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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나도 가끔은 ‘교감(校監)’이 부럽다

by 낮달2018 2021.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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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이  ‘도살장’이 된다고?

▲ 교감 선생의 책상. 흔한 명패 하나 보이지 않는 이 자리는 주인의 소탈한 성품을 닮았다.

1990년대만 해도 평교사로 정년을 맞는 선배 교사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내색하지 않는 ‘짠한 감정’이 얼마간 담겨 있었다. 후배 교사들로서는 한눈팔지 않고 교육의 외길을 걸어온 선배 교사들에 대한 경의에 못지않게 그가 정년에 이르도록 수업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가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세상도 변했다. 예전과 달리 이제 사람들은 교사들에게 ‘승진이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교감으로 승진하거나, 장학사·연구사로 전직하지 않고 교단을 지키는 교사들을 바라보는 후배 교사들의 시선에 예전 같은 연민이 묻어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승진’은 필수가 아니다?

 

무엇보다 요즘엔 평교사로 정년을 맞이하는 선배 교사들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 정년을 4, 5년 앞두고 명예퇴직을 선택하는 까닭이다. 명퇴는 굳이 후배 교사들의 안쓰러운 시선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선택으로 교직을 떠나는 맞춤한 방식이다.

 

칠팔 년 전의 얘기다. 처가 쪽 잔치가 있어서 부산에 갔는데 거기 사는 손아래 처남 하나가 내게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이제 승진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력을 모르는 친구도 아닌데 어이가 없어 쥐어박았다.

 

“야, 이 사람아. 나는 승진하고는 무관한 길을 걸어온 거, 자네도 알지 않는가?”

 

그제야 이 친구,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그때 말고는 그런 민망한 질문을 다시는 받지 않았다. 상대는 으레 내 삶의 방식과 승진이 무관한 것이라는 걸 일찌감치 알았거나 아니면 그런 질문이 상대방에 대한 결례라고 여겼던 게 틀림없다. 승진을 염두에 두고 거기 목을 매고 있는 사람에게 ‘승진’에 대한 질문은 가혹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한때는 승진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 교사들을 일러 ‘교포(교감 포기) 교사’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요즘은 아무도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런 명명법이 공공연했던 것은 ‘승진하려는 자’와 ‘승진을 포기한 자’로 이분된 세계관이 교단의 주류였기 때문이다.

 

승진하려는 이들이 그나마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으로 분류되는 대신 ‘교포 교사’는 그런 ‘경쟁에서 자신을 도태시킨 교사’로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런 이분법적 세계에선 평교사로 늙어가고 있는 교사들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도 일반적이었다.

 

더는 ‘교포 교사’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교단이 승진과 비승진의 이분법적 세계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 시절에 ‘승진 포기’는 경쟁에서의 자발적 배제를 선택하는 것으로 당사자의 ‘무능’으로 치부되었지만, 지금은 교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일부로서 그것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평교사’도 선택의 일부다

 

주변에 승진에 뜻을 두지 않고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뜻밖에 많다. 이들을 ‘자유인’으로 표현한 이유는 간단하다. 승진을 염두에 두는 순간부터 그는 승진을 위한 점수 경쟁을 자기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그래서 ‘근무 평정’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 교감이나 교장 등 평정권자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교조 소속의 교사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교원단체에도 적을 두고 있지 않은 적지 않은 교사들이 승진 따위에 한눈을 팔지 않고 자기 나름 소신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학교 내의 관행적 질서를 굳이 거역하지는 않지만, 승진과 관련된 여러 가지 구속에서 자유롭다. 이들은 그렇게 자유롭게 살다가 정년을 앞두고 일찌감치 ‘명퇴’로 자신의 교단생활을 마감하는 것이다.

 

꽤 오래된 이야기다. 복직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시골 학교에서였다. 사람 좋은 선배 교사 한 분이 내게 충고했다. 경력이 문제가 있으면 전문직(장학사·연구사)으로 나가도록 하라. 나이 오십이 되어서 수업에 들어가는 것은 소가 도살장에 들어가는 것과 진배없다. 흘려들을 일이 결코 아니다…….

