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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KBS를 가르는 두 개의 시선

by 낮달2018 2021.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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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두 개의 KBS

▲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KBS)엔 노조가 둘 있다. 하나는 KBS노동조합(이하 ‘기존 노조’)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새 노조’로 알려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다. 물론 기존 노조는 언론노조를 탈퇴한 독립(?)노조다. 기존 노조가 권력의 방송 장악에 따른 공영방송 위기 앞에서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자, 기자·PD를 중심으로 기존 노조를 탈퇴하여 새로 만든 조직이 ‘언론노조 KBS 본부’다. 결국 새 노조도 기존 노조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점에서는 ‘독립 노조’인 셈(?)이다.

 

새 노조인 언론노조 KBS 본부는 지난 한 달간 파업을 벌였다. 이들은 소수지만 언론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파업을 불사했고, 그 결과 몇몇은 불이익도 입었다.[관련 글 : KBS 파업, 혹은 언론인들의 존재 증명] 그러나 ‘신뢰도 1위의 공영방송 KBS’를 기억하는 시민들은 이들의 파업을 적극저으로 지지했다. 이들 새 노조의 조합원들은 지난 2년간의 ‘부끄러움’이 자신들을 움직였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파업을 끝내면서 행복한 눈물로 서로의 연대를 확인했다.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의 막말이 보도되면서 정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과 관련해 시청자들은 또 유쾌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KBS의 ‘추적60분’ 제작진이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의 막말을 담은 동영상을 지난 6월 말 입수한 뒤 오는 18일 방영하려 했으나 시사제작국장의 반대로 ‘불방’됐다고 주장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 관련 기사]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시청자로서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새 노조의 몸부림도 간부의 벽을 넘지 못하며, 결국 KBS는 꼼짝없이 1990년대 이전의 관영 방송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일종의 열패감을 가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재화된 모순 앞에 확인하는 무력감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몇몇 인터넷 언론에 오른 KBS 관련 기사는 시청자들을 또 다른 당혹감 속으로 빠뜨린다. 그것은 민주당 의원들의 KBS 비판에 대해 KBS 국회 출입 기자들이 집단 항의를 했다는 소식이다. 앞서 경찰청장 내정자의 ‘막말 동영상’이 제작국장의 반대로 불방되었다는 의혹에 대한 민주당 문방위원들의 기자회견장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두 목소리 KBS의 기자·PD들

 

이 ‘집단 항의’의 경위는 이렇다. 서갑원, 김부겸 등 민주당 소속 문방위원들은 17일 국회 브리핑실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이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현장에 있던 KBS 선임 기자가 이의를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KBS의 다른 기자들도 이 항의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 노사 합의 후 조합원에 대한 보복행위를 규탄하고 있는 KBS 새 노조의 조합원들 ⓒ KBS 본부 누리집

 

“KBS의 주인이 누구인가. 국민과 시청자들이다. 그런데 제작국장에 의해 국민과 시청자들의 알권리는 물론 일선 PD 기자들의 취재 노력과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고 훼손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KBS의 조 내정자 ‘막말 동영상’ 축소 보도 사태가 일개 간부의 판단만이 아닌 이명박 정부 들어 심화한 정권 눈치 보기, 정권 홍보 방송 행태의 연장선상이라고 본다.

 

KBS의 경영진과 제작 간부들은 주인인 국민과 시청자를 두려워할 줄 모르고 정권 편들기, 정부 감싸기에 급급해 공영방송 KBS의 위상과 신뢰를 스스로 갉아먹는 행태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추적60분> 제작진들은 보도위원회 소집과 책임자들의 문책, 제작 자율성 침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실을 알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KBS 일선 PD들, 기자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이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

 

     - 이상 민주당 문방위원들

 

“경영진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있나. 경영진이 개입됐다고 호도하지 말라. KBS는 그런 조직이 아니다.

 

잘 모르고 브리핑하는 것 같아 말하는 것이다. 성명을 낸 그 친구들(<추적60분> 제작진)이 (동영상을) 가지고 있다가 보고한 게 지난 금요일이고 그런 과정에서 사회부에서도 똑같은 동영상을 입수한 것이다.

 

‘9시 뉴스’에 보도가 됐는데 무슨 정권을 비호하는 건가, KBS가 동네북이냐. KBS 조직원으로서, 이렇게 함부로 매도하는 것은 상당히 곤란하다.

 

KBS 내부 사정을 아느냐. 경영진이 보도를 못 하게 한 것이 맞다고 자신하느냐?

 

PD들이 낸 성명도 상당히 웃기다. 하지만 경영진이 못하게 한 게 뭔가? 그것에 대해 저보다 자세히 아나?

 

(성명서에) ‘경악’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

 

- 이상 KBS 국회 출입 기자들

 

현장을 목격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기사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지만, 나는 KBS 기자들의 항의에 일리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부 사정에 관한 한, 그들이 민주당 의원들보다 더 잘 안다고 보는 게 마땅하긴 하다. 또 끊임없이 ‘동네북’ 취급을 받으며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꼈던 점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선임 기자의 전력은 따로 적지 않는다.)

 

그러나 기사를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기자들은 자신들이 자사의 내부 사정에 훨씬 밝다고 얘기했지만 <추적 60분>의 제작진이 성명을 발표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또 그 내용의 진위는 제작진에 물어야 할 일이지 제작진의 성명을 바탕으로 비판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물을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직역은 다르지만 <추적 60분>의 제작진(PD)과 기자들이 같은 문제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쉬 이해되지 않는다. 현장에 드러난 분위기로 보아 기자들은 사측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추적 60분>의 제작진들의 성명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필요한 것은 내부적 성찰이다

 

KBS가 일선 취재 현장에서 취재원들로부터 배척당하거나 야유의 대상이 되는 등 국민 대중들의 신뢰를 잃은 지도 꽤 됐다. 그러한 현실에 대한 주체들의 성찰이 새 노조의 설립과 파업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따라서 KBS의 보도 태도에 대한 언론단체들의 지적과 비판은 부인하거나 따질 일이 아니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인 것이다.

 

최근 <시사저널>이 교수, 언론인 등 10개 분야 전문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언론 분야 여론조사 결과, MBC는 이태째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 1위에 꼽혔다. 그러나 ‘신뢰도 1위의 공영방송 KBS’는 <한겨레>에 이어 3위에 그쳤다.

 

KBS가 동네북이냐고 반문하기에 앞서 지금 KBS에 필요한 것은 공정 언론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는 것이고, 내부에 대한 가혹한 자기성찰이다. 국민 대중과 그들의 신뢰로부터 멀어지는 대신 필요한 것은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언론인이라는 정체성과 저널리즘 회복인 것이다.

 

 

2010. 8.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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