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서 공영방송 <한국방송(KBS)>의 향방
‘국민의 방송’에서 ‘권력의 방송’으로?
KBS가 심상찮다. 몇 개의 그림이 있다. 이른바 ‘방송장악 시나리오’와 그에 따른 사장의 교체, 대차게(!) 싸울 듯하다가 꼬리를 내려 버린 노조 같지 않은 노동조합이 첫 번째 그림이다. 교체된 사장단에서 내린 첫 인사발령에 대한 내부 구성원의 반발과 저항이 두 번째 그림이다.
마지막 그림은 그 와중에 이른바 ‘조계사 앞 식칼 테러’와 ‘2MB의 사위 조 아무개 씨의 주가조작 수사’ 관련 소식, 국제중 설립계획과 관련된 문제점 등이 9시 뉴스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배는 까마귀가 날아오른 뒤 떨어지는’ 법이다. 이 정도의 퍼줄 맞추기는 초딩도 할 수 있다.
이 그림들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달콤한(?) 시나리오는 노동조합이 현실을 공영방송 절체절명의 위기로 인식하고 ‘사원 행동’과 함께 공동 투쟁에 나서 ‘국민의 방송’을 지켜내는 것이다. 여기에 보태지는 시민·언론 단체와 공영방송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힘도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달콤한 것일수록 실속이 없기 마련이라 했다. 이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정권과 보수 세력들의 지원에 힘입어 낙하산으로 강림한 사장단의 ‘좌파 방송 척결(!)’ 과제가 성공적으로 수행되는 경우다. ‘미디어 포커스’와 ‘시사 투나잇’, ‘시사기획 쌈’ 등의 프로그램은 폐지되고 한국방송은 ‘자율’보다는 ‘통제’와 ‘관리’로 운영되었던 과거의 KBS로 퇴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80년대의 ‘땡전 뉴스’와는 구별되는 또 다른 ‘땡박 뉴스’라는 옷을 입고 나타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다음은 안 봐도 비디오다. ‘국민의 방송’ KBS는 장렬하게(!) 1990년 이전의 ‘권력의 방송’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당연히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각성하고 똑똑한 시민들의 저항이 될 것이다. 국민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이 관제방송의 물적 토대를 허물어뜨리는 게 얼마나 강력한 방법인가를 국민은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년이나 지났는데, 지금은 민주주의의 ‘만개’ 시대라는데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이라고! 좀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KBS의 90년 이전 모습을 아주 능숙하게 그릴 수 있다. 80년대 ‘땡전 뉴스’의 우울한 추억 탓이다. 5공화국 군부독재 정권의 충실한 나팔수, 80년대의 KBS는 관제방송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보도 특집’으로 국민을 교화하던 이 전능한 방송을 무력화시킨 건 역시 국민이었다. 자료를 찾아 읽으면서 80년대 시민언론 운동이었던 ‘시청료 거부 범국민운동’을 전모를 새롭게 확인해 본다. 정작 역사의 시간을 지나왔으면서도 그 세월을 돌이켜 보는 우리의 기억은 참 허술하다.
80년대 시청료 거부 운동의 추억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작업으로 동양방송(TBS)을 흡수하고 문화방송(MBC) 주식 70%를 소유한 한국방송공사(KBS)는 시청료와 광고 수익까지 챙겨 공룡 방송이 되었다. 그러나 이 권력의 주구로만 기능했던 ‘언론 제국’은 1984년, 조직적으로 KBS 시청료 거부를 선언하고 나선 가톨릭농민회와 천주교회의 도전을 받게 된다.
이후 교회, 청년, 정당 등으로까지 연대의 폭을 넓혀간 이 운동은 당시 TV 수상기 보유 가구의 52%가 참여한 가운데 ‘범국민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KBS의 시청료 징수율은 76%(1985), 66%(1986), 57%(1987), 44%(1988)로 하락하면서 독재 권력의 정당성은 치명타를 입었고, KBS는 심각한 재정난에 처하게 된다.
이 운동은 ‘시민들이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소극적인 거부권 행사이며 불복종운동’으로 전국적으로 조직화된 시민운동, 시민언론 운동이었다고 평가된다. 시청료 거부 운동은 실제 목표인 방송의 공영성 확립을 직접 이루지는 못했지만 언론 민주화, 사회 민주화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내가 그 운동에 ‘비조직적’으로 참여한 것은 88년도쯤인 듯하다. 당시만 해도 운동 단체나 조직 간의 상호 연대가 느슨하기도 했고 우리는 막 싹을 틔우던 교육 민주화 운동에 골몰하던 때여서 곁눈질할 형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시청료 거부 스티커를 나누고 개인적으로 이를 실천해 나갔던 것이다.
수금원들이 시청료를 거두고 다니던 때였는데, 대부분의 선량한 수금원들은 ‘KBS를 보지 않습니다.’라고 하면 순순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개중에는 여자들을 만만히 보고 강짜를 부리는 사례도 없지 않아서 아내는 수금원이 오면 은근히 내게 응대를 미루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정작 KBS가 민주 방송으로 거듭난 것은 1990년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서기원 사장 거부 투쟁을 통해서였던 거로 기억한다. 하필 당사자가 전후 소설의 문제작이었던 ‘암사지도(暗射地圖)’의 작가였던 서기원이어서 좀 씁쓸하게 싸움을 지켜보았던 기억이 뚜렷하다.
