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제보와 사회적 약자
2, 30년 전의 이야기다. 장애인 150여 명이 생활하는 서울의 한 재활원이 너무 좁았다. 이사를 가기로 하고 부근의 다른 지역에 집을 짓기로 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온갖 방법으로 건축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장애인과 시설이 들어오면 마을의 주거 환경이 나빠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때 신축 재활원 건물에서 오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어떤 중학교 교장은 주민 대표라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보다 ‘돈’이 더 대접받는 나라
“우리 학생들과 같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학생들이 장애자들을 자주 보게 되면 교육적 측면에서 나쁜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듯이 수많은 장애자들이 학교 바로 앞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교육 환경이 좋지 않은 학교에 어느 부모님들이 그 자식들을 보내려 하겠습니까?
장애자들이 어린 학생들의 눈에 띄는 것을 보는 많은 사람들은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라면 장애자들에 대한 인상이나 인식이 긍정적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가 그와 같이 되려면 앞으로 이십 년 내지 삼십 년 더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학교 앞에다 장애자 수용 시설을 설립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2, 30년이 흘렀다. 지난해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는 기존 주민들이 새로 들어오게 된 사회적 배려 대상자들의 이사를 막는 일이 벌어졌다. 한부모 가정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들이 아파트에 임대로 들어오게 되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존 아파트 주민들은 아예 주차장 출입구를 가로막아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실력 행사도 서슴지 않았다. 주민들의 입장은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2, 30년 전에는 ‘아이들 교육’ 뒤에 숨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흔히들 ‘시민의식’과 ‘사회적 인식’ 운운하며 책임을 미루고 말지만 30년쯤 세월이 흘러도 우리 사회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중산층 분양아파트와 저소득층이 주로 사는 임대아파트의 반목과 갈등은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 재연되고 있으니 말이다.
공공주택의 절반 가까운 분양·임대 혼합단지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갈등의 본질은 차별이다. ‘있는 사람들’이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없는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같은 단지 안에서 길을 막고, 철조망을 쳐 편의시설도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
극심한 차별에 아이들까지 상처받고 있는 기막힌 풍속도다. 자기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 그게 선진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어디를 가든 사람보다는 돈(재산)이 더 대접받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하나고 ‘공익제보자’, 사면초가에 몰리다
다시 1년 후, 따끈따끈한 최근 소식이다.
전국형 자율형 사립고인 하나고가 입학 전형에서 남녀 학생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 입학성적을 조작한 사실이 재직 중인 교사의 증언으로 드러난 게 지난 8월이다. 그런데 최근, 사실로 확인된 이 비리를 밝힌 공익제보자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고 한다.
이 교사에게 ‘폭로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동료 교사가 9일째 단식을 하고 있고, 다른 교사 7~8명도 인트라넷에서 학교 쪽 입장을 대변하며 제보자에 대해 인신공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부모들도 집회를 열고 비리를 제보한 교사의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고 한다. 결의문에 실렸다는 학부모들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관련 기사]
- 단식하고 있는 선생님께 조금이나마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교직을 떠나라.
-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외부로 끌고 가서 학교 이미지를 땅에 떨어뜨린 것이 합당한지 말하라.
- 원서를 쓰고 있는 3학년 학생들에게 한 번이라도 미안한 마음 가져본 적이 있는가.
여기에 졸업생도 가세한 모양이다. 이 학교 졸업생 203명은 지난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스스로 판단해 행동하라고 가르친 선생님께서 최근 왜곡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너무도 깊은 슬픔을 느낀다”라고 비판했다.
‘스스로 판단해 행동하라’는 가르침과 ‘왜곡된 발언’ 사이의 틈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학부모와 일부 동료들의 집단적 반응에 제보 교사는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입시와 진학 결과도 좋고 학생 만족도도 높은 학교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면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훌륭한 학교로 만들자고 나올 줄 알았는데, 학부모님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다. 매우 충격적이고, 상처를 많이 받고 있다.”
언론 보도 이상의 정보가 없어 논란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소식을 전해 듣는 느낌은 무척 혼란스럽다. 공익제보자가 소속 기관에서 따돌림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야 결코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동료들은 물론 학부모와 졸업생까지 나서서 공익제보자를 비난·규탄하는 경우는 아무래도 낯설기 때문이다.
그것도 동료 교사가 단식까지 하면서 제보자 비난에 동참하고 학부모들이 제보자에게 학교를 떠나라는 결의문을 채택하는 상황이니 무언가 개운치 않다. 당사자가 그 정도로 인심을 잃었는가 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학부모와 동료의 요구를 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으니 말이다.
사학이라고 하더라도 학교의 부정과 비리를 제보한 동료를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예는 많지 않다. 또 학부모들도 학교 비리가 밝혀지면 이를 시정하고 개선하는 데 관심을 두거나 상황을 중립적으로 지켜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하나고 학부모들은 비리를 밝힌 교사에게 화살을 돌린 것이다.
학부모 결의문에 학교에 대한 요구는 없다. 대신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외부로 끌고 가서 학교 이미지를 땅에 떨어뜨린 것이 합당하냐’라는 등 해당 교사에 대한 힐난 일색이다. 중요한 건 비리나 부정의 개선, 또는 회복이 아니라 ‘이미지 실추’로 입게 될 자신들의 ‘불이익’이라는 속내가 읽히는 대목이다.
학교 측이 저지른 입시부정의 피해자는 정작 입학 전형에 실패하여 입학하지 못했다. 제보자에 대한 비난 대열에 선 학부모나 학생 가운데 아무도 예의 입시부정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낙인과 불이익
대신 이들은 자신들의 불이익과 무관한 일로 학교가 입을 이미지 실추를 ‘불이익’으로 받아들였다. 연간 학비가 천만 원이 넘는다는 이 ‘귀족학교’의 구성원인 학부모와 졸업생, 일부 교사들의 집단행동엔 그런 ‘이해의 공유’가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의 비리를 공개적으로 증언하기까지 제보자의 고민과 갈등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는 편안한 침묵 대신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정의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그를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공익제보에 대한 법적 보호가 시행된 지 10년이지만, 공익제보자에 대한 낙인·불이익은 여전하다. 이들에 대한 처우는 공익제보자 1세대로 불리는 이문옥 감사관이 탄압받던 20년 전과 다르지 않다. 내부 고발자들은 파면·해임처분(20%), 징계(30%), 승진 누락 등 인사상 불이익(37%)을 피하지 못하는 게 현실인 것이다.
“무관심한 이들은 사람을 죽이지도 배신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 살인과 배신이 존재하는 것은 그들의 무언의 동의 때문이다”라고 한 작가(Bruno Yasenskii)의 일갈을 떠올리며 씁쓸히 2, 30년 저쪽과 이쪽이 다르지 않은 2015년의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015. 9.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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