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이후의 학교
수능이 끝나고 난 학교는 일종의 파시(罷市) 같다. 반드시 그래서 그렇지는 않을 텐데, 학교는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진 듯한 분위기다. 한 치 오차도 없이 아귀를 맞추어 돌아가던 톱니바퀴의 움직임이 일순 멎어버린 것과도 같은 고즈넉함이 교정에 가득한 것이다.
졸업반 아이들에게 예전의 활기를 찾기는 어렵다. 누가 무어라 한 것도 아닌데도 아이들은 저지레한 아이들처럼 맥을 놓고 있다. 아이들은 인생을 다 살아버린 듯한 표정으로 가만가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교정을 조심스레 오가고 있다.
이들의 등교가 늦어지면서 출근길의 교문 주변도 쓸쓸해졌다. 더불어 연일 짙은 안개가 교정에 자욱하다. 성큼 겨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교정의 잎 벗은 나무들 사이로 하나둘 등교하는 졸업반 아이들의 모습도 쓸쓸하다.
그나마 활기가 느껴지는 것은 1·2학년 화장실 문이나 식당의 게시판, 매점 유리문에 붙은 헌책 세일 광고다. 아이들은 파격적 가격을 제시하며 묵은 참고서를 판매목록에 올려놓았다. 참고서뿐이 아니다. 전공학과와 관련 있는 월간지, 음반도 목록에 올랐다.
빈 시간의 매점에는 예전 같으면 까르르 숨이 넘어갈 것처럼 수다를 떨었을 아이들이 음전을 빼고 식탁에 앉아 있다. 아이들은 고작 컵라면 따위를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마치 잔뜩 꾸중을 듣고 난 것처럼 아이들은 고분고분해 보인다.
잠깐 짬을 내어 매점에 들렀더니, 의자마다 아이들이 가득하다. 난처한 질문을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이들은 그저 눈길을 피하기 바쁘다. 혹시 점수를 물으려나, 하는 표정이다. 탁자 하나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뭘 하며 지내냐니까, 아이들은 멋쩍게 웃는다. 자요. 만화 봐요. TV나 보지요, 뭐. 단문형 문답을 주고받으려니까 어쩐지 민망하고 겸연쩍다. 아이들에게선 지난해에는 느끼지 못했던 처녀티가 대번에 난다. 하긴, 해가 바뀌면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위로나 격려를 하고 싶지만 참는다. 그게 어줍잖은 일인 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12년 공부의 끝 앞에서 허탈하다. 열흘 후면 받을 성적표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지을 유일한 단서라는 사실 앞에서는 허무할 터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담담하다. 시험을 치르고 난 다음 날 눈이 붓도록 운 아이들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단단해진다. 언제나 그렇듯, 다시 땅에 발을 디뎌야만 어디든 발돋움을 할 수 있다는 걸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삶이라는 걸 아이들은 시방 배우고 있다.
주말, 교실을 정리하는지 아이들은 다 쓴 참고서를 수레 가득 버리러 간다. 우리 반 교실로 돌아오니 아이들 몇이 숨이 턱에 닿아 들어온다. 아이들이 버린 책 중에서 이 하급생들은 진주를 골라온 것이다. 아이들은 이내 책에다 코를 박는다. 다음 주부터 마지막 정기 시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 동안 포근했던 날씨가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종일 바람이 세차게 분다. 두툼한 외투를 입고 책을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는 아이들의 어깨가 공연히 외로워 보인다. 앞으로 1년, 이들도 선배들의 거친 과정을 오롯이 밟게 되리라.
한 해도 어느새 막바지다. 세월은 덧없다지만, 저렇게 아이들은 자라는 것이다.
2008. 11.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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