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청의 일제고사 관련 교사 7명 부당 중징계
서울에서 일곱 분의 교사가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는 소식을 마치 먼 나라 일처럼 들었다. 파면 3명, 해임 4명. 1989년의 이른바 ‘교사 대학살’ 이후 19년 만의 집단 징계다. 그것은 19년이란 시간 속에 포함된 ‘역사’와 ‘민주주의’, ‘개혁과 진보’ 따위의 개념을 깡그리 짓밟아 버리는 만행이다.
끓어오르는 분노는 차라리 허탈하다. 상식을 간단히 뒤집어 버리는 이런 소식은 이미 식상할 정도인데다가 이 분노가 무력한 분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걸 절감하는 까닭이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교육계에서 가장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교사들이 교단에서 배제되는 이 야만의 시간 앞에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징계의 부당성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1989년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1천5백이 넘는 교사를 거리로 내몬 것처럼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했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시 교육청은 교사들에게서 교단을 빼앗은 것이다.
일곱 분 교사들의 선택은 규제 철폐와 자율화를 부르짖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부응하는 일이다. 이들의 행위는 저들의 논리대로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전교조와 관련되거나 교육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행위는 촌지나 금품수수, 성추행과 같은 범죄보다 훨씬 무겁다.
금품수수나 성추행 따위의 파렴치한 범죄행위에도 경고와 정직 처분이면 족하지만, 이들 교사에게는 공무담임권을 3년(해임), 5년(파면)간 제한하는 중징계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키고자 한, 교사의 합리적 양심 때문에 교단으로부터 강제로 배제되었다.
해임이나 파면은 징계 의결 통지서 속에 기록된 ‘낱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어휘다. 그 일차적 의미야 교사라는 신분에서의 배제에 그치지만 그것은 한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기 확인으로 다가오게 마련인 것이다.
해임, 파면……, 해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면서 출근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보내는 하루가 그렇게도 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10시, 11시, 12시……, 토막 난 시간들을, 늘 그 본래의 의미가 아니라, 1교시, 2교시, 3교시로, 또는 시작종과 마침 종을 치는 시간으로 환산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 곳곳에서 만나는 ‘학교’와 ‘아이’들이 아프게 눈에 들고, 어쩌다 옛 학교 부근을 지나면 짐짓 고개를 돌려 외면하면서 지나가게 하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지지배배 두런대며 다가오는 사내애들, 계집아이들이 무심코 곁을 지나갈 때면 고얀 놈들, 왜 인사를 하지 않지, 하고 앙앙불락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아, 아니지 하고 스스로 겸연쩍게 뒤통수를 긁적이게 하는 것이다.
가르친 아이들이 졸업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거리에서 옛 학교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만나는 건 불편하다. 그래서 그것은 어느 날부터는 일부러 그 길을 피해 돌아가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 늘 쑥스럽기만 한 날, 빼버리고 싶은 날이었던 오월 어느 날이 유난히 더 서글퍼지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근무했던 시간과 무관하게 그것은 학교의 교사와 복도와 계단을 곡예하듯 내달리는 아이들, 운동장에 내리던 햇살, 부산한 현관의 풍경, 창밖에 펼쳐지던 신록, 교정에 핀 백목련 따위의 모습과 향기가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게 해주는 것이다.
1993년 복직 1년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던 내 친구 시인 정영상(1956~1993)이 단양에서 죽령 너머 안동 시내 복주여중의 수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한 것도 바로 그것, 해직이다. 절대 원하지 않았건만 기어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실존의 시간’들이다.
돌아올 수 없다는 그 ‘시간’은 무엇인가.
하기 좋은 말로야 ‘세월이 살 같다’ 하지만, 그것은 때로 ‘여삼추(如三秋)’이기도 하다. 공무를 맡을 수 없다는, 배제된 시간 3년, 혹은 5년은 경북의 스물일곱 꽃다운 여교사를, 서른여덟의 중견 교사를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낸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5년은 삶과 그리움과 희망에 지친 마음과 육신에 깃든 병을 키웠던 시간이었다. 복직했지만, 이미 몸에서 커 간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40대 남녀 교사는 또 몇이었던가. 세월은 때로 넘어진 자 앞에서 더욱 가혹한 것이다.
굳이 해직과 그것이 배제하는 시간을 더듬은 뜻은 저들의 만행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왜곡시키는가를 말하기 위해서다. 늘 그렇듯, 스스로 양심과 교육의 참뜻을 지킨 이들은 당당하다. 반대로 그 만행의 시간에 이름을 남긴 이들, 스스로 심판자를 자인한 이들은 불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1989년처럼 전국적으로 천오백여 명의 교사가 함께한 징계가 아니니 일곱 분의 교사들은 외로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늘 그랬듯 국민의 교사로서 자기 신념을 지킨 그들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우정은 두텁고 따뜻하다. 그들의 용기와 실천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그들의 힘이고 위로가 될 터이다.
이 터무니없는 징계는 한시바삐 철회되어야 하고, 일곱 분 교사들은 자랑스럽게 교단으로 돌아오리라는 걸 믿어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라도 ‘경쟁이 선’이라며 내닫는 이 ‘미친 교육’은 멈추어져야 마땅하다. 아이들을 유신시대의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일제고사도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2008. 12.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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