공영방송을 이뤄낸 것은 기자·PD 등 저널리스트들
원로 언론인들의 증언과 회고에 따르면 90년 이전의 KBS 기자들은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도 별로 기자 대접을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KBS가 조중동 등 보수언론을 제치고 한국 사회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언론으로 거듭난 것은 전적으로 KBS 내부의 자성과 투쟁을 통해서였다는 것은 상식이다.
나는 KBS의 막강한 제작역량을 신뢰한다. <KBS 스페셜> 등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이룬 품격과 성취는 공영방송으로서의 KBS의 위상을 웅변으로 증거한다. ‘공영방송’을 한갓진 구호가 아니라 방송의 질과 내용으로 담보했던 것은 자율 제작의 풍토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쏟아부은 저널리스트로서의 기자와 PD들이었던 게다.
KBS의 위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1990년의 방송 민주화 투쟁이 노조를 중심으로 한 일사불란한 단결로 이룬 것이었다면 2008년 KBS의 상황은 영 아닌 듯하다. 80%가 넘는 파업 찬성률을 확인하며 전의를 다진 ‘코드 박살 복지 대박’의 KBS노조는 어느 결엔가 파업을 접었다.
직원들에 대한 보복인사가 이루어진 다음 날 노조 집행부는 1박 2일 선유도로 MT를 떠났다니 말 다 했다. 선유도행의 이유도 삼삼하다. 비상대책위원회 해단식을 하며 서해 늦여름 햇살을 즐긴 노조 간부들에게 KBS는 ‘밥그릇’ 외에 그 무엇일까.
오늘 자 <한겨레> 기사 “KBS ‘권력 감시 프로’ 본격 손보기”는 예의 시나리오가 찝찝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KBS 편성본부는 ‘시사투나잇’을 폐지한다는 내부방침을 확정하는 한편, 방송 시간대 변경안을 담은 ‘미디어포커스’ 1차 개편안을 제작진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시사기획 쌈’에 대해서도 세 가지 개편안이 논의되고 있다니 바야흐로 이 세 가지 간판 프로그램이 이후 KBS의 변화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는 듯하다.
노조가 ‘강 건너 불구경’이니, 사측의 보복인사에 대한 PD협회와 기자협회의 반발과 저항이 그나마 KBS를 지키려는 실낱같은 희망처럼 보인다. 비록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직능협회별 투쟁이지만 이들의 의지는 결연하다. PD들은 제작 거부로 맞설 태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KBS의 분위기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사내 게시판에 오르는 글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소식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으니 말이다.
방송계의 막내라 할 수 있는 YTN이 모범적으로 투쟁하면서 이들은 누리꾼들로부터 윤택남(YTN)이란 애칭을 얻었다. 덕분에 낙하산 구본홍 사장은 두 달째 출근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쯤 되면 형님뻘인 KBS가 한 수 접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MBC(마봉춘)의 시사교육국 피디들도 ‘시사(본방송 전에 국장과 책임피디, 해당 피디가 프로그램을 보면서 최종의견을 조율하는 것) 거부’를 결의했다고 한다.
언론의 위기, 국민과 민주주의의 승리로…
얼핏 보면 지상파를 대표하는 공영방송 두 곳, 케이블의 뉴스 채널 한 군데서 공영방송과 방송 공공성 사수 투쟁이 아주 활발하게 진행되는 듯한 형국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우리 방송이 처한 위기의 현주소일 뿐이다. 전 현직 언론인들의 시국 선언과 서명 운동이 시작된 것은 그것의 반증이다.
외견상 개별, 분산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싸움이 1990년 KBS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감행한 MBC와 CBS의 동맹 제작 거부 투쟁과 같은 연대투쟁으로 한 차원 상승될 수 있는가도 주요한 변수다. 여전히 폭발을 앞둔 뇌관에 접근하지 않았는가, 상황은 아직 정중동일 뿐이다.
시청광장에서 타오르다 여의도로 옮겨간 촛불의 추이도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국민의 여론과 분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지도 관건이 될 수 있으리라.
장황하게 ‘정권의 방송장악 저지와 언론자유 수호 투쟁’에 대해서 주절댔지만, 이 싸움이 어떤 형식으로 귀결될지 나는 알지 못한다. 고작 신문이나 방송 뉴스에 의지해 상황을 간신히 이해하고 있는 형편도 형편이지만, 향후 상황의 전개를 내다볼 만한 눈이 내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주말마다 즐겨 시청했던 ‘미디어 포커스’를 보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자주는 아니지만 심심찮게 보는 ‘시사 투나잇’이나 ‘시사기획 쌈’ 등의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기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그것은 언론자유나 방송의 공공성과 같은 거대 담론과는 무관한, 평범한 수용자로서의 내 소박한 바람이다.
나는 이 문제가 시민들의 승리로, 민주주의와 자유언론의 승리로 정리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작으나마 힘을 보태리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그러지 않기를 진실로 원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최악의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어 20여 년 만에 다시 ‘수신료 거부 투쟁’이 일어나야 한다면 거기에도 예전처럼 기꺼이 참여하리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2008. 9.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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