일하는 곳이 민주노총 법률원이다. 그게 세무조사를 피하여야 하는 이유는 아닐 터이다. 그러나 고액의 탈세 혐의가 있는 대규모 로펌과 함께 민주노총 법률원을 특별 세무조사 대상에 끼워넣은 것을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선진화 원년은 이래저래 기록도 많다. 1984년 이후 사라졌던 올림픽 개선 환영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카퍼레이드까지 논의되다 여론에 부딪히자 환영 행사로 격을 낮추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덕분에 경기를 끝낸 메달리스트들이 귀국하지 못하고 선수촌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모양이다.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발표한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및 건설경기 보완 방안’은 여전히 집 없는 서민에 대한 배려는 없고, 건설업자와 다주택 소유자를 위한 정책이 중심인 듯하다. 작가 이외수가 ‘쏘가리와 배스로 구분하지 못하는 자칭 낚시의 달인’이라고 비꼬긴 했지만, 정말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아무래도 정부가 서둘러 제시하는 길은 미덥기는커녕 번지수가 한참 틀린 듯한 느낌이다.

▲손문상의 그림 세상 (8. 21.) ⓒ 프레시안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누구는 남은 세월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아득하다고도 한다. 한 나라가 지향하는 목표가 대통령이나 집권당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면 그것은 모두가 동의하고 공유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6개월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구경꾼으로 조마조마하게 정부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손문상 화백이 그린 만평 한 편을 바라보는 기분은 참 서늘하다. 건국 60년의 깃발을 단 카퍼레이드 행렬의 맨 앞은 소와 함께 ‘그’가 양손을 번쩍 들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가 손에 쥔 것은 금메달이 아니라 브래지어다. ‘속옷 벗기기 1위’란다. 이어진 차량들은 모두 ‘방송 때려잡기’나 ‘누리꾼 구속’, ‘종교 편향’ 등의 펼침막을 둘렀다.

 

길은 좌회전이 금지된 ‘2MB 우경 강공로’다. 신호등은 꺼져 있고…….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들은 역주행하고 있다. 가는 길은 막힘 없는 과거로의 질주인 듯하다. 그렇게 해서 2MB 정부가 세우려 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함께 탄 꽃을 꽂은 미국 소는 그걸 알고 있을까.

 

 

2008. 8.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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