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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연예’ 기사 전성시대의 진보언론

by 낮달2018 2021.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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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소리>와 <경향>의 경우

▲ 인터넷 경향신문(9.17.) 메인 면을 반분해 오른쪽이 스포츠 연예 면이다.

바야흐로 ‘연예’ 기사가 ‘대세’인 시대다. 그런 낌새는 일찌감치 시나브로 보이고 있었지만 이제 그게 ‘완전 둔감(!)’의 어리보기인 내 눈에도 뜨일 정도이니 더 이를 말이 없다. 물론 이는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두루 해당하는 이야기다.

“포털 연예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어 들어갔더니 ‘민중의 소리’가 나오던데요?”

딸아이가 어느 날 그랬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버가 ‘민중의 소리’를 뉴스 검색 제휴 서비스에서 퇴출하는 등의 마찰이 빚어졌는데 이 마찰의 핵심은 ‘연예 기사’였다. 양쪽의 주장과 무관하게 진보 인터넷 언론을 지향하는 ‘민중의 소리’가 연예 기사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뿐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인터넷 <경향신문>의 머리기사 정수리에 눈길을 끄는 연예 기사가 얹히기 시작했다. 인터넷 <한겨레>도 꼭대기는 아니지만 메인 면 가운데쯤에 ‘연예 스포츠’ 면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예 <오마이뉴스>는 연예 매체 ‘오마이스타’를 열었다.

▲ 민중의 소리의 연예 매거진 ENS 기사들 (9. 17.)
▲ 경향의 화보면

이미 연예·스포츠 매체가 있는 <조선>, <중앙>, <동아>, <한국>, <경향>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온라인 언론사들도 연예 뉴스 생산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인터넷 뉴스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종이신문 대신 인터넷으로 뉴스를 ‘소비’한다. 그런데 이들의 발길을 끌기 위해서 가장 손쉽게 이용되는 것이 ‘연예 뉴스’다. 각 매체가 생산해 내는 연예 뉴스로 페이지 뷰가 증가하고 이를 통해 매체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광고료 수입을 늘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연예 전문 매거진 ‘ENS’를 통해 연예 뉴스를 생산해 온 <민중의 소리>가 인터넷 언론사 가운데 상위권에 오른 것은 전적으로 연예 기사에 힘입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나온 ‘여성 차별적 기사’나 ‘성형수술 광고’ 등을 두고 진보 진영 쪽으로부터 따가운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연예 기사가 대중의 흥미와 관심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떤 지식인들에게는 연예계 뉴스는 무의미한 가십에 그치겠지만, 대다수 대중의 경우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순식간에 수십만의 페이지 뷰를 기록하는 연예 기사야말로 어려운 매체의 재정을 돕는 ‘뜨거운 뉴스’인 것이다.

그런 뉴스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이들 진보적 성향의 매체를 백안시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서구에는 연예계 가십을 다루지 않는 것으로 고급매체의 성가를 이어가는 엘리트 언론이 따로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서 ‘놀이’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연예 기사가 굳이 몰매를 맞아가며 회피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연예 기사의 문제도 적지 않다. ‘가십’이라는 낱말이 뜻하듯 그 진실성과는 무관하게 사람들의 흥미를 겨냥한 선정적 폭로 위주의 기사가 갖는 폐해를 비롯하여 정작 ‘우리네 삶’과 거리가 먼 ‘그들의 사랑과 삶’으로 위안받는 일종의 ‘몽혼’ 효과 같은 것 말이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상황 속에서 ‘오마이스타’라는 별도의 매체를 통해서 연예 기사로 외연을 넓히는데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굳이 ‘오마이스타’를 논의에 올릴 필요가 없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상근기자가 쓰든 시민기자가 쓰든 ‘오마이스타’의 연예 기사는 모체인 <오마이뉴스>가 기왕에 쌓은 신뢰 위에 무난히 서고 있다.

