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의 전 정부 겨냥한 전방위 감사, MB정부 때 인권위와 겹치는 까닭
감사원은 헌법에 따라 설치되고, 그 권한이 부여된 헌법 기관이다. 대통령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이지만, 그 직무에 대해서 대통령이 간섭하지 못한다. 또한 감사원은 소속 공무원의 임면이나 조직·예산 편성에 있어서는 독립성을 갖는다.
감사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되며, 감사위원은 탄핵이나 중형을 선고받지 않는 이상 강제로 면직되지 않으며, 일정한 직무의 겸직이나 정당 가입 또는 정치 운동 등이 금지되어 있다.
바빠진 감사원, ‘국정운영 지원기관?’
그런데 현재 감사원은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가장 바쁜 기관이 된 것 같다. 임기가 남은, 이전 정부에서 임명한 방송통신위원장과 국민권익위원장이 사퇴 압박에도 물러나지 않자, 감사원이 압박성 감사에 나섰다.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할 감사원장은 국회에 나와 감사원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원기관’이라는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하여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다 최근 하반기 감사 운영 계획을 확정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코로나19 백신 등 의료·방역물품 수급 관리 실태 등을 주요 감사 대상에 포함하여 다시 구설에 올랐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의 하나로 추진한 사업이다. 이미 1년 5개월 전 감사 결과 문제없다고 판단했던 이 정책에 대해 사실상 재검사를 벌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언제 재확산될지 모르는 시기인데, 백신 사업 감사는 전 정부 때 여권이 계속 문제 삼았던 백신 도입 지연 논란을 조사하려는 것이다. 감사원은 또 신설 기관이 자리 잡을 때까지 2년간은 감사를 유보하는 게 관례지만,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한 기관 감사도 하반기에 하기로 했다고 한다. “전 정권을 겨냥한 정치적 표적 감사 몰이”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려운 상황에 이른 셈이다.
감사원이 주요한 사정기관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감사원의 ‘정부 정책에 대한 회계검사와 직무감찰’은 정치적 독립과 중립에 근거하여 공정하게 시행하여야만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감사원에 예산과 인력, 제도적 독립성을 부여한 까닭도 거기 있다.
그런데 최근 뉴스는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에 디지털 포렌식까지 동원하여 감사의 목적을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예 민주당에서 ‘보복성 감사’는 선전포고라며, “감사원이 감사 대상이 되었다. 월권행위에 법률대응을 검토하겠다”라는 반응까지 불렀다.
감사원이 보여준 기시감, 이명박 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
감사원이 스스로 조직의 존재 이유를 몰각한 행태를 보이는 건 어쩐지 기시감이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현병철 위원장(2009.7.20.~2015.8.12.)이 이끈 국가인권위원회다. 현 감사원이 표적 감사라는 의심을 받는 것과는 반대로 현병철의 인권위는 자기 역할을 포기하거나 게을리함으로써 권력의 의중을 살폈다.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의 조직을 축소하고 위원장으로 법학 교수 출신의 현병철을 임명했다. 인권단체 관계자들의 격렬한 반대 속에 취임한 현병철 위원장은 인권위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 늘 침묵함으로써 이명박 정부를 감쌌다. “민간인 사찰 수사 중에 인권위 개입은 부적절”하다고 했고,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경찰엔 과태료 하나 물리지 못했다.
‘인터넷 실명제 위헌’ 정국에 직원 목소리 듣겠다며 ‘실명 게시판’ 신설을 지시했고, 인권위 노조 간부 해고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벌인 직원들의 징계를 강행했다. 인권위 직원들이 “현병철이 바라보는 건 오로지 권력”이라며 반발하고, 새누리당마저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연임을 강행했다. [관련 기사 : 대통령에 ‘맞짱’ 뜨는 기관, 누가 망가뜨렸나]
현병철 인권위원회는 2009년 국내 인권에 더 힘을 쏟기 위해서라며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차기 의장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차기 ICC 의장은 대륙별 순환 원칙에 따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맡을 차례여서 후보만 내면 의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를 포기한 것은 민법학자 출신으로 인권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격 논란이 있는 데다가 기구 축소까지 겹쳐서 혹시 의장 선거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자격 없는 인물을 위원장에 임명한 이명박 정부는 인권 사안에 대해 눙치고, 권력의 입맛에 맞게 인권위를 운영한 덕을 봤는지 모른다. 그러나 국내 인권 상황은 전임 정부와 비겨 퇴행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인권위 직원들과 인권단체들이 인권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함으로써 인권위는 최소한의 역할을 이어갔다.
국가인권위의 굴욕-고교생 수상 거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가 맞닥뜨린 최악의 굴욕은 ‘청소년 대상 인권 에세이 공모전’에서 대상 수상자로 뽑힌 여고생이 “현병철 위원장의 인권위는 상을 줄 자격이 없다”며 수상을 거부한 거였다. 현병철은 시상 자격이 없다고 한 ‘발칙한 여고생’은 당시 영복여자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관련 기사 : “현병철의 인권위는 상 줄 자격 없다”]
비록 나는 고등학생이긴 하지만,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왔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수능 공부보다도 인권 공부에 더 열을 올렸고, 인권 활동에도 참여해왔다. 어쩌면 현병철 인권위원장보다도 더. 발칙하고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현병철 위원장은 고등학생인 나도 느낄 만한 인권 감수성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여러 위원들이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데도, 그 목소리에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인권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인권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이 박힌 사람이라면 할 수 없을 말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면서, 꽉 막힌 학교, 꽉 막힌 이 사회와 별반 다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과연 나에게, 그리고 다른 나머지 수상자들에게 상을 줄 자격이나 있을까. - 김은총 (영복여자고등학교 3학년)
현병철 위원장이 자신에게 부여된 책무를 게을리하고,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조직을 운영하면서 인권위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게 무려 6년간이나 이어졌다. 조직의 수장이 인권 감수성을 갖추지 못하고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면서 조직을 운영함으로써 인권위의 위상은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원이 정책에 대한 회계검사와 직무감찰로 정부를 견제함은 당연한 책무지만, 최근 이어지고 있는 감사원의 감사 대상은 거의 다 전 정부의 정책과 사업이다. 더불어민주당이 ‘표적·코드 감사’라고 비판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하는 게 무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감사원의 전방위 감사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행여 헌법 기관 감사원이 국민으로부터 받아온 신뢰를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불행한 결말을 맞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헌법적 지위를 보장받은 사정기관 감사원이 그 존립 근거라고 할 수 있는 신뢰와 공정성을 잃는 것은 현 정부뿐 아니라, 나라와 국민에게도 불행한 일이 될 터이니 말이다.
'이 풍진 세상에 > 길 위에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 <2021 제8회 대구사진비엔날레>(2021.9.10.~11.2.) (0) | 2022.09.14 |
---|---|
9월, 한가위 ‘달빛도 평등하게’ (0) | 2022.08.31 |
토사구팽, 개를 버리는 건 주인이 아니라 ‘국민’이다 (0) | 2022.08.24 |
‘욱일기’ 논란 예상되는 일본 ‘관함식’… 우리 해군 참가할까 (1) | 2022.08.22 |
시국선언, ‘여럿이 입을 모아 외치는 말’의 힘 (0) | 2022.08.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