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남편,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은가
아내의 지인이 장인상을 당했다. 이를 처음 알리는 이가 ‘빙부(聘父)상’이라 전하자, 사람들은 헷갈렸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대자 그예 아내도 미심쩍어졌던 것 같다. 국어를 가르치는 남편에게 응원을 청했다.
“빙부라면 장인을 가리키는 거 아니우?”
“왜 아니야. ‘빙장(聘丈)’하고 같이 쓰는 말이지.”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걸 모른대?”
“일상에서 잘 안 쓰는 말이니 그렇지, 뭐.”
경상도 지역(경상도 전역인지 경북 남부지방에 한정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에선 장인, 장모의 높임말로 ‘빙장어른, 빙모님’을 썼다. 내 두 분 자형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옛날이야기다. 요즘이야, 장인, 장모보다 더 가까운 ‘아버님, 어머님’도 거리낌 없이 쓰는 형편이니 말이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에서 낸 ‘언어 예절’에 따르면 이는 잘못이다. ‘빙장’, 또는 ‘빙부’와 ‘빙모’는 ‘장인’과 ‘장모’를 높이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의 장인과 장모’를 이르는 말로만 쓴다. 자기의 장인, 장모를 부르는 말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례 1]
이경수 씨는 ‘장인어른’이라는 말은 왠지 거부감이 들어 절대로 안 쓴다. 내심 그는 자기가 쓰고 있는 ‘아버님’이라는 호칭도 불만이다. 이왕이면 “아버지, 바둑 한 수 어떠세요?”처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친근해서 낫겠다는 생각이다.
[사례 2]
박영희 씨는 남편이 친정 부모를 가리켜 “당신 아버지 어머니는 ···”이라고 말해서 섭섭했다. 남편이 자기 부모에게 거리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장인은 ‘장인어른,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장모는 ‘장모님,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처부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근래에 처부모도 자신의 부모처럼 친근하게 느끼고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풍조가 널리 퍼져 이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라고까지 부르는 것은 옳지 못하다(사례1).
한편 ‘빙장 어른, 빙모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남의 처부모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또 배우자에게 ‘당신 아버지, 당신 어머니’ 등으로 말하는 것은 마치 남을 가리켜 말하는 듯한 느낌을 주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삼가야 한다(사례2).
- <언어 예절(국립국어원 허철구)> 중에서
빙부, 빙모의 ‘빙(聘)’자는 ‘부르다, 찾다’의 뜻 외에도 ‘장가들다’의 뜻이 있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만큼 이제는 쓰임새가 거의 떨어진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긴 얼마 전에 나는 이 말을 제대로 썼다. 지난달 퇴임한 교장 선생이 장모상을 당했는데 상을 치르고 돌아온 그에게 나는 ‘빙모님은 잘 모셨냐’고 인사했던 것이다.
한가위니 자연 가족 친지들이 모이는 기회가 잦다. 아무래도 젊은이들은 이들 친족 간 호칭이 어려운 모양이다. 호칭 자체가 어려워서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예전과 달리 친족들 간의 접촉이 워낙 뜸하다 보니 이들 호칭어가 잘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란 그것을 사용할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성하기도 쇠하기도 하는 것이다.
‘제부’와 ‘박 서방’
언제부턴가 아내가 손아래 동서에게 ‘제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냥 한번 써 보는 거니 했는데 계속이었다. 손아래 여동생의 남편을 부르는 말은 당연히 ‘○서방’이다. 그렇게 써 오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제부’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당신은 요즘 왜 또 김 서방을 ‘제부’라고 부르는데?”
“아니, 사람들이 ‘제부’라고 쓰는 게 맞대서…….”
“누가? 손아래 제부는 ‘아무개 서방’이라고 부르는 게 맞아. 어차피 말이야 높이는 거고.”
“글쎄, 나도 그리 알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워낙 그렇게 써서…….”
공연히 나도 헛갈린다. ‘언어 예절’을 다시 찾아보았다. 여동생의 남편은 역시 ‘○서방’이나 ‘○서방님’(나이가 더 많을 경우)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의 ‘제부’ 항목은 또 다르다. 거기선 ‘제부’를 지칭어와 호칭어로 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여동생과 그 남편(여자의 경우)
여동생은 ‘○○[이름], 동생’으로 부른다. 그 남편은 ‘○ 서방(님)’으로 부른다. 나이가 더 많을 경우 ‘서방’이라 할 수 없으므로 ‘서방님’이라고 높여 부르는 것이다. 한편 일부 지방에서 ‘제부(弟夫)’라는 말을 호칭어 및 지칭어로 쓰나 이는 바른말이 아니다. ‘○ 서방’이라고 지칭해서 상대방이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동생의 남편’으로 가리키면 된다.
- <언어 예절(국립국어원 허철구)> 중에서
제부01 (弟夫) [제ː-]
「명사」
언니가 여동생의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 제부가 신혼여행 선물로 화장품을 사 왔더라./제부, 잠깐 애 좀 봐 주세요.
- <표준국어대사전>
‘언니의 남편’을 가리키는 말로 ‘형부(兄夫)’가 있으니 이와 대응하는 낱말로 ‘제부’가 있는 것은 차라리 당연하지 않은가. ‘누나의 남편’을 가리키는 ‘자형(姊兄)’에 대응하는 낱말로 ‘매제(妹弟)’가 새 말의 지위를 획득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시방 ‘제부’는 ‘형부’에 대응하는 새 말이 되었지만, 아직 ‘언어 예절’의 영역에서 자신의 지위를 얻지 못한 셈인지도 모르겠다.
촌수나 관계가 복잡하다고 해도 부름말은 아주 단순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어릴 적에는 ‘자형’을 ‘새 형님’으로, ‘형수’를 ‘새 아지매(아주머니)’로 불렀다. 고모나 이모는 ‘아지매’고 고모부나 이모부는 ‘아재’였다. 숙항(叔行, 아버지와 같은 항렬)은 남녀 각각 아재와 아지매로 불렀었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지칭어와 호칭어 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감이 있다. 요즘은 지칭어를 호칭어로 겸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재나 아지매 대신, 고모와 고모부로 부르는 게 익숙한 것이다. 그게 관계를 분명하게 밝히는 현대사회의 특징인지도 모른다.
2013. 9.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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