▲ 모체인 오마이뉴스의 신뢰를 바탕으로 안착하고 있는 연예 매체 오마이스타

<민중의 소리>는 자사의 연예 기사 취급이나 네이버 퇴출과 관련해 지나치게 방어적인 듯하다. 마음에 새길 만한 비판이야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고 그간의 시행착오도 개선하여야겠지만 굳이 수세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오늘 자 <민중의 소리> 메인 면 가운데 화보의 전면에 게시된 사진은 ‘한미 FTA’ 관련 국회 소식 사진이다. 그러나 사진 아래에 ‘정전 사태’, ‘이시영’과 ‘이하늬’ 등 세 장의 사진을 각각 선택할 수 있게끔 해 놓았다. 앞의 두 이미지는 당면 시사 현안이지만 뒤의 두 장은 연예인이다. 이러한 형식의 기사 제공에 대해서 굳이 시비를 걸어야 할까. 그게 이 21세기에 진보언론이 선택한 생존 전략인데도 말이다.

<스포츠 경향>과 <레이디경향>을 자매지로 두고 있어서인지 <경향>의 메인 면은 좀 어지럽고 복잡하다. <한겨레21>이나 <씨네21>을 둔 <한겨레>는 그 중요 기사를 메인 면에 올리기는 하지만 따로 자매지 란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경향>은 메인 면 반분하여 오른쪽에다 ‘스포츠·연예’ 기사(<스포츠 경향>)를 노출하고 있다. 그 위에 반라의 여성들 중심의 화보도 꽤 무겁게 얹혀 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요즘은 ‘연예 기사’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걸 머리기사 정수리에다 얹어 두었다. 오늘 자 인터넷 <경향>에는 ‘임재범’ 관련 가십 기사가 머리기사(‘한상률 관련’) 위를 장식하고 있다. 나는 머리를 갸웃하면서도 앞서 나가려는 마음의 덜미를 잡아챈다.

▲ 민중의 소리의 화보 (9.17.) 한미 FTA와 이하늬 등의 이미지를 선택할 수 있다.
▲ 경향의 머리기사 위에 연예 기사.(9.17.)

눈치챘겠지만, 이런 고육지책의 원천은 결국 ‘돈’이다. <민중의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경향>은 <한겨레>와 함께, 그놈이 그놈인 보수 일간지 그룹과 일전을 불사할 투지로 뭉친 ‘소수의 진보언론’이다. 신문 시장의 과점에도 성이 차지 않아 그예 종편까지 진출하기로 한 ‘조중동’의 맷집에 비기면 이들은 난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 무한경쟁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생존 전략이 ‘연예’나 ‘스포츠’ 기사라면 부끄러워하여야 하는 것은 우리 독자들이 아닐까. ‘진보’와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우리는 이들 소수의 진보언론이 자립할 수 있는 정도의 언론 환경도 만들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기야 잘난 ‘진보주의자’ 가운데에는 <한겨레>나 <경향>의 ‘한계’ 운운하면서 ‘경제신문’을 본다고 하는 이가 적지 않으니 유구무언이다.

말끝마다 ‘선진화’와 ‘국격’을 부르대던 현 정권 아래 자유언론의 초상은 참 초라하다. 최고 권력의 측근들이 포진한 방송 매체는 불과 2년 만에 ‘알아서 기는’ 막장을 연출 중이다. 또 권력의 수호천사 노릇을 마다치 않는 수구 매체들은 흥겹게 그 왜곡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보다 더 어려운 게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게 오늘, 진보언론이 맞닥뜨린 현실이다. 그런 상황, 이를테면 연예 기사에 ‘낚여’ <민중의 소리>나 <경향>에 온 독자들이 굵직한 시사 현안에 대한 진보적 입장을 눈여겨 볼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들의 잦은 발걸음이 광고 매출의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면 한갓진 ‘연예 기사’ 정도야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2011. 9. 17. 낮달


* 우려하거나, 마뜩잖은 눈길로 진보언론의 연예 기사를 바라보던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었다. 그러나 그건 결국 포털에서 주목 받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끝났던 듯하다. 10년이 지난 지금 진보언론은 연예 기사를 다루지만 그걸 머리에 같이 걸거나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202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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