 

나는 그가 마음을 써 준 것에 대해서는 치하했지만, 그냥 웃고 넘겼다. 그는 당시 맹렬하게 승진을 위한 점수를 쌓고 있었는데 그의 눈에는 앞날에 대한 계획도 없이 좌충우돌하는 내가 안쓰럽게 비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건네고 싶었던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당신이 승진하기 위한 선택을 내가 인정해 주듯 당신도 최소한 내가 선택한 삶을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에게는 승진과 그 후에 누릴 안락한 삶이 최고의 가치겠지. 미안하지만 내겐 그런 삶을 위해 노심초사하기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 더 중요하다.

▲ 교감 명패. 어떤 이에겐 이 직위도 반드시 이루어야만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때 그는 아마 승진을 눈앞에 둔 때였던 모양이다. 부장 회의에서 교장은 실행 불가능한 지시를 내렸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는 그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재촉했지만, 그는 침묵을 선택했다. 그는 진실을 말하는 대신 교장의 지시를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곧 승진, 교감이 되어 학교를 떠났다.

 

그는 아마 교장까지 승진했다가 퇴임했을 것이다. 나는 ‘도살장’에 들어가는 기분이라는 쉰 살이 넘어 지금껏 교실을 드나들고 있다. 물론 나도 때로 수업이 힘겹다. 하루 여섯 시간쯤 수업하다 보면 입에서 단내가 나고, 가끔은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건너편에 앉은 교감 선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는 나와 동년배다. 요즘은 더 어린 교감도 많다. 동기들 가운데 교감뿐 아니라 교장도 있다. 두어 해 전에 교장으로 임용된 한 친구는 이제 관록이 몸에 배었다.

 

그러나 드문드문 풍문으로 들려오는 그에 대한 평가 앞에 나는 몸이 오그라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글쎄, 똑똑하고 사람살이의 정리도 알 만큼 아는 그 엽렵했던 친구가 왜 그리되었는지. 그와 같이 근무한 한 후배 교사의 이야기를 들은 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교사들에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관리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교실이 ‘도살장’이 되기 전에 떠날 준비를

 

흔히들 교원명부에 ‘장리(掌理)’로 표시되는 교감의 임무는 말 그대로 ‘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자리다. 교장이 멀리 떨어진 독방에서 유유자적 학교 경영자의 지위를 지킨다면 교감은 온갖 사소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악역’을 감수해야 한다.

 

비담임과 역할 부장들이 모여 있는 본 교무실의 내 앞자리는 내년 2월에 정년으로 학교를 떠날 선배 교사의 자리다.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께선 늘 수학 문제를 풀고 계신다. 그는 본교의 교장 선생과 고등학교와 사범대 동기다. 나는 두 분의 지위 차이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다른 교사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보면 교감, 교장도 예사 골치 아픈 자리가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저 아이들 가르치는 게 몸이야 고단하지만, 속 편한 일 아닌가요?”

 

선생께선 가끔 그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그러면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받는다.

 

“선생님. 그 정도 골치 아픈 것쯤은 감수할 만하지요. 수업을 면제받는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큰 혜택이니까요.”

 

가끔 내가 ‘교감이 부럽다’라고 말하는 까닭은 대충은 이런 것이다. 종을 칠 때마다 수업을 들어가고 나오는 일상에서 가끔 그가 확보한 시간적 여유와 평안이 부러운 것이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그게 내 젊은 날의 선택을 뉘우치게 할 만큼 매력적인 자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학교를 옮기고 1학기에는 적응이 채 안 된 상태에서 빡빡한 수업량 때문에 꽤 고생했다. 그러나 아직 수업 들어가는 게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정도까지는 아니다. 한 해를 갈무리하면서 새삼 학교를 떠날 시기를 저울질해 보는 것은 내게도 교실이 언젠가 ‘도살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012. 11